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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최순우 옛집에 가면

  • 2020.05.29(금) 10:24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남들처럼 고대광실이나

넓은 후원은 아니지만

나는 내 나름으로

좁은 뜰에 가지가지 산나무들과

조촐한 들꽃들을 가꾸면서

호젓하고도 스산한

산거의 멋을 즐겼고

남의 기름진 뜰이

부러운 줄을 모르고 살아왔으니

나에게는 이 산나무들과 들꽃들이

지닌 미덕이 그리도 컸다고 할만하다.

최순우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중.

성북동 최순우 옛집을 찾아 가노라면

정겨운 옛 풍경들을 만나볼 수 있다.

동네 이 골목 저 골목마다

오래된 한옥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서울에서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몇 안 되는 동네이기도 하다.

동네를 이리저리 걷다 보면

5월의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어릴 적 향수를 마주한다.

지금도 골목 집 앞에서

친구야 놀자하고 부를 것만 같다.

김승희 혜곡최순우기념관 교육사는

3년 전부터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교육사로 일하고 있다.

"2004년 최순우 옛집을 출연 자산으로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을 설립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했어요.

이 운동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전통 마을, 역사적 인물들이 남긴

삶의 흔적들이 급격한 사회 변화로

훼손되거나 그 자취를 잃어가는 것을

보호하고자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운동입니다."

"당시 성북동 선생님 집이

팔린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모금운동을 시작했어요.

회원들과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2002년에 집을 매입했고

1년여의 보수공사를 거쳐

2004년 무료로 개방했습니다.

최순우 옛집은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의 힘으로 보존된 시민문화유산 1호

그리고 1930년대 지어진

근대한옥(등록문화재 제268호)입니다."

"최순우(1916~1984) 선생님의 본명은

희순(熙淳), 호는 혜곡(兮谷)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이기도 합니다.

평생 박물관인으로 살며

박물관 전시, 유물 수집과 보존처리

조사, 연구는 물론 교육, 홍보

그리고 박물관 외곽단체 활성화와

인재양성 등에 노력을 기울이셨어요.

선생님이 우리 문화에 대해 쓴

글 600여 편이 돌아가신 뒤에

'최순우 전집(1~5)'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로 엮여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찾고 알리시는데

일평생을 바치셨어요."

"이 집은 선생님이 1976년부터

돌아가시던 1984년까지 살았어요,

1930년대에 지어졌는데

대문 안으로 들어오면

'ㄱ'자의 안채가 있고

바깥채가 대문을 끼고

'ㄴ'자형으로 맞물려 트여진

'ㅁ'자 형태의 집이에요.

안채에는 사랑방과 안방

대청, 건넌방이 있어요.

사랑방에서는 최순우 선생님이

글도 쓰고 손님을 맞이하셨어요."

"사랑방 쪽 안채의 앞뜰 현판엔

최순우 선생님이 직접 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란

친필도 보이는데요.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중'이란 뜻이죠.

현판을 보면 병자는 1976년을 뜻하고

류화는 석류가 익어가는 여름입니다.

그 당시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기록해둔 글이라고 합니다."

"뒤뜰에는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을 심으셨어요.

괴석과 산수유, 소나무, 자목련

모과나무, 감나무가 문인석, 향로석 등이

소박하게 어우러진 작은 정원이

관람객들을 반갑게 맞이하죠.

관람객들이 뒤뜰을 정말 좋아해요.

문을 닫으면 깊은 산중이라는

느낌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뒤뜰 툇마루인데 편안하게 앉아서

새소리를 들으며 지나는 바람소리에

눈을 감으면 살짝 졸음도 올만큼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놓는 작은 물확을 좋아해요.

다른 물확과 다르게 땅에 박혀 있죠.

출근한 후 사무실에 앉아 보면

참새들이 와서 목욕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데 기분이 좋아져요.

또 비오는 날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요즘 유행하는 빗방울 떨어지는

ASMR을 제대로 느낄 수 있죠.(웃음)"

"사랑방은 선생님이 글도 쓰고

손님을 맞던 공간입니다.

사랑방 아랫목 왼쪽 벽에는

수화 김환기와 박수근의 소품

복제그림들이 걸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이 쓴 수필 '바둑이와 나'라는

책을 무척 좋아하는데

6.25 전쟁 중에 키웠던

바둑이와의 일화에요.

책을 읽다 보면 선생님의 여린 마음과

따뜻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어요.

관람객들도 이 사랑방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씀하세요.

선생님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음악이 꽃 피는 한옥'은

최순우 옛집 마당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입니다.

2016년부터 매월 최순우 옛집에서

피는 꽃과 어울리는 악기로 구성해

음악 공연이 열리고 있어요.

올해는 코로나19로 잠시 쉬었다가

6월 13일 토요일 오후에 다시 열려요.

이번 음악회는 클라리넷 연주자인

김명표, 강석원이 연주합니다.

어디에도 없는 툇마루 좌석에

편안하게 앉아 감상할 수 있어요.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힐링하셨으면 좋겠어요."

"이곳은 시민들이 후원을 통해

지켜주는 공간이잖아요.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즐기고 힐링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잘 보존될 수 있습니다.

보존하는 공간을 찾지 않으면

그 의미가 퇴색할 수 있잖아요.

많이 오셔서 계속 관심을 가져주면

또 하나의 보존법이 됩니다."

성북동 최순우 옛집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서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구름 흘러가는 풍경을 보면

그곳이 바로 깊은 산중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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