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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테라, 청정라거냐 테슬라냐

  • 2019.04.23(화) 10:24

하이트진로, 테라 출시 한 달…맥주전쟁 재점화
'맥주 본연의 맛 vs 소맥 경쟁력' 경쟁 포인트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100% 천연암반수, 하이트', '소폭에는 카스, 카스처럼'

지난 1990년대 이후 국내 맥주 브랜드의 '운명'을 갈랐던 상징적인 문구들입니다. 맥주하면 으레 'OB맥주'였던 시절이 하이트의 '천연암반수' 공세로 뒤집혔고, 십수 년 뒤에는 카스가 '소폭'에 더 힘을 실으면서 다시 판세를 뒤집었죠. 이후 지금까지 '카스'가 왕좌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 맥주시장을 보면 한 번은 '물 논쟁', 또 한 번은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어마시는 폭탄주)의 유행'으로 판세가 뒤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카스가 주도권을 쥔 후 비교적 잠잠하던 국내 맥주시장이 최근 다시 달아오르고 있는데요. 지난 2010년대 초반 카스에 왕좌를 내줬던 하이트진로가 신제품 '테라'를 앞세워 다시 강력한 공세에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출시 한 달이 지나서 당장 승패를 단정할 수는 없는데요. 업계에선 오랜만에 불붙은 두 업체 간 맥주전쟁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흥미롭게 지켜보는 분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카스와 테라가 선봉에 선 맥주전쟁의 관전 포인트는 뭐가 될까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우선 하이트진로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무기는 바로 '깨끗함'입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라는 제품명에 '청정 라거'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데요. "호주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맥아만을 100% 사용하고, 발효 공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리얼 탄산만을 100% 담아 라거 특유의 청량감을 강화했다"라는 게 하이트진로의 공식적인 소개 문구입니다. 녹색의 제품 패키지 역시 '청정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는 지난 1993년 당시 조선맥주 즉 지금의 하이트진로가 신제품 '하이트'를 출시했을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입니다. 당시 조선맥주는 '지하 150미터에서 끌어올린 천연 암반수'라는 광고 문구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는데요. 그러면서 이른바 '수질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제품의 물이 더 깨끗한지를 두고 업체들이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겁니다.

당시 OB맥주는 두산의 계열사였습니다. 1991년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페놀을 유출한 '페놀사건'이 터졌고, 이후 소비자들이 OB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OB맥주는 수질 오염의 주범이라는 이미지에 시달렸는데, 하이트가 '천연 암반수'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극명한 대비 효과를 누렸습니다.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둡니다. 하이트는 출시 3년 만인 1996년 국내 맥주업계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효과적인 마케팅을 통해 맥주시장의 '프레임'을 바꿨고, 결국 시장의 주도권도 장악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요? 일단 과거 '수질 논란'같은 이슈가 불거질 것 같진 않습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가 기존 맥주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원료와 공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경쟁사들이 '발끈'하는 분위기도 없습니다. 과거 '페놀 사건'처럼 부정적인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카스 광고 포스터. (사진=오비맥주 제공)

경쟁사들이 주목하는 포인트는 따로 있습니다. 국내 맥주시장에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소맥' 시장을 테라가 공략할 수 있을지 여부입니다.

지난 수년간 소맥시장의 대세는 카스였습니다. 오비맥주의 카스와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을 섞어 마시는 '카스처럼'이 소맥의 대명사가 된 건데요. 이 작명 덕분에 오비맥주의 카스가 맥주시장 1위 자리를 안정적으로 지키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물론 카스가 소맥 폭탄주의 힘만으로 1위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닙니다. 카스는 1994년 출시 이후 '톡 쏘는 청량감'을 장점으로 내세워 젊은 층을 제대로 공략했고, 이후 꾸준히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다만 카스가 하이트를 확실하게 제쳤다고 여겨지는 2012년쯤 국내 주류시장에서 소맥 열풍이 불었고, 여기서 '승리'한 게 1위를 차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만큼 소맥시장의 비중이 크다는 건데요. 벌써 시장에선 테라로 만든 '소맥'의 이름이 돌고 있습니다. 테라와 참이슬을 결합한 '테슬라'입니다. 테라와 참이슬 모두 하이트진로가 생산하는 제품인 탓에 하이트진로가 자작한 작명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습니다. 다만 '청정 라거'를 내세우는 하이트진로가 맥주 본연의 맛이 아닌 소맥 경쟁력을 공식적으로 밀기엔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어쨌든 SNS 등에선 이 이름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소맥시장에서 '테슬라'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을 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누군가 이 이름을 쓰도록 인위적으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쓰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데요. 오로지 소비자의 판단에 달린 겁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맛'이겠죠. 과거 하이트가 1위를 차지한 게 오직 마케팅의 힘이라고 할 수 없고, 카스 역시 소폭만으로 왕좌를 차지한 건 아닙니다. 많은 소비자가 이 제품이 맛있다며 선택한 덕분일 겁니다. 하이트진로가 가장 강조하는 포인트도 바로 테라의 '청정한 맛'입니다.

요즘 맥주시장은 과거와는 분위기가 또 다릅니다. 수많은 수입맥주가 국내에 들어왔고, '4캔에 만원' 등 저가 공세에 나서면서 국내 맥주 브랜드들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왕좌 탈환을 내세운 테라가 하이트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또 그 원동력은 무엇일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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