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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4캔에 만원' 전쟁의 서막

  • 2019.06.07(금) 11:04

정부·여당, 50년만에 '종량세' 전환…맥주·막걸리부터
국산맥주, 수입산 반격 기회…세부담 캔맥주↓·생맥주↑

국산 맥주도 '4캔에 만원'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애주가들에겐 무척 반가운 소식입니다. 정부가 지난 50년간 국내 맥주업체들의 발목을 잡아온 '주세(酒稅)'를 개편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주세 개편은 국내 맥주업계의 숙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수입 맥주의 파상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던 것도 주세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국내 맥주시장은 국산 맥주가 좌지우지했습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수입 맥주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들어왔습니다. 수입 맥주는 국산 맥주가 꽉 쥐고 있던 국내 맥주시장을 '가격'으로 공략했습니다. 편의점에서 시작한 '수입 맥주 4캔에 만원'이 대표적입니다.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수입 맥주업체들은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8.5%에 불과하던 수입 맥주 점유율은 지난해 20.2%까지 올랐습니다. 수입 맥주의 급성장은 우리나라의 주세 덕이 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주세는 제조원가에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를 적용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맥주업체들은 수입 맥주업체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국산 맥주가 수입 맥주보다 비쌀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동안 국산 맥주는 종가세에 따라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예상 이윤이 포함된 제조장 출고 가격에 세금을 매겼습니다. 반면 수입 맥주는 판매관리비와 예상 이윤을 제외한 수입신고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이 매겨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수입 맥주 가격은 당연히 저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입 맥주 4캔에 만원' 마케팅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내 맥주업체들은 분통이 터졌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오랜 기간 주세 개정을 요구해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수입 맥주에 시장을 통째로 내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사실 정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습니다. 주세를 개편할 경우 주종별로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서입니다. 게다가 맥주는 서민들이 즐겨 찾는 품목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정부도 더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당정협의를 거쳐 오는 2020년부터 주세를 현행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키로 했습니다. 다만 주세 개편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 맥주와 막걸리에만 종량세를 적용하고, 소주 등 나머지 종에 대해선 종가세를 유지키로 했습니다. 향후 소주 등도 단계적으로 종량세로 전환한다는 계획입니다.

종량세는 말 그대로 용량에 따라 과세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맥주와 막걸리에 부과되던 세금이 종전보다 낮아지게 됩니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출고가격이 아니라 리터(ℓ) 당으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이번 주세 개편으로 맥주는 국산과 수입산, 병·캔·페트병·생맥주 등 구분 없이 ℓ당 830.3원, 막걸리는 1ℓ당 41.7원이 부과될 예정입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산 맥주는 지난해 ℓ당 평균 848원의 주세를 부담했습니다. 반면 수입 맥주는 ℓ당 709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개편으로 맥주에 붙는 세금이 ℓ당 평균 17.7원이 줄어들게 됐습니다. 그만큼 국내 맥주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겁니다. 수입 맥주와 가격 경쟁이 가능한 조건이 마련됐습니다. 이제 국산 맥주도 '4캔에 만원'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맥주는 용기 등에 따라 종류가 나뉩니다. 세금도 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맥주는 캔, 병, 페트병, 생맥주로 분류됩니다. 현재도 국산 맥주는 용기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릅니다. 포장 용기에 따라 원가가 다른 데다 맥주업체들이 책정하는 가격도 모두 달라서입니다. 이에 따라 각기 붙는 세금도 다릅니다. 종량제가 시행되면 여기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가장 큰 폭으로 가격이 내리는 건 캔맥주입니다. 종량제가 시행되면 주세가 일괄적으로 ℓ당 830.3원이 되고, 여기에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총 세금 부담액은 ℓ당 1343원이 됩니다. 종전 종가세를 적용할 때보다 세금이 ℓ당 415원 싸집니다. 따라서 종량세가 실시되면 일반 매장에서 가장 싸게 만나볼 수 있는 국산 맥주는 캔맥주가 됩니다.

병맥주와 페트병, 생맥주는 현재 종가세를 적용할 때보다 ℓ당 총 세금 부담액은 늘어납니다. 병맥주는 종량세를 적용할 경우 ℓ당 23원, 페트병은 ℓ당 39원, 생맥주는 ℓ당 445원이 증가합니다. 특히 생맥주의 세금 부담액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납니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종량세가 시행되는 오는 2020년과 다음 해인 2021년 생맥주에 부과되는 총 세금 부담액을 20% 낮춰주기로 했습니다.

국내 맥주업체들은 이번 종량세 도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수입 맥주 잡기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가격 경쟁력때문에 내줘야 했던 시장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계산입니다. 표면적으로 세금 부담이 줄어드는 건 캔맥주뿐입니다. 하지만 맥주업체들은 캔맥주 세금 인하분을 활용해 병맥주와 페트병, 생맥주의 세금 인상분을 상쇄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종량세 도입으로 기존에 누렸던 혜택을 잃어버리는 수입 맥주는 어떻게 될까요? 업계에선 수입 맥주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공략할 때 동원하던 '4캔에 만원' 전략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록 예전만은 못하겠지만 일정 부분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이 전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재 차지하고 있는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어서입니다.

아울러 국내 맥주업체들은 종량세 도입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병과 페트병, 생맥주 역시 가격을 인상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금 부담이 늘어난 품목의 가격을 인상하면 오래간만에 잡은 수입 맥주 공략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어서입니다. 한 맥주업체 관계자는 "캔맥주에서 생긴 여력으로 나머지 세금 인상분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50년 숙원을 푼 국내 맥주업체들의 거센 반격과 이를 지키려는 수입 맥주업체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4캔에 만원'은 이제 수입 맥주업체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겁니다. 하지만 종량세로 전환해도 수입 맥주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국내 소비자들이 이제는 과거와 달리 다양한 맛의 맥주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유로모니터는 "주세 개편이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만큼 소비자들의 대규모 이동은 없을 것"이라며 "기존 수입 맥주들의 ‘4캔에 만원’ 역시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국내 주요 맥주업체들 역시 최근 수입 맥주의 포트폴리오를 늘리고 있는 만큼 다채로운 맛을 찾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수입 맥주는 계속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국내 맥주업체들이 주장해왔던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제 바로 잡혔습니다. 이제는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경쟁의 핵심은 가격이 아닌 제품의 품질과 다양한 맛 그리고 누가 소비자들의 니즈를 저격하는 것이냐가 될 것입니다. 과연 누가 승리할까요? 여러분들은 누가 이 경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계시나요? 정말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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