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솥밥 어떨까요"…MZ직원 아이디어, 현실이 됐다

  • 2025.04.11(금) 07:30

[비즈人워치]CJ푸드빌 파일럿 스토어 '누룩' 권수용 점장
'힙지로'서 따뜻한 솥밥으로 '진짜 한식' 승부수

CJ푸드빌의 권수용 누룩 점장(과장)이 을지토끼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CJ푸드빌

MZ세대에게 '힙지로'로 통하는 을지로3가 일대는 오래된 노포와 새롭게 생겨난 트렌디한 식당들이 가득한 동네다. 인쇄소와 조명 가게, 공구 상점들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을 탐험하다보면 낡고 허름한 건물들 사이에서 '힙' 한 맛집과 카페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의외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손맛이 담긴 반찬 등 정갈한 한식을 캐주얼하게 맛볼 수 있는 식당은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을지로에 지난달 29일 따뜻한 솥밥을 즐길 수 있는 한식집이 문을 열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누룩'이다. 누룩은 '진정한 K푸드는 밥'이라는 90년대생 젊은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CJ푸드빌 파일럿스토어 을지토끼굴에서 권수용 누룩 점장(과장)을 만나 누룩과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외식업 꿈을 키운 청년

누룩은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파일럿 스토어 '을지토끼굴'의 첫 프로젝트다. 을지토끼굴은 CJ푸드빌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실제 매장으로 구현하고 테스트 해보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을지토끼굴의 첫 프로젝트로 낙점된 누룩은 권수용 점장이 기획했다.

권 점장은 대학생 시절 내내 여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외식업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그의 첫 아르바이트 근무지가  CJ푸드빌의 '빕스'기도 했다.

권 점장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장에서 고객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좋았다"며 "우리 브랜드, 우리 매장에서 맛있게 식사하고 가는 고객들이 '그래, 거기 너무 좋았지'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전공은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그가 2016년 CJ푸드빌에 입사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누룩의 한식 요리들. / 사진=CJ푸드빌

권 점장은 CJ푸드빌 외식본부에서 5년간 직영 매장들을 관리하다가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베이커리본부로 옮겨 4년간 가맹영업 직무를 맡았다. CJ푸드빌의 가장 큰 두 개의 사업에서 모두 경험을 쌓은 후 그는 '나만의 아이디어를 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 CJ푸드빌의 사내 공모 프로젝트 '미라클 50'이었다.

미라클 50은 CJ푸드빌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한 후 50일 동안 팀 경연을 통해 신사업, 신규 브랜드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다. 권 점장은 많은 음식 중에서도 '한식'을 내세워 지난해 두 번째로 진행된 미라클 50에 참여했다.

권 점장은 "코로나19 이후 배달 음식, HMR(가정간편식) 시장이 확대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한식을 덜 먹게 됐다"며 "젊은 사람들이 정말 맛있고 제대로 된 진짜 한식을 맛볼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 점장이 특히 주목한 건 밥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밥 먹었니' 하는 안부인사가 있을 정도로 한식은 밥과 밀접하다"면서 "진정한 K푸드는 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밥을 염두에 두고 브랜드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꿈이 현실로

권 점장의 아이디어는 당장 추진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CJ푸드빌이 이미 '계절밥상'을 운영하며 한식에 대한 경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권 점장은 업무를 마친 후 개인 시간을 쏟아부으며 기획서를 준비하고 사업을 다듬어갔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스터디카페 회원권을 끊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CJ푸드빌 경영리더들이 제공한 멘토링도 큰 힘이 됐다. 

권 점장은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실무 리더들, 경영 리더들의 조언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계속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쳤다"며 "어느 의견 하나 놓치지 않고 나의 브랜드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뜻 깊었다"고 돌이켰다. 그리고 마침내 권 점장은 미라클 50 2기의 대상을 수상해 드디어 자신이 기획한 브랜드를 직접 운영할 기회를 잡았다.

누룩의 내부 전경. / 사진=CJ푸드빌

권 점장의 아이디어가 채택된 후 실제 매장으로 구체화하는 단계가 시작됐다. CJ푸드빌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지원자를 받는 '잡포스팅'과 사내 우수 인재를 추천하는 '리쿠르팅'을 통해 4명의 파일럿스토어TF를 만들었다. 상품 기획자, 마케팅 담당자, 영업 담당자, 메뉴 개발 담당자가 TF에 참여하게 됐다. 이들 모두 "열정과 의지가 넘치는 구성원"이라고 권 점장은 귀띔했다.

이들은 3개월 여간 함께 밤을 새워가며 치열하게 매장 오픈을 준비했다. TF 구성원에게는 각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팀장들이 멘토가 되어 다양한 조언도 해줬다. 이외에도 CJ푸드빌 내 인테리어, 비주얼 디자인, IT 등 다양한 밸류체인 담당자들도 매장 오픈을 도왔다.

