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의 구조조정 소식은 충격이었습니다. "롯데가 구조조정이라니"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것도 롯데그룹의 근간인 롯데쇼핑이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으니 그 충격파는 컸습니다. 롯데쇼핑 내부에서도 구조조정 소식에 다들 깜짝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최근 내부적으로도 소문은 돌았지만 이 정도로 큰 규모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 롯데쇼핑 내부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롯데그룹은 그동안 구조조정이 없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월급은 적어도-물론 계열사별로 다릅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일종의 '평생직장' 같은 이미지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랬던 롯데그룹이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하니 다들 놀라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이는 곧 그만큼 롯데그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죠.
롯데쇼핑이 구조조정에 나서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수년간 지속된 실적 부진 탓입니다. 국내 대표 유통기업인 롯데쇼핑의 실적은 수년째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익성 저하는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롯데쇼핑의 수익 구조는 롯데백화점이 벌어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이 까먹는 구조입니다. 같이 벌어도 모자랄 판에 계속 까먹는 규모가 커지니 국내 1위 유통업체인 롯데쇼핑도 배겨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롯데쇼핑의 주요 계열사들의 연도별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명확해집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꾸준히 자기 몫을 하고 있지만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의 경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롯데쇼핑의 여러 사업 부문의 실적 부진까지 더해지면서 롯데쇼핑의 실적은 매년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롯데쇼핑으로서도 답답할 노릇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들어서는 소비 트렌드가 온라인 중심으로 변화되면서 오프라인 중심의 롯데쇼핑이 설자리는 더 줄어들었습니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매장을 찾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쇼핑을 하기 시작한 탓에 수익성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롯데쇼핑이 이런 트렌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롯데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온라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은 해왔습니다. 반면 경쟁사들은 소비 트렌드가 온라인으로 넘어갈 조짐이 보이자 더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산재해있던 온라인 조직을 통합하고 막대한 자금을 유치해 투자에 나섰습니다. 반면 경쟁업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롯데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롯데그룹 내부에서도 온라인 전환에 대한 고민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각 계열사별로 진행하던 온라인 사업 간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온라인 사업 통합과 대대적인 투자를 선언했지만 경쟁업체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롯데쇼핑의 온라인 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결국 소비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지금의 참사를 불렀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는 롯데그룹의 기업 문화와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 보수적인 기업문화 탓에 롯데그룹은 늘 반응 속도가 늦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누적되면서 롯데그룹은 적절히 대응할 때를 놓쳤고 결국 구조조정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겁니다.
롯데쇼핑 수익성 악화의 책임은 분명 롯데쇼핑 스스로에게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롯데쇼핑도 이 부분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롯데쇼핑의 부진이 반드시 롯데쇼핑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유통업체들도 문제지만 오프라인에 기반한 유통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사업 환경 즉 정부의 과도한 규제도 롯데쇼핑을 구조조정으로 내몬 이유 중 하나라는 겁니다.
최근 이마트를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들의 실적이 모두 부진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국내 1위 대형마트 업체인 이마트의 작년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67.4% 감소한 1507억원에 그쳤습니다. 롯데마트는 전년대비 적자전환한 250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습니다. 다른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체들의 실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 정부의 지나친 규제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형마트 '영업시간제한'과 '의무휴업'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2012년 당시 전통시장을 죽이는 주범을 대형마트로 규정하고 강화된 '유통산업 발전법'을 내놓습니다. 이 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제한(오전 0~10시)과 함께 의무 휴무일 지정(공휴일 중 매월 2회) 등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로 몰리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전통시장으로 돌리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규제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오히려 정부의 규제 탓에 대형마트들만 죽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정부가 시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에 전통시장에 간다'라고 대답한 소비자는 전체 응답자의 12%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아예 쇼핑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27%에 달했습니다.
정부의 의도대로 소비자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를 가지 못하자 발품 대신 손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으로의 이동입니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온라인으로 장을 보기 시작했고 온라인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습니다. 오프라인 기반의 대형마트들은 정부에 뺨 맞고 온라인에 발로 채이는 형국이 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점포도 늘리지 못했습니다. 출점 제한 규제 때문입니다. 이마트의 경우 2018년 이후 신규 출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롯데마트는 2013년 123개에서 작년 125개로 2년간 단 두 개의 매장을 냈을 뿐입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신규 출점은 생각지도 못한다"며 "특히 일부 지역의 경우 삽을 뜰 수조차 없다. 지자체에서 상생을 무기로 신규 출점 허가를 아예 내주지 않는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롯데쇼핑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한 이면에는 이런 속 사정들이 얽히고설켜있었던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고용입니다. 롯데쇼핑이 계획대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할 경우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해집니다. 예를 들어 롯데마트의 경우 한 매장에 총 4개의 직군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롯데마트 정직원, 무기계약직, 각 업체에서 파견된 판매사원, 도급업체 소속 시설·환경용역 등입니다.
구조조정이 단행돼 매장 철수가 결정되면 정직원은 다른 매장으로 재배치됩니다. 무기 계약직의 경우에도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매장에 재배치됩니다. 문제는 업체 파견 판매사원과 도급업체 소속 시설·환경 용역입니다. 롯데마트 매장이 철수할 경우 이들은 롯데마트 소속이 아닌 만큼 해당 업체와 협의를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유통업에 대한 규제를 '낡은 규제'로 보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논리에 의해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유통 규제 탓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온 대형 유통업체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롯데쇼핑의 대규모 구조조정 선언은 현재 국내 유통산업이 놓인 현실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낡은 규제 탓에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대형마트는 고사(枯死)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의 위기는 곧 일자리 축소라는 결과를 낳을 겁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소비 여력은 떨어집니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안게 됩니다. 롯데쇼핑의 구조조정에 담긴 의미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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