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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왕좌의 게임]①'카스테라' 전쟁

  • 2019.12.24(화) 10:32

서울 중심 상권 잡은 테라, 160일만에 2억병 돌파
'가격조정·대표교체' 반격나선 오비…OB브랜드 강조
내년이 사실상 본게임…'카스테라' 전쟁 본격화할 듯

올해 식품업계에선 왕좌의 자리를 놓고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그간 쉽게 흔들리지 않았던 부동의 1위 그리고 이를 따라잡으려는 2위의 '기싸움'은 두 업체 간 단순한 순위 경쟁을 넘어 관련 산업 전반에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소비자들에겐 또다른 흥밋거리를 선사했다. 과연 새해엔 왕좌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을까. 제품별로 경쟁 판도를 전망해본다. [편집자]

지난 13년간 독야청청 맥주시장 선두자리를 지켜온 카스가 올해 들어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증권가에선 '13년 주기설(說)'이란 말이 등장했다. 그간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 추이를 고려할 때 이젠 '왕좌'의 주인공이 바뀔 때가 된 게 아니냐는 내용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

우리나라 맥주시장은 지난 1990년대 이후 왕좌의 주인공이 두 번 바뀌었다. 한 번은 지금의 하이트진로가 하이트라는 제품으로 오비맥주의 아성을 무너뜨렸던 1999년이다. 이후 오비는 다시 카스를 내세워 2012년에 왕좌를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하이트가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던 기간(1993년~2006년)이 13년이고, 이후 다시 카스가 올해까지(2006년~2019년) 상승세를 이어온 기간이 13년이다. 결국 이제 다시 하이트가 치고 나갈 때가 됐다는 분석이다.

물론 '13년 주기설'을 뒷받침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는 없다. 아직은 단순한 설에 불과하다. 단지 이제 와서 뒤돌아보니 13년이라는 공통점이 보였을 뿐이다. 게다가 카스의 시대가 정말 끝난 것인지 아직 단정하기는 이른 시점이기도 하다.

다만 내년 맥주시장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임에는 틀림없다. 과연 하이트진로는 테라를 앞세워 13년 주기설을 '현실'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카스가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면서 설(設)은 설(設)일뿐임을 입증할 것인가.

◇ 테라, 서울 주요 상권 잡았다

사실 국내 맥주시장에서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간 격차는 아직 꽤 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테라가 출시되면서 점유율에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은 오비맥주가 약 60%를 차지했고, 그 뒤를 하이트진로가 30%로 뒤따르는 형국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2~3분기 오비맥주의 점유율이 5% 안팎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이를 고려하더라도 역전이 이뤄지려면 시간이 꽤 필요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13년 주기설'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테라의 초반 기세가 워낙 좋아서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8월 말 테라 판매량이 160일 만에 2억 병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초에는 판매량이 100일 만에 1억 병을 넘어선 바 있다. 지금까지는 갈수록 더 잘 팔리고 있는 셈이다.

과거 카스의 판매량 추이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출시 이후 판매량 1억 병 달성까지는 카스(93일)가 테라(101일)보다 빨랐다. 그러나 2억 병 달성은 테라(160일)가 카스(173일)를 앞서기 시작했다.

시장에선 특히 주요 상권 업소의 변화에 더욱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이 지난 9월 강남과 여의도, 홍대 등 주요 지역 식당의 맥주 점유율을 설문 조사한 결과 테라가 61%로 카스(39%)를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상권이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이 흐름이 서울 외곽과 수도권, 지방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게 메리츠종금증권의 판단이다.

◇ 반격 나선 오비맥주, 왕좌 수성할까

다만 테라의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란 보장은 없다. 통상 맥주나 소주 등 주류 신제품이 나오면 새로운 제품에 대한 관심에다 공격적인 마케팅 효과가 더해지면서 초반 점유율이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게다가 주류시장에선 반짝 인기를 끌었다가 서서히 자취를 감춘 브랜드가 수두룩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테라의 공세에 맞서 오비맥주 역시 왕좌를 지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비맥주는 지난 4월 테라 출시 시점에 맞춰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했다가 8월에 다시 가격을 한시적으로 인하한 바 있다. 이후 지난 10월 다시 2020년 말까지 인하된 가격으로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오비맥주의 오락가락 '가격 정책'은 테라를 견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해석된다. 테라 출시 직전에 갑자기 가격을 올린 이유는 도매상들이 카스를 미리 구매해 창고에 쌓아두도록 함으로써 테라를 받지 못하도록 유도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그래야 테라의 초반 기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후 다시 가격을 인하해 '정상화'한 이유는 가격 경쟁력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오비맥주의 이 전략은 다소 성급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면서 도매상과 소비자들의 빈축만 샀기 때문이다.

사진=오비맥주 제공.

이에 따라 오비맥주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모양새다. 우선 내년 1월 1일 자로 대표를 교체할 계획이다. 오비맥주의 모기업인 AB인베브의 남아시아 지역 사장인 벤 베르하르트가 새 수장으로 오비맥주를 이끌게 된다. 벤 신임 사장은 주로 영업과 물류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맥주 전문가로 꼽힌다. 업계에선 오비맥주가 카스는 물론 최근 국내 맥주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수입맥주 사업에도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오비맥주가 최근 OB라거를 다시 시장에 내놨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OB라거는 지난 1996년 영화배우 박중훈과 가수 박준형이 출연한 이른바 '랄랄라 댄스' 광고로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다. 이번에는 원조 모델인 박준형과 함께 광고계의 대세로 떠오른 배우 김응수가 출연해 예전 '랄랄라 댄스'를 선보이는 광고를 내놨다. 과거 오랜 기간 왕좌의 자리를 지켜왔던 OB 브랜드를 강조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오비맥주가 하이트진로의 공세에 맞서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서면서 카스와 테라의 이른바 '카스테라' 전쟁은 내년에 더욱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세를 이어가려는 테라와 그 흐름을 꺾으려는 카스간 '본게임'이 펼쳐지는 셈이다.

심은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11월부터 오비맥주 출고가가 정상화했고, 롯데칠성도 경쟁에 가세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내년 맥주시장은 올해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를 공산이 크다"면서 "일본맥주를 필두로 매출이 큰 폭으로 줄었던 수입맥주도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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