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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오비맥주, '꽃놀이패'를 쥐다

  • 2019.04.18(목) 10:44

기습적인 가격인상…하이트진로·롯데주류 '고민'
'테라' 견제부터 해외상장 대비까지 다양한 분석

국내 1위 맥주업체인 오비맥주가 최근 가격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원가 상승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 오비맥주가 밝힌 가격 인상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선 오비맥주의 설명을 믿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국내 주류업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다분히 숨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신제품 '테라'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이트진로는 최근 6년 만에 신제품 테라를 선보였습니다. 하이트진로는 그동안 맥주시장에서 오비맥주의 '카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던 만큼 테라를 통해 잃어버린 맥주시장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를 선보이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에 돌입했습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는 테라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테라' 출시를 통해 그동안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기대도 큰 제품입니다.

오비맥주로선 테라의 출시가 거슬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국내 맥주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테라가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면 언젠가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어서입니다. 실제로 일반 음식점 등에서 테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꽤 괜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오비맥주엔 신경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그래서 일각에선 오비맥주의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이 테라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오비맥주가 가격 인상을 발표한 시점은 지난달 26일입니다. 그리고 인상 가격을 적용키로 한 날은 지난 4일입니다. 약 1주일의 시차를 뒀습니다.

업계에선 오비맥주가 가격 인상 적용 시기에 여유를 둔 것은 다분히 테라를 의식한 조치라고 보고 있습니다. 먼저 가격 인상을 발표한 만큼 실제 인상 가격을 적용하는 시점까지 주류 도매상들은 사재기가 가능합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두었다가 가격이 오른 시점에 맞춰 출고하면 그만큼 더 많이 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주류 도매상들이 오비맥주 사재기에 나서면 창고에 테라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카스 등 오비맥주 제품들은 꾸준히 잘 팔리는 만큼 쌓아둘수록 이득입니다. 반면 테라와 같은 신제품은 초기에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저변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비맥주가 이 점을 노렸다는 것이 업계의 생각입니다.

단위 : 억원.

오비맥주의 상장설도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힙니다. 최근 시장에선 자금 사정이 좋지않은 오비맥주의 모회사인 AB인베브가 오비맥주를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해 자금을 모으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오비맥주가 그 전에 가격을 인상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오비맥주는 국내 맥주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격 인상은 곧 수익으로 직결됩니다.

실제로 오비맥주는 지난 2016년 11월 가격 인상을 단행한 이후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2016년 3723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7년 4940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불과 1년 만에 영업이익이 33%나 급증한 겁니다.

오비맥주는 이미 지난해 실적도 사상 최대치였습니다. 오비맥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145억원으로 전년보다 4.13% 증가했습니다. 심지어 영업이익률은 30.3%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하이트진로의 경우 맥주사업에서 225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습니다. 여기에 가격까지 더 올렸으니 큰 이변이 없는 한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이 유력합니다.

아울러 정부의 주세법 개정안 확정을 염두에 둔 가격 인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맥주 종량세 도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종량세는 '주류 제조장에서 출고한 수량'이나 '수입신고하는 수량'을 기준으로 일정한 금액을 과세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종량세가 도입되면 국산 맥주는 세율이 낮아져 출고가를 더 낮출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량세 도입 전에 미리 출고가를 올려 수익을 높이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관측입니다.

문제는 오비맥주의 뒤를 잇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입니다. 그동안은 1위 업체인 오비맥주가 가격을 인상하면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가 따라가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묘해졌습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의 입장이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가격 인상에 동참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입니다.

우선 하이트진로의 경우 무척 고민스러운 상태입니다. 하이트진로는 신제품 테라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동결했습니다. 신제품임에도 기존 가격을 유지해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비맥주가 갑작스럽게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비맥주에 한 방 먹은 셈입니다. 이미 가격 동결을 선언한 마당에 가격 인상에 나서기엔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소비자들의 반발도 불 보듯 뻔합니다.

롯데주류도 마찬가지입니다. 롯데주류는 최근 수년간 맥주사업 부진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점유율 2위인 하이트진로와 격차도 상당합니다. 안 그래도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 가격까지 올리면 판매량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격을 올리자니 판매량이 걸리고, 안 올리자니 가뜩이나 부진한 실적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오비맥주가 '꽃놀이패'를 쥐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가격 인상은 오비맥주가 독보적인 1위 지위를 이용해 경쟁업체들을 압박하는 확실한 카드였다는 분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맥주시장에서 오비맥주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라면서 "이번 가격 인상 조치가 여느 때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각 업체별로 처한 상황이 달라서다. 오비맥주가 그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이제 공은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로 넘어갔습니다. 업계에선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도 당장은 아니겠지만 조만간 가격 인상 대열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실제로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 모두 내부적으로 인상 폭과 시기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비맥주가 던진 교묘한 한 수에 다른 업체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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