누룩의 갈치솥밥. / 사진=CJ푸드빌

매장 오픈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권 점장은 누룩을 준비해야하기도 했지만 을지토끼굴 매장을 세팅하는 일도 병행해야 했다. 을지토끼굴은 누룩 이후에도  언제든지 임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가변경 가구와 모듈형 주방으로 실험실처럼 만들어졌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그랜드 오픈일인 지난 10일 이전에 12일간 소프트 운영 기간을 가졌다. 권 점장은 "고객과 직원의 동선을 고려해 물품을 배치하거나 트레이 크기를 고려해 장을 맞추는 일까지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봐야한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메뉴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솥밥'이라는 아이템은 일찌감치 정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솥밥을, 어떤 반찬과 함께 낼지, 또 저녁 메뉴로는 어떤 것을 선보일지 등도 치열하게 토론했다. 메뉴는 CJ푸드빌 내부 품평회를 거쳐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권 점장은 "1차 품평회에서는 10여 가지 메뉴를 내놨는데 거기에서 살아남은 메뉴가 하나도 없었다"며 웃었다.

진정한 한식

지난 10일 그랜드 오픈한 누룩은 낮에는 솥밥반상을, 저녁에는 한식 안주 요리를 판매하고 있다. 누룩의 시그니처 메뉴는 역시 권 점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솥밥이다. 솥밥의 쌀은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 수향미와 오대미를 최적의 비율로 조합했다. 솥밥 재료의 본연의 맛을 풍부히 살리는 '비법'도 활용됐다.

특히 인기가 높은 솥밥은 부드러운 순살 갈치와 뭉근히 익힌 무를 올린 '갈치 솥밥'이다. 흔치 않은 솥밥이다보니 고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권 점장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계절 솥밥'이다. 봄을 맞아 향긋한 미나리와 생 바지락을 더해 완성했다.

모든 솥밥은 녹진하게 끓인 된장찌개, 매장에서 직접 담근 겉절이, 누룩을 첨가한 간장을 함께 제공한다. 특히 겉절이는 CJ푸드빌 내에서 '한식 대가'로 불리는 메뉴 개발자의 레시피로 완성했다.

누룩의 텃밭솥밥. / 사진=CJ푸드빌

저녁 안주류는 을지로를 찾는 젊은 사람들이 한식 메뉴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구성됐다. 달큰한 무로 만든 '무우 지짐이',  들기름으로 고소하게 부쳐낸 '들기름 두부전' 등을 전통주와 함께 맛볼 수 있다. 추천 메뉴인 '장모님 육전'의 경우 TF 메뉴 개발자의 실제 장모님 레시피가 활용됐다. 전통주 역시 사내 블라인드 품평회를 거쳐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주류들을 엄선했다.

고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을지로 일대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반응이 특히 좋다. 집에서 차린 한식과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어서다. 김치 한 조각, 된장찌개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워 먹은 한 20대 여성 고객은 후 냅킨에 '너무 맛있었어요' 라는 문구를 적어 하트 모양으로 접어 건네주기도 했다. 권 점장은 "우리의 진정성이 고객에게도 통한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권 점장의 기억에 남은 손님은 소프트 오픈 둘째날이었던 지난달 30일 매장을 찾은 50대 부부다. 그는 "을지로에는 겉만 화려하고 진정성은 없는 음식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CJ푸드빌이 한식에 진짜 진심을 담은 것 같다, 진정성 있게 음식을 만들어줘서 진짜 너무 고맙다고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CJ푸드빌 권수용 누룩 점장이 9일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누룩의 미래는 어떨까. 누룩은 을지토끼굴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매장이다. 언제까지 운영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누룩 이후 어떤 브랜드가 을지토끼굴에서 또 테스트를 거치게 될지 누룩이 정식 브랜드로 론칭하게 될지도 모두 미지수다. 권 점장 역시 다시 베이커리본부로 돌아갈 수도, 다른 브랜드의 기획자가 될 수도, 정식 브랜드가 된 누룩 담당자가 될 수도 있다. 그는 "뭐든지 열린 결말"이라고 표현했다. 

대신 누룩은 앞으로도 조금씩 변화해갈 예정이다. 테스트 매장으로서 수시로 고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소통하면서 개선점을 점검하고 새로운 메뉴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권 점장은 "단기적으로는 누룩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역시 푸드빌은 F&B를 잘하는 기업'이라고 소문나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소비자와 더욱 밀착해 소통하면서 소비자의 니즈, 트렌드를 충분히 반영한 메뉴와 브랜드 콘텐츠를 개발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