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은 코로나19의 대표적 '수혜 업종'이었다. 외출이 통제되고, 내식 트렌드가 확산되며 가공식품 수요가 늘었다. 하지만 이는 1년만에 부메랑이 됐다. 코로나19에 따른 생산단가·물류비 인상이 원가 압박으로 돌아오면서다. 결국 식품업계는 아껴둔 가격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반면 외식업계에게는 이럴 '기회'조차 없었다. 2년의 거리두기가 치명타였다. 자영업자는 거리로 나섰다. 기업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일부 브랜드는 결국 새 주인을 만났다.
기업들도 대내외적으로 다사다난했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사태'와 매각을 둘러싼 논란 속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SPC는 민주노총 화물연대와의 마찰로 파리바게뜨 빵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맘스터치 등은 직원·가맹점주와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다만 스타벅스는 이를 노사 상생 강화의 계기로 삼아 '반전'을 만들기도 했다.
시장·환경의 변화는 경영전략의 변화로 이어졌다. 식품·외식기업 모두 '신사업'을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 기존 방식으로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이 과정에서 업종 사이의 경계도 옅어지고 있다. 노사·소비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많은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새판짜기에 들어간 식품·외식업계의 진화는 내년에도 진행형일 전망이다.
식품업계는 '선방', 외식업계는 '우울'
올해 주요 식품기업들의 실적은 전년 대비 다소 주춤했다. 대부분 기업의 매출·영업이익이 줄어들거나 성장세가 꺾였다. 코로나19에 따른 생산·물류난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원가에 반영된 결과다. 식품업계의 대응 전략은 가격인상이었다. 오뚜기가 13년만에 라면값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주요 라면 제조사가 모조리 가격을 올렸다. 이어 우유·과자·음료 등 모든 식품의 가격도 올랐다. 식품기업들은 이를 통해 최소한의 이익 방어에 나섰다.
반면 외식업계는 2년 연속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19 사태 진정에 걸었던 기대는 3차·4차 대유행에 무너졌다. 오미크론 변이로 연말 대목마저 놓쳤다. 결국 자영업자들은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소·중견 외식기업들은 지속 적자에 시달리며 도산 위기를 겪고 있다. CJ푸드빌·이랜드이츠 등 대기업들은 인력 감축을 비롯한 사업 구조조정으로 살 길 찾기에 나섰다.
새 주인을 찾으며 변화를 꾀한 브랜드도 나타났다. 롯데GRS는 패밀리레스토랑 TGIF의 국내 사업권을 매드포갈릭 운영사 엠에프지코리아에게 넘겼다. 아웃백스테이크는 bhc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버거킹도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성공사례'도 나왔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는 투썸플레이스를 미국 칼라일그룹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1조원 수준이었다. 앵커PE는 투썸플레이스 지분 전량 확보 1년 만에 2배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끊이지 않은 '잡음' 속 '희망'
올해는 기업 내외의 잡음도 여느 해보다 많았다. 남양유업은 지난 4월 자사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는 발표를 진행했다. 이 발표가 사회적 논란이 되며 불매운동을 재점화시켰다. 홍원식 회장이 퇴진을 약속하고, 한앤컴퍼니에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홍 회장이 돌연 매각을 취소하며 논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남양유업은 올해 단 한 번의 분기 흑자도 기록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SPC그룹은 노조와 갈등을 빚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광주본부 2지부 파리바게뜨지회가 빵·재료 운송을 거부하면서다. 이들은 한국노총 소속 기사들과 서로 짧은 배송 코스를 차지하기 위해 부딪혔다. SPC는 하도급법 위반을 이유로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자 민주노총 측은 '노동조건 개선'을 내세우며 40여일간 파업을 벌였다. 피해는 오롯이 SPC와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이 입어야 했다.
맥도날드 크루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맥도날드의 유연근무제가 '꺾기'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폐식자재 재활용 논란과 함께 앤토니 마티네즈 한국맥도날드 대표가 국정감사에 소환된 이유가 됐다. 맘스터치 역시 가맹점주와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희망도 있었다. 스타벅스 파트너들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트럭시위를 진행했다. 민주노총의 지원 의사도 거부하며 '진심'을 보였다. 이에 사측도 응답했다. 프로모션을 줄이고 충원을 약속했다.
신사업·ESG '대세'…업종 경계 허물어진다
시장·환경 변화에 기업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식품기업들은 앞다퉈 '신사업'에 뛰어들었다. 성장이 정체된 식품 시장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각오다. 선두주자는 업계의 맏형 CJ제일제당이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천랩·바타비아 등 바이오 기업을 연이어 인수했다. 이를 통해 그린·화이트·레드 바이오 '3각편대'를 갖췄다. 신세계푸드·롯데푸드·동원 등은 대체육을 신사업으로 점찍었다. 매일유업은 단백질·디저트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림은 '프리미엄 라면'을 내놓으며 사업을 확장했다.
외식업계는 식품업계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다. CJ푸드빌은 빕스 메뉴를 RMR(레스토랑 간편식)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랜드이츠는 딜리버리 매장 '애슐리투고'를 4년 만에 부활시키며 RMR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교촌에프앤비는 닭가슴살 브랜드 아임닭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 치킨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촌설렁탕을 운영하는 이연에프엔씨는 자사 공장을 활용한 식자재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식품업과 외식업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높아진 '사회적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ESG 경영 강화도 활발하다. CJ제일제당은 최근 '2050 탄소중립·제로웨이스트 실현' 비전을 제시했다. 이에 앞서 풀무원은 지난 3월 '식물성 지향 식품' 선도기업을 선언했다. 하이트진로는 ESG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오리온·동원F&B 등은 식물성·재생가능 포장재 도입에 앞장섰다. 내부 혁신도 이어졌다. SPC는 내년 임원인사와 함께 '노사문화혁신실'을 확대 개편했다. 조직문화 개선과 노사 소통을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외식업계는 그동안 안정적 기반 아래 사업을 운영했지만, 코로나19로 시장의 뿌리부터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사업이 휘청이면서 노사관계와 기업 이미지 관리도 중요 경영전략으로 떠올랐다"며 "향후 식품·외식업계의 경계는 갈수록 흐려질 것으로 보이며, 모든 기업이 같은 필드에서 경쟁을 펼치게 될 것으로 본다. 소비자·노동계와의 관계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