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집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 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여러분들께 '미원'은 어떤 이미지신가요.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제게는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미원의 주성분 MSG가 몸에 나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랐거든요. 최근 들어서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재미있는 제품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미원을 활용한 제품들도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MSG의 무해성이 검증되면서 미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최근 미원의 인기를 인식 변화의 결과로만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MSG는 20년 이상 유해성 논란을 겪은 성분입니다. 20년은 수천 개의 브랜드가 생기고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미원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요. 미원이 출시된 이래 꾸준히 이어져 온 '마음을 잡은 마케팅'이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전성기를 연 '타깃 마케팅'
미원은 1956년 출시 초기 시장을 선점하며 '1가구 1미원'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독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1968년 '미풍'을 생산하던 군소 업체를 인수하며 조미료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듬해에는 미원을 제외한 다른 조미료 업체 3곳과 제휴를 맺고 상표를 미풍으로 통일합니다. 이를 통해 삼성은 단숨에 조미료 시장 점유율 2위 업체로 올라섰습니다.
이후 삼성은 미풍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했습니다. 미원이 벤치마킹한 일본의 '아지노모토'와 기술 제휴를 체결했습니다. 당시 삼성은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아지노모토와의 제휴를 적극 어필했습니다. 게다가 미풍은 미원보다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삼성이 미원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 위해 적극적인 할인 공세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출혈 경쟁'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시장을 선점한 작은 기업이 경쟁에서 패배합니다. 하지만 미원은 정확한 '타깃 마케팅'으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미원은 1970년대 최고 배우인 김지미 씨와 황정순 씨를 내세워 평화로운 가정의 이미지를 담은 광고를 진행했습니다. 미풍이 제품의 품질을 어필할 때 미원의 주요 소비자인 가정의 식탁을 책임지는 '주부'를 겨냥했죠.
다음 타깃은 '가족'이었습니다. 미원은 어린 아이를 그린 그림에 '우리집에서 미원을 모르는 단 한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신문 광고를 진행했습니다. 1970년 초 벌어진 '경품 전쟁'에서도 전략은 비슷했습니다. 삼성은 '여성'에 어필할 수 있는 '스웨터'를 경품으로 내세웠습니다. 미원은 '가계 경제'에 보탬이 되는 '순금 반지'로 맞불을 놨죠.
가정에 집중한 미원의 마케팅 전략은 당시에도 호평받았습니다. 1976년 10월 22일자 조선일보에서는 미원의 광고를 "유머가 있고 소비자에게 돌아올 이익을 약속하고 있다. 강압과 강요를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을 유도하는 광고'"라고 평가했습니다. 미원이 제품 자체에 대한 어필보다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미원은 이 같은 마케팅에 힘입어 미풍을 꺾는 데 성공합니다.
성공이 낳은 침체
하지만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성공에 도취된 미원은 안일해졌습니다. 그 사이 경쟁자는 반격을 준비했습니다. 삼성은 미풍으로 미원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1975년 천연 조미료를 표방한 '다시다'를 내놨습니다. 2년 후에는 국내 최초의 복합조미료 '아이미'를 출시했습니다. 다른 시장을 열겠다는 시도였죠. 반면 미원은 다시다의 대항마인 '맛나'를 7년이나 늦은 1982년에서야 출시합니다.
미원이 꾸물거리는 사이 시장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식품의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88올림픽을 앞두고는 MSG의 유해성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죠. 천연 조미료가 각광받았습니다. 시장을 선점한 다시다는 맛나를 제압했습니다. 미풍으로 풀지 못한 한을 다시다로 푼 셈입니다. 1990년에는 럭키(현 LG화학)가 '무첨가 마케팅'을 펼치며 미원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원은 MSG가 무해하다고 해명했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사회가 이미 MSG를 유해하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맛나를 비롯한 미원의 후속작들은 시장에서 외면받았습니다. 결국 미원은 1990년대 초반부터 암흑기를 맞게 됩니다. 미원이 대상으로 사명을 바꾸고 '청정원' 브랜드를 내세우는 등 대안 찾기에 들어간 것도 이 즈음부터죠.
새로운 기회는 2012년에야 찾아왔습니다. 몇몇 언론이 식당들의 MSG 사용을 문제삼는 기사를 냈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후속 보도를 내면서 역설적으로 MSG의 무해성이 검증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식약처가 2010년 발표했던 MSG의 안전성에 대한 내용이 주목받기도 했죠. MSG를 둘러싼 오해는 20여 년만에 풀렸습니다.
트렌디한 브랜드로 '리뉴얼'
MSG 논란이 사그러지면서 미원은 다시 한 번 시장 공략에 나섭니다. 이번 타깃은 '젊은 소비자'였습니다. 다만 제품보다 브랜드를 앞세우는 마케팅 전략은 과거와 같았습니다. 미원은 2014년 10월 '발효미원'으로 리뉴얼됩니다. 한달 후에는 '밥집 미원'이라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미원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 가격으로 국밥을 판매합니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젊은 층에는 신선함을 주는 마케팅이었습니다.
다음 목표는 '젊은 이미지' 만들기였습니다. 미원은 2016년 '픽미원'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가수 김희철 씨가 당시 유행하던 오디션 프로그램 주제곡 가사처럼 '픽미원'을 외치며 춤을 췄죠. 이 광고는 공개 20일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만건을 넘었습니다. 반복되는 '훅'에 열광하는 젊은층에게 미원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2018년에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소 한 마리, 닭 백 마리'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미원을 사용하면 천연 조미료로 활용되는 소와 닭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광고였죠. 사회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젊은 소비자들은 이 광고에 열광했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캠페인 포스터 사진이 올라오며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미원이라는 이름에 담긴 '올드함'은 사라졌습니다. 트렌디하고 젊은 제품으로 다시 태어났죠.
보통 장수 제품에게는 특유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애플의 컴퓨터는 과거부터 '전문가용 PC'로 인식되고 있고, 다마스는 '서민을 위한 자동차'로 알려져 있죠. 이렇게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원은 마케팅을 통해 이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심지어 제품의 성분과 기술은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소비자에 브랜드를 알리는 방식을 택했을 뿐입니다. 미원이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근 미원은 20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요리잡지 '이밥차'와 손잡고 레시피북 '미원식당'을 선보였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미원라면'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미원라면은 GS25의 라면 150종 중 10위권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고하니 미원의 전략이 제대로 먹혔나 봅니다. 앞으로 10년 후 미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1가구 1미원'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요. 무척 궁금해집니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