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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밀키트 공룡' 프레시지와 '볼트온' 논쟁

  • 2022.02.09(수) 06:45

허닭 이어 시장 2위 테이스티나인까지 인수
B2C 시장 '정조준'…볼트온 이상의 시너지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밀키트 1위 프레시지가 거침 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엄청난 속도로 인수합병(M&A)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지난해 11월 있었던 건강식 기업 닥터키친 인수가 시작이었습니다. 새해가 밝자 마자 닭고기 간편식 전문 기업 허닭, 물류 기업 라인물류시스템을 연달아 인수했죠. 얼마 후 같은 시장의 2위 기업 테이스티나인까지 품었습니다. 그야말로 '진격의 프레시지'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런 프레시지의 움직임이 '볼트온(Bolt-on)'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볼트온은 유사 업종의 기업을 M&A해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주로 사모펀드가 운영 중인 기업에서 구사하죠. 향후 재매각을 염두에 두고 기업가치를 빠르게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프레시지 역시 사모펀드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기업입니다. 지난해 10월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가 프레시지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바 있습니다.

다만 프레시지는 이런 분석에 대해 선을 긋습니다. 볼트온을 위한 M&A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프레시지의 신사업과 사업 영역 확장을 위한 시도라고 강조합니다. 프레시지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해석이 바뀝니다. 프레시지는 이전부터 공격적 M&A를 통한 진화를 꿈꿔왔습니다. 앵커PE라는 투자자가 이런 프레시지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프레시지가 M&A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 M&A 대상이었던 닥터키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닥터키친은 당뇨식 등 맞춤형 식단 전문 기업입니다. 제품을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매장 '비스포킷'도 운영 중이고요. 허닭은 잘 알려져 있듯 닭가슴살 등 캐주얼 간편식이 유명합니다. 테이스티나인은 프레시지와 사업 구조가 비슷합니다. 다만 35개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팔고 있죠. 모두 기업-소비자간거래(B2C) 시장에 강점이 있는 기업입니다.

밀키트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이것이 프레시지가 이들 기업을 인수한 이유입니다. 프레시지는 밀키트 시장의 절대 강자입니다.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합니다. 다만 매출 상당 부분이 기업간거래(B2B)에서 나옵니다. 대기업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주 업무죠. 반면 자사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오프라인 채널은 없습니다. 이런 사업 구조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자칫하면 프레시지가 '밀키트 공장'이라는 역할에 매몰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레시지는 공장 역할만으로도 당분간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밀키트 시장이 성장중이니까요. 유로모니터는 오는 2025년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가 72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2020년 대비 3.5배 가량 커진 수준입니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수록 더 많은 기업이 시장에 뛰어들 겁니다. 제품도 다양해지겠죠. 프레시지는 이들의 주문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제조사입니다. 매출은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겠죠.

문제는 이런 사업만으로는 더 큰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시장이 커지며 대기업도 밀키트 사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밀키트를 만들 역량도 충분한 곳도 많죠. 그럼에도 이들이 프레시지에 생산을 맡기는 이유는 '수익성' 뿐입니다. 밀키트는 적은 재료를 가공·소포장해 제조됩니다. 때문에 인력 의존도가 높아 적자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지도 마찬가지고요. 1조원도 안되는 시장에 적자를 감수하고 생산 라인을 만들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충분히 커진다면 이런 상황은 바뀔 겁니다.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질 테니까요. 마진이 적더라도 많이 팔리는 만큼 적자 구조가 완화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판'이 깔리면 대기업들은 밀키트 직접 제조 비중을 높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프레시지가 불리해집니다. 원자재 구매력이나 물류 역량에서 대기업이 확실히 우위니까요. 결국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시장을 내줄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시장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죠.

프레시지는 테이스티나인 인수로 '규모'를 더 키웠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때문에 프레시지는 '시장 선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지만, B2C 밀키트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작은 기업도 얼마든지 시장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닥터키친·허닭·테이스티나인의 B2C 사업 노하우가 이 과정에서 프레시지의 힘이 될 겁니다. 특히 프레시지가 이들과 함께 인수한 라인물류시스템은 전국에 냉장물류(콜드체인)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선도가 가장 중요한 밀키트를 B2C 시장에 직접 공급할 때 꼭 필요한 역량이죠.

게다가 프레시지는 최근 '비욘드 리테일'이라는 신사업도 시작했습니다. 비욘드 리테일은 헬스장과 PC방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맞춤형 간편식을 공급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런 사업을 하려면 다양한 메뉴를 단기간에 기획·공급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닥터키친·허닭이 보유하고 있는 상품 포트올리오와 판매 데이터를 이 과정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길게 보면 '밀키트 전문 기업'을 벗어나 '식품 기업'으로의 변신도 기대해 볼 만 하고요.

이런 상황들 고려하면 프레시지의 최근 M&A는 '미래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는 기회를 살려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합니다. 이를 활용해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구상으로 보입니다. 일단 지금까지 시장 반응은 좋습니다. 업계에서는 최근 M&A로 프레시지의 기업 가치가 1조2000억원까지 성장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향후 투자금을 유치할 때 유리한 조건이 될 겁니다. 먼 훗날 상장을 추진할 때는 말할 필요가 없겠죠.

프레시지는 밀키트 시장의 성장과 함께 빠르게 우리 일상에 자리잡았습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프레시지의 제품을 알게 모르게 한 번씩은 먹어봤을 겁니다. 프레시지는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기획·제조·생산·유통을 모두 다 해내는 식품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아직 미래를 예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훗날 프레시지는 어떤 기업이 될까요. '식품 유니콘'의 목도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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