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집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 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65년 축적된 '독자 기술력'
지난 1987년 국내 조미료 업계에서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원과 미풍에 포함된 '핵산'의 비율을 두고서입니다. 핵산은 기존 원료인 MSG에 일정 비율을 넣으면 감칠맛을 더욱 높여준다고 합니다. 이 핵산을 얼마나 넣는 게 적절한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 겁니다.
당시 미원은 핵산을 1.5% 포함한 '저배합핵산' 전략을 썼습니다. 미원은 우리의 입맛에는 핵산 배합 비율이 낮은 조미료가 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제일제당의 미풍은 이보다 높은 2.5%와 8%의 고핵산 제품으로 승부했는데요. 제일제당 측의 주장은 "화학조미료(MSG)는 적게 먹을수록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핵산 비율을 높이면 MSG가 적어지니 건강에도 좋다는 논리였습니다.
앞서 두 기업은 핵산조미료의 공법을 두고서도 싸움을 벌인 바 있습니다. 제일제당은 '이온교환수지공법'을 이용해 제품을 만든다고 강조했고요. 이에 맞서 미원은 '직접발효공법'을 사용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들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디테일한' 제조법으로 경쟁을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조미료가 내는 감칠맛이라는 게 '정답'을 찾기 힘들기 때문일 겁니다. 조미료는 음식 맛을 더욱 감칠나게 하는 데 효과가 있지만, 그 자체의 맛은 말 그대로 '무미(無味)'합니다. 뭐가 더 맛있다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경쟁이 낳은 효과는 있었습니다. 두 업체의 '치열한' 경쟁으로 국내 조미료 제조 기술은 일본과 함께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미원은 1956년 처음 출시한 이래 지금까지 독자적인 기술로 제품을 만드는 데 공을 들여왔는데요. 지금 우리가 아는 그 미원의 맛(?)은 바로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로 '완성된 맛'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꼬집'이면 충분…제조 노하우는
미원은 MSG 자체를 그대로 제품화한 조미료입니다. 이에 따라 미원은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감칠맛을 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미원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발효와 정제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 시스템이 고도화하면서 전반적인 품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게 대상 측의 설명입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종류의 미원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다시마 미원'과 '표고버섯 미원' 등입니다. 대상그룹은 MSG에 대한 소비자들의 '오해'가 풀리고 있다고 판단, 미원에 변화를 주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이런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감칠맛'을 책임지고 있는 미원은 과연 어떻게 만들고 있고 또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담당자를 만나보는 것이 제일이겠죠? 그래서 김재성 대상 식품연구소 개발4팀 과장을 찾았습니다. 다만 요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대면 인터뷰'는 불가능했습니다. 대신 서면으로 긍금한 점을 잔뜩 물어봤습니다.
"미원은 가장 효율적인 조미료"
-미원을 여전히 '화학조미료'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미원의 제조법을 알려주세요.
▲미원은 미생물 발효 과정을 거치는 '발효조미료'입니다. 사탕수수에서 원당이나 당밀을 추출해 미생물로 발효시킵니다. 이를 통해 미원의 주요 성분인 글루탐산을 얻어냅니다. 여기에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첨가하고 결정화한 것이 미원입니다. 전통 발효 식품인 고추장, 된장, 간장의 발효 과정과 원리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원 제조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점은 무엇인가요.
▲미원의 원료가 되는 원당과 당밀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당과 당밀의 품질이 미생물 발효와 글루탐산 분리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탕수수로부터 추출한 원당과 당밀의 영양 성분을 철저하게 분석해 일정 기준을 통과한 원료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원이 만들어진 지 65년이 됐습니다. 처음 출시 당시 만든 미원과 지금 미원의 '맛'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미원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맛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과거에 비해 발효와 정제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지금은 고품질의 미원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습니다.
- 미원만의 '맛'의 장점이나 특징이 있을까요?
▲MSG를 활용한 조미료 제품은 국내에 많습니다. 미원처럼 MSG 자체를 그대로 제품화한 발효 조미료도 있고 MSG를 기반으로 소고기나 해물 등 원물을 추가한 제품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미원은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감칠맛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조미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상은 65년간 축적한 발효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순수 국내 자본과 기술로 MSG를 개발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게 미원의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최근 다양한 종류의 미원 제품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미원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지난 2015년 '다시마 미원'을 출시한 바 있습니다. 당시는 식약처가 MSG 안전성을 홍보하는 등 MSG에 대한 오해가 점점 풀리던 시기였습니다. 미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미원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이 필요했습니다. 미원의 색상과 형태를 변화시킨다면 젊은 층에서도 충분히 미원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2017년에 출시한 표고버섯 미원도 같은 맥락으로 미원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기존의 미원이 흰색의 길쭉한 과립 형태라면, '다시마 발효미원'과 '표고버섯 발효미원'은 다시마의 녹색과 표고버섯의 갈색을 가미한 동글동글한 과립 형태입니다. 두 결정형태 모두 흡습에 강하고 용해성이 좋은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표고버섯 발효미원'은 국내산 표고버섯 엑기스를 첨가해 풍부한 감칠맛을 살린 것이 특징입니다.
-평소 미원 많이 드시나요?
▲집에서 요리할 때 맛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꼬집의 적은 양으로 부족한 맛을 채울 때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더 맛있게 먹어야겠다고 많은 양을 한꺼번에 넣으시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하하. 꼭 필요한 순간에 적당량만 사용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