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차세대 미래 먹거리산업이라며 치켜세웠던 제약‧바이오산업이 정작 예산 편성에서는 홀대를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도 예산안 편성을 보면 그렇다. 복지부의 내년도 예산안은 82조8203억원으로 올해 대비 10조3055억원이 늘었다.
예산은 ▲포용국가 구현을 위한 저소득·취약계층 사회안전망 강화 ▲국민건강증진투자 및 바이오헬스 분야 혁신성장 가속화 ▲저출산·고령화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 크게 3개 사업부문으로 편성했다. 이중 바이오헬스 분야에 투입되는 예산은 올해보다 16% 늘어난 1조1500억원이다. 그러나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1.4%에 불과하다.
특히 바이오헬스 분야에 대한 세부 편성 예산안을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신규 지원사업인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R&D'에는 약 302억원을 투입하는 반면, 제약산업 육성지원에 투입되는 예산은 153억원으로 절반 수준이다.
또 정부는 당초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에 오는 2021년까지 3년간 총 258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내년도 예산안으로 불과 28억원을 편성했다. 인공지능 플랫폼이 개발되면 신약개발 기간을 7∼8년 정도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놓고 정작 예산지원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정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가능성에 큰 기대를 표출해왔다.
지난 3일에도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2019 제약‧바이오산업 취업박람회'에 참석해 "글로벌 신약이 나오고 제약‧바이오산업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시대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라며 정부도 함께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작 제약‧바이오산업에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데도 말이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봐도 정말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 육성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제약‧바이오업계의 밝은 미래만 보기에는 최근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올해만도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계약이 잇따라 무산됐고 코오롱생명과학이 야심차게 내놓은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는 허가가 취소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부정 의혹으로 여전히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또 신라젠은 유일한 신약 후보물질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3상이 무산됐다. 이런 탓에 제약‧바이오업계에 대한 기대감도 한풀 꺾인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약‧바이오기업들의 혁신 신약에 대한 도전은 여론에 굴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다. 단 1개의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데 최소 수천억원에서 1조원의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국내 대형 제약기업도 연간 순수익은 수백억 원에 불과하다. 개별 기업의 힘만으로 신약을 연구개발하는 데에 비용적으로도 충분히 버겁다는 얘기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혁신 신약 개발에 성공해 사회구성원의 사망률이 1% 감소하면 해당 국가 전체가 누리는 사회‧경제적 가치는 최대 126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혁신 신약의 탄생이 국가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다. 신약 개발은 단편적으로 기업의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기여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정부가 정말 혁신 신약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기업에만 책임과 의무를 지워서는 안된다. 신약 개발을 위해 한걸음 딛고 올라설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발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제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지원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