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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김용준의 골프규칙]①홀인원일까 아닐까?

  • 2019.11.07(목) 07:30

[골프워치]
행운을 막은 나뭇가지

[시시콜콜]은 김용준 골프 전문위원이 풀어가는 골프 규칙 이야기다. 김 위원은 현재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골퍼이자 경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경기위원 교육과정 '타스(TARS, Tournament Administrators and Refree's School)'의 최종단계인 '레벨3'를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한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김 위원이 맛깔나게 풀어갈 [시시콜콜]은 매주 한 차례씩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바람이 아주 세게 부는 날이었다. 선배 경기위원이 전화를 했다.

"김 위원, 사진 하나 보낼 테니 좀 봐 줘"라고. 그리고 카카오톡으로 날아온 사진 한 장. 흐흐흐. 나는 웃음부터 나왔다. 전화가 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선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어찌 된 일인가요"라고 물었다. 지인이 질문한 것이라고 했다. 홀인원 된 거냐고.

사정은 이랬다. 선배의 지인이 파3홀에서 친 볼이 홀 쪽으로 굴러 가서 홀에 걸친 것처럼 보이자 다들 탄성을 질렀단다. '홀인원' 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지인은 '잔치'를 벌일 생각에 걱정도 했을 테고. 그런데 퍼팅 그린에 가서 보니 이런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져 있더란다. 함께 라운드 하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홀인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 지인만 홀인원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중이고. 옥신각신 하다가 아는 경기위원에게 물어서 홀인원 여부를 가리자고 했다나.

선배가 내게 물었다. "김 위원 이거 홀인원이야 아니야". 독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볼은 과연 홀에 들어간 것일까? 아닐까? 10초 동안 답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10,9,8,7,6,5,4,3,2,1! 자, 답을 골랐는가? 정답을 알려주기 전에 관련 골프 규칙 한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바로 깃대에 기댄 볼에 대한 규칙이다. '볼이 깃대에 기대 있으며 볼 일부라도 지면보다 아래로 홀 안에 들어가 있으면 홀인이다'.

규칙을 보면 깃대에 기댄 볼이 홀인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볼 일부가 지면보다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다시 맨 위로 가서 사진을 보자. 어떤가? 볼은 분명히 일부가 지면 밑으로 내려가 있다. 그렇다면 홀인원일까? 성급하게 답을 내기 전에 다른 조건도 마저 따져 보자. 바로 '깃대에 기대어 있어야 한다' 부분 말이다. 어떤가? 사진 속 볼이 깃대에 기대어 있는가? 아니다. 나뭇가지가 앞 길을 막고 있다.

이처럼 두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는 충족하고 하나는 충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하며 ~해야 한다'는 규칙 아닌가. 그렇다면 두 조건을 동시에 다 충족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 속 볼은? 이제 독자도 판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볼은 홀인원이 아니다.

"흐흐흐, 홀인원 아닙니다"라고 나는 선배에게 즉시 답을 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혹시 실수할까 봐 김 위원에게 확인하느라고". 선배 역시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선배는 일단 홀인원이 아니라는 '반가운 소식'을 지인에게 전해주고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 우리 둘은 통화를 하며 남은 부분을 공부했다. 홀인원이 아닌 것은 이미 확실하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사진 속 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재확인한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먼저 공식 대회(일반적 스트로크 방식)에서 선수가 사진 속 볼을 홀인원라고 생각하고 그냥 집어들면 어떻게 될까? 마크 하지 않고 퍼팅 그린 위 볼을 움직였으니 1벌타를 받는다. 진짜 벌타를 받느냐고? 진짜다. 무심코 볼을 집어들었다면 홀 가장자리에 볼을 다시 내려놓고 마무리 해야 한다. 이 때 점수는 '파'이다. '버디'가 아니라. 마크하지 않고 볼 집어올린 것에 대해 1벌타를 받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끝이면 다행이다.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만약 그 선수가 홀인원이라고 생각하고 볼을 집어 들고 다음 홀로 가서 티샷을 했다면? 그는 완전히 망한 것이다. 실격이기 때문이다. 실격이라고? 엥? 단순히 착각한 것인데 진짜 실격이냐고? 그렇다. 이전 홀을 마치지 않고 다음 홀을 플레이 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고 다시 돌아가서 이전 홀을 마무리 해도 소용 없다는 얘기다. 왜 그러냐고? 규칙에 따르면 홀은 순서대로 플레이 해야만 한다. 그리고 스트로크 방식이라면 반드시 홀을 마쳐야만 하고. 그러니 홀을 마치지 않고 다음 홀을 플레이 하면 중대 위반이다. 벌은 실격이고. 규칙을 모르거나 착각한 선수가 다행히 다음 홀 티샷을 하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가서 마무리 하고 오면 된다. 홀 가장자리에 놓고 툭 쳐서 말이다. 괜히 마크 없이 볼을 집어든 벌타는 물론 받는다. 그만 하면 다행이다. 만약 마지막 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일단 스코어 카드를 제출했다면 이미 늦었다. 실격이란 얘기다. 스코어 카드를 내기 전이라면? 돌아가서 바로 잡고 와야 한다. 뒤팀이 플레이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무리 해도 상관 없다.

나와 선배는 명색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경기위원답게 다른 가능성도 짚었다. 바로 볼을 집어드는 대신 '나뭇가지를 치워서 볼이 홀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고민해 본 것이다. 홀에 들어간 것으로 인정할까? 당연히 아니다. 그럴거면 진즉 홀인원이라고 인정하지. 나뭇가지를 치우다 볼이 홀에 떨어져도 절대 홀인이 아니다. 그럴 때는 볼을 꺼내서 홀 가장자리에 놓고 한 번 더 쳐서 마무리 해야만 한다. 컨시드가 있는 친선 경기라면? 굳이 퍼팅 할 필요는 없으니 이 상태 그대로 '버디'로 인정하면 된다. 절대 홀인원은 아니고.

또 다른 질문도 나올 수 있다. 나뭇가지를 치워서 볼이 움직였으니 오히려 벌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 말이다. 규칙을 제법 아는 골퍼가 품을 수 있는 궁금증이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쉽고 분명하게 답을 냈다. '벌타가 아니다'라는 답을. 퍼팅 그린에서는 나뭇가지 같은 루스 임페디먼트를 치우다가 볼을 움직여도 벌타가 없다. 볼을 원래 자리에 옮겨 놓고 플레이 하면 그만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사진 속 볼 주인이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홀인원이 아니라서. 홀인원을 놓치고 좋아해야 하는 현실은 조금 서글프다.

김용준 골프전문위원(더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 겸 KPGA 경기위원 &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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