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집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 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미원 발목 잡았던 'MSG 유해성' 논란
제일제당의 추격마저 뿌리친 미원은 승승장구합니다. 국내에서 '조미료=미원'이라는 공식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면서 미원은 성장합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렸던 '다시다'의 등장으로 과거에 비해서는 입지가 꽤 줄었지만 여전히 각 가정과 식당 등에서는 미원을 애용했습니다. 특히 식품 업체 등에서는 대용량으로 미원을 사용하는 곳이 많았죠.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던 미원도 큰 시련을 겪습니다. 이미 수차례 말씀드렸던 'MSG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데요. 발단은 이렇습니다. 당시 국내 조미료 시장은 미원과 제일제당이 양분하던 시기였습니다. 제일제당은 미풍의 상처를 다시다로 이겨내고 있었죠. 다시다를 기점으로 국내 조미료 시장은 2세대로 넘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이때 조미료 시장의 성장을 눈여겨보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럭키(현 LG화학)입니다.
럭키는 1993년 '맛그린'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본격적으로 조미료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미 미원과 다시다가 조미료 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죠. 후발주자인 럭키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칩니다. '맛그린에는 화학적 합성품인 MSG를 넣지 않았다'고 광고합니다. 럭키의 광고는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럭키는 이 광고를 통해 자신들은 '화학적 조미료'인 MSG를 넣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곧 자신들을 제외한, 특히 대상의 미원은 화학적 조미료라고 간접적으로 지목한 겁니다. 사실 MSG는 화학조미료가 아닙니다. 럭키는 잘못된 사실로 소비자들을 호도한 거죠. 결국 럭키는 시정명령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여파로 'MSG=미원=화학조미료'라는 인식이 20여 년간 소비자들의 뇌리에 각인됩니다.
MSG는 '화학조미료'?
졸지에 '화학적 합성품'인 MSG를 생산하는 곳이 돼버린 대상은 억울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소비자들은 변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명이 거듭될수록 소비자들의 오해는 더욱 깊어만 갔죠. 이 탓에 대상을 비롯한 국내 조미료 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습니다. 특히 대상은 꽤 오랜 시잔 후폭풍에 시달립니다. TV에서도 MSG를 쓰는 식당은 '나쁜 식당'으로 낙인찍으면서 오해는 확신이 돼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논란을 일으킨 맛그린은 화학적 첨가물을 넣지 않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맛그린도 조미료에서 MSG만 뺐을 뿐 핵산이나 합성향 등 다른 화학적 첨가물을 사용해 사실상 진짜 천연 조미료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맛그린이 잘못한 것은 'MSG가 화학조미료'라는 인식을 심어준 겁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LG화학 공식 블로그에서는 'MSG는 안전하니 안심하고 드시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MSG는 화학조미료가 아닙니다. MSG는 사탕수수를 발효시켜 나온 대사산물에 나트륨을 붙여 만듭니다. 다시마나 멸치 등에서도 추출은 가능하지만 단가가 비쌉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탕수수 씁니다. 사탕수수를 으깨 '코르네박테리움 글루타이룸'이라는 미생물 균주를 넣고 발효시킵니다. 이 미생물 균주는 사탕수수의 당을 먹고 자라죠. 이들이 배설한 대사산물이 바로 글루탐산입니다.
글루탐산은 어디든 잘 붙습니다. 여기에 비용이 저렴하고 용해도가 낮은 나트륨을 붙여줍니다. 나트륨과 결합된 글루탐산이 바로 우리가 식품 포장지 뒷면 성분표에서 흔히 발견하는 ‘L-글루탐산나트륨'입니다. MSG죠. MSG는 물과 접촉하면 잘 분리됩니다. 이 때문에 MSG를 육수에 넣으면 글루탐산이 나트륨과 분리되면서 다른 식재료에 붙어 감칠맛을 내는 겁니다.
MSG는 정말 몸에 안좋을까
이제 가장 논란이 됐던 문제가 남았습니다. 'MSG는 정말 유해한가'입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은 모두 '무해하다'고 공식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지난 1985년 MSG에 대해 "평생 먹어도 안전한 식품 첨가물"이라고 결론냈습니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청도 2010년 "일일 섭취 허용량에 제한이 없는 안전한 물질"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찝찝한 것이 사실입니다. 맛그린이 던진 작은 돌 하나가 참 오랫동안 우리들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안전한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우선 MSG의 근간인 글루탐산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글루탐산은 아미노산의 일종입니다. 아미노산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기본 구성단위입니다. 이는 곧 우리 몸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에는 글루탐산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구 등에 따르면 우리 몸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의 약 15%가 글루탐산이라고 합니다. 가장 흔한 아미노산의 일종입니다. 글루탐산은 20가지 아미노산 중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아미노산입니다. 자체적으로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아미노산으로도 쉽게 전환돼 우리 몸속에서 정말 많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에선 매일 60g의 글루탐산을 만들어냅니다. 엄마의 '모유(母乳)'에 글루탐산이 들어있는 이유죠.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각종 고기는 물론 우유, 치즈, 토마토. 밀가루, 옥수수, 생선, 달걀 등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에 글루탐산은 들어있습니다. 피자가 맛있는 이유는 글루탐산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밀가루로 반죽해 그 위에 햄과 채소를 올리고 토마토 소스를 발라 치즈까지 올려 굽습니다. MSG가 터집니다. MSG는 만드는 과정도, 섭취하는 대상도 모두 무해합니다. 이제 그만 MSG를 놓아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