아이언 샷은 어렵다. 목표를 요리조리 비껴가는 게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특히 3번부터 5번까지의 롱 아이언은 아마추어 골퍼가 정복하기 어려운 산이다. 유틸리티 우드, 하이브리드 클럽이 롱 아이언의 어려움을 대체하기도 하지만 깊은 러프 등에서는 지면을 파고 들어가는 아이언 클럽의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
최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골프의 상식이 깨졌다. '괴짜골퍼'로 불리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때문이다. 올해 초만 해도 세계랭킹 99위, 그저 그런 선수였던 디섐보는 우승 상금을 빼고 보너스 상금만 1000만 달러가 걸린 '대박 이벤트' PGA투어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내리 석권하며 최종 우승 후보로 부상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성공적인 복귀와 비견할 만한 사건 중의 사건이다.
상식을 깨뜨린 건 다름아닌 그의 장비다. 디섐보는 3번 아이언부터 웨지까지 10개의 아이언 길이를 6번 아이언 길이(37.5인치)로 똑같이 만든(one length iron) 쌍둥이 아이언을 사용한다. 단일 길이 아이언은 클럽 헤드 속도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어 제대로 된 거리 차이를 얻지 못한다는 게 기존 상식이다.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골프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디섐보는 성적으로 상식을 뒤집었다. 정확하게는 '골프 스윙은 하나'라는 스윙 이론을 충실히 실천한 결과물이다.
디섐보는 물리학으로 유명한 미국남부감리교대학(SMU)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클럽 길이와 무게가 같으면 동일한 자세로 일관성 있는 스윙을 할 수 있다는 나름의 확신으로 클럽 연구를 시작했다. 물리학도답게 클럽 피팅을 위한 수치들을 직접 계산하고 산출했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그는 자신만을 위한 클럽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물론 샤프트 길이가 같은 아이언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밸런스 등을 고려하지 않고 길이만 잘라냈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필드의 물리학자' 디섐보와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아이언 길이가 같을 때 스윙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은 대부분 전문가도 인정하고 있다. 특히 다루기 어려운 롱 아이언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다. 문제는 '거리 편차가 일정할까'라는 물음표다. 해답만 찾을 수 있다면 골프 역사를 바꿔 놓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발견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같은 길이 아이언을 생산하는 토종업체 다이아윙스의 정상화 대표를 통해 궁금증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정 대표 역시 디섐보와 같은 이공계 출신이다. 정 대표는 약 5년 전부터 단일 길이 아이언을 개발하기 위해 몰두해왔다. 개발을 마쳤지만 초기 제품 생산비가 부족했다.
그는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선구매자를 모집했다. 클럽 제작 이론과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했고 '구애 작전'은 성공했다. 가까운 지인들이 동참하면서 초기 100세트를 제작해 납품했다. 호불호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구매자는 클럽 성능에 놀라움을 나타냈고, 입소문이 나면서 점차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정 대표의 이론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그는 "최적의 헤드 무게를 찾아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실험했다. 헤드마다 미세하게 무게중심 위치를 조정해 밸런스를 맞췄고, 로프트 각의 변화만으로 일정한 거리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스윙 스타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클럽별로 약 10m 정도의 비거리 차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이아윙스 싱글 렝스(single length) 아이언의 길이는 8번 아이언으로 맞췄다. 한국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가장 편하고 자신 있어 하는 클럽이 8번 아이언이라는 조사 결과를 제품 제작에 참고했다. 모든 제작 과정을 일본에서 한다는 점도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정 대표는 디섐보의 활약에 조용히 미소를 보내고 있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자신의 고집(?)이 디섐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는 "아마추어 골퍼들이 편한 장비로 골프를 즐기면 좋겠다"면서 디섐보의 '1000만 달러' 대박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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