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은 김용준 골프 전문위원이 풀어가는 골프 규칙 이야기다. 김 위원은 현재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골퍼이자 경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경기위원 교육과정 '타스(TARS, Tournament Administrators and Refree's School)'의 최종단계인 '레벨3'를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한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김 위원이 맛깔나게 풀어갈 [시시콜콜]은 매주 한 차례씩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오늘도 문제로 시작한다. 정답을 맞혀보기 바란다.
골프 코스 안에서 모래로 가득 찬 곳은 다 벙커일까?
보기 1번, 벙커다. 보기 2번, 벙커가 아닐 때도 있다.
10,9,8,7,6,5,4,3,2,1!
정답은? 보기 2번, ‘벙커가 아닐 때도 있다’이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면 골프깨나 친 독자다. 엥?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따진다면 골프 월드에 입문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독자일 테고.
일정한 구역에 모래가 가득 차 있는데도 벙커가 아닐 때도 있다. 바로 ‘웨이이스 에어리어’일 때다.
웨이스트 에어리어는 뭐냐고? 말 그대로다. ‘버려진 구역’이라는 뜻이다. 모래사장인데도 경기위원회가 벙커로 지정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모래와 덤불이 뒤섞인 자리 따위가 그렇다. 사막 지형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조금 더 깊이 따지자면 벌타를 받고 무한 후방 드롭 옵션을 택하려고 할 때 그 후방에 일반 구역이 전혀 없을 때도 지정할 수 있다. 지금 모래로 가득 찬 구역 중에서도 벙커가 아닌 경우를 얘기하는 중이다. 쉽게 말하면 벌타를 받고도 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없는 '억울함'을 피하기 위해 그 구역을 웨이스트 에어리어로 지정한다는 얘기다.
이 ‘웨이스트 에어리어’가 가끔 골퍼를 잡는다. 물론 주로 부주의한 골퍼를 잡긴 하지만. 어떻게 잡느냐고? 바로 ‘웨이스트 에어리어’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골프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벙커와 웨이스트 에이리어는 근본적으로 다른 규칙을 적용한다. 모래가 있다는 것만 같을 뿐이다. 벙커에서는 볼 뒤에 클럽을 대면 안 된다. 연습 스윙 할 때 모래를 쳐도 안 되고. 아직도 이 규칙을 모른다면? 절대 애독자가 아니다. 바로 지난주에 쓴 [시시콜콜] 5회 ‘벙커에서 모래에 클럽을 대도 된다고?’ 편을 꼭 보고 오기 바란다.
벙커에서와 달리 웨이스트 에어리어에서는 볼 뒤 모래에 클럽을 대도 된다. 연습 스윙을 할 때 모래를 '탁탁' 쳐도 되고. 웨이스트 에어리어에서는 벙커처럼 규칙이 엄격하지 않다. 패널티 구역에서도 바닥에 클럽을 대도 된다. 연습 스윙 때 바닥을 쳐도 되고. 페널티 구역에서도 되는데 설마 웨이스트 에어리어에서 안 되겠는가? 일반구역과 같은 규칙을 적용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착각해 문제가 생긴다. 벙커를 웨이스트 에어리어인 줄 착각해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엄연히 벙커인데 웨이스트 벙커라고 생각해 볼 뒤에 클럽을 갖다 대거나 연습 스윙을 하면서 모래를 쳤다가 망한다는 얘기다. 이 때 벌타는 2벌다.
이런 경우가 공식 대회에서 드물지 않게 나온다. 이유를 듣고 보면 하나같이 ‘벙커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큰 모래사장인데 잡풀도 있으니 웨이스트 에어리어려니 하고 플레이 하다가 낭패를 봤다는 얘기다. 항의해도 소용 없다. 공식 대회 때는 코스 내 특정 구역이 벙커인지 웨이스트 에어리어인지 반드시 공지한다. 그걸 건성으로 보다가 손해를 보는 것이니 누굴 탓하랴!
지난 주말 열린 ‘히어로 월드 골프 챌린지’에서는 미국 선수 패트릭 리드가 웨이스트 에어리어에서 엉뚱한 짓을 해서 벌타를 받았다. 변명까지 앞 뒤 안 맞게 해서 이미지는 더 나빠졌고. 그가 벌타를 받은 자리는 분명 벙커가 아니었다. 웨이스트 에어리어였다. 그런데도 그는 모래와 관련 있는 규칙을 어겨 벌타를 받은 것이다.
아니,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벌타를 받았냐고? 웨이이스트 에어리어에서는 모래에 클럽을 대도 된다면서. 그는 반칙 중에서도 치졸한 반칙을 했다. 바로 라이(볼이 놓인 상태)를 개선한 것이다. 어떻게 개선했냐고? 다음과 같은 짓을 했다.
패트릭 리드는 연습 스윙을 하면서 백 스윙 때 볼 뒤 모래를 살짝 걷어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벙커가 아닌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문제가 된다. 볼 바로 뒤에 있는 모래는 걷어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벙커가 아니라 어디서라도 그렇다. 볼 바로 뒤 야생화나 잡초를 꺾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모래를 발로 '꾹' 밟아도 반칙이다. 바로 라이를 개선하는 행동이어서 그렇다.
리드는 볼 한참 뒤여서 문제 없지 않느냐고 변명했다. 그런데 그 변명이 더 화를 불렀다. 녹화한 영상을 보니 볼 4인치쯤 뒤였던 것이다. 4인치라면 10센티미터 남짓한 거리다. 그 정도면 분명히 샷에 영향을 미친다. 분명 반칙이다. 비난이 이어진 것은 당연지사. 그 선수에게 2벌타를 준 경기위원 판단은 지극히 옳았기 때문이다.
양심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경솔해서 벌타를 받은 사례도 있다. 갤러리가 밟고 지나다닌 탓에 긴 러프가 조그마한 벙커를 덮다시피 했다. 그래서 벙커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이런 곳을 벙커가 아니라고 착각하고 무심코 클럽을 볼 뒤 모래에 댔다가 2벌타를 받은 사례가 몇 번 있다.
경기위원가 발표하는 경기 조건에는 코스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이것을 꼼꼼히 봐야 한다. 그런데 어디 모두가 그런가? 투어를 다니다 보면 ‘오늘도 어제 같겠지’ 하고 방심할 수 있다. 그러다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독자가 프로도 아니고 공식 경기가 아니라도 주의해야 한다. 큰 모래사장이 벙커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면 꼭 캐디에게 물어보고 나서 플레이 할 일이다. 혹시 규칙에 엄격한 사람과 함께 라운드 하고 있을 지도 모르니. 캐디도 모른다면? 초보이거나 사명감이 부족한 캐디이니 마샬에게 물어보라고 하면 된다. 국내 골프장에도 모래로 가득 차 있는데도 웨이스트 에어리어로 지정한 곳이 제법 있다. 나도 몰라서 손해 본 적이 있다. 무심코 플레이 하다가 망신 산 적도 있고.
김용준 골프전문위원(더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 겸 KPGA 경기위원 &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