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올바이오파마, SK바이오팜 등과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국내 바이오시장 '큰손'으로 떠오른 미국계 회사가 있다. 독특한 방식의 사업 투자로 성장하고 있는 로이반트사이언스란 곳이다.
이 회사의 남다른 성장 전략에 관심이 모인다. 로이반트는 분야를 막론하고 유망한 물질을 발견하면 모두 사들인 후, 이를 개발하는 자회사를 세워 빅파마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는 HLB, 부광약품 등이 이와 유사한 전략으로 신약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바이오업계 게임체인저 부상
미국계 생명공학 기업인 로이반트사이언스는 현재 한올바이오파마, SK바이오팜, 에스티팜 등 다수의 국내 제약바이오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SK바이오팜의 모회사인 SK와는 지난 2020년 TPD(표적단백질분해제) 개발 합작사인 프로테오반트를 설립하기도 했다.

로이반트는 신약개발 분야에서 오랜 업력을 쌓은 바이오기업 같지만 사실은 업력이 짧은 투자회사에 가깝다. 로이반트는 지난 2014년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미국계 인도인 비벡 라마스와미가 1억달러(1400억원)를 투자받아 설립했다. 로이반트라는 사명에서 '로이'는 투자수익률(ROI)를 뜻한다.
로이반트의 사업모델은 단순하다. 먼저 분야를 막론하고 유망한 후보물질을 사들인다. 다음으로 이 약물을 개발하기 위한 자회사를 꾸린 후 이를 통째로 매각하는 것이다.
현재 한올바이오파마와 협업 중인 로이반트의 자회사 이뮤노반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뮤노반트는 2017년 한올바이오파마의 자가면역질환 후보물질인 '바토클리맙'과 'IMVT-1402'를 도입한 이후 이를 전문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설립됐다.
로이반트는 '엑소반트', '제네반트' 등 이렇게 세운 자회사 이름에 반트를 붙이며 이 사업모델은 반트 모델로 불리기도 한다. 로이반트는 다수의 자회사를 만들고 파는 과정을 반복하며 현재는 이뮤노반트, 풀로반트 등 10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로이반트는 이 모델을 통해 현재까지 임상 3상 시험을 10번가량 수행했으며 2022년 판상형 건선 치료제인 '브이타마'의 미 FDA(식품의약국) 허가를 따내기도 했다. 지난해 오가논은 브이타마를 개발한 자회사 더마반트를 로이반트로부터 12억달러(1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23일 기준 나스닥 거래소에 상장한 로이반트의 시가총액은 74억달러(10조5000억원)에 달한다.
한국판 로이반트는
로이반트의 사업모델이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국내에서는 동일한 모델을 영위하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망한 자산을 인수하기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시장 구조상 빠른 엑시트(투자금회수)를 위한 자회사 IPO(기업공개)를 시행하기 어려워서다.
실제 지난 2018년 국내 IT 서비스 기업인 동양네트웍스가 '한국판 로이반트'를 표방하면서 바이오산업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본 적이 있다. 동양네트웍스는 같은 해 독일계 제약사 메디진의 지분을 인수하며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재무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며 상장폐지됐다.
항암, 자가면역질환 등 특정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신약 개발사를 인수해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로이반트와 유사한 사업모델을 가진 곳으로는 HLB와 부광약품을 꼽을 수 있다.
HLB는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지난해 말 기준 총 47곳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부분 국내 비상장사 바이오기업으로 HLB는 이를 통해 항암뿐만 아니라 CNS(중추신경계), 안과 등 다양한 분야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현재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품목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간암신약 '리보세라닙'도 2018년 HLB가 LSK바이오파트너스를 인수하면서 들인 물질이다.
HLB 관계자는 "M&A를 통한 신약개발 전략은 일명 '시간을 사는 전략'"이라며 "개발 시간과 비용,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파이프라인과 기술력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성장 방식이다. 또한 시장 진입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빅파마들도 기존 파이프라인 보완, 신기술 조기 확보, 경쟁사 대비 우위 선점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M&A를 진행하고 있다"며 "저희는 유망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국내든 해외든 검토를 거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광약품은 HLB와 달리 주로 해외 바이오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현재 부광약품은 △덴마크계 바이오기업인 콘테라파마 △싱가포르 재규어 테라퓨틱스 △이스라엘계 프로텍테라퓨틱스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이를 통해 희귀질환과 CNS, 항암 세 분야에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