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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장안의 화제 '스푸너', 이렇게 탄생했다

  • 2022.03.08(화) 10:50

오성택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상무 인터뷰
3년 간 준비…물리학과 마케팅의 결합
테라 '리얼 탄산', 스푸너로 '소리 마케팅'
"테라를 국민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목표"

오성택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상무 / 사진제공=하이트진로

'병따개' 따위에 집착했다

단 한 번도 '오프너' 이외의 것으로 맥주 병뚜껑을 따 본 일이 없다. 오프너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는데 굳이 다른 도구로 딸 이유가 없어서다. 그래서 다른 도구로 맥주 병뚜껑을 따는 법을 배워본 일도 없다. 그 탓에 오프너가 없으면 지금도 살짝 당황한다. 술자리에 함께한 지인이 핀잔을 줄 때도 있다. 그때마다 "곱게 자라서 그렇다"라고 눙친다.

물론 술자리에서 지인들이 숟가락이나 라이터로 호기롭게 맥주 병뚜껑을 '뽕'하고 따는 모습이 부러운 적도 있었다. 왠지 멋있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술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 퍼포먼스에 쏠리는 것에 알 수 없는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후회가 동시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감정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술에 취하면 다 잊히는 감정이었다. 

올해는 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술을 배운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오프너가 아닌 다른 도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난 2월 하이트진로에서 보도자료가 하나 왔다. 맥주 테라에 최적화된 병따개 '스푸너'를 출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코웃음을 쳤다. 부서 메신저에 "하이트진로가 깜찍한 장난을 쳤다"고 보냈다. 사진을 열어보니 숟가락에 테라 병뚜껑이 물리도록 구멍을 낸 '물건'이었다.

하이트진로가 선보인 '스푸너' / 사진제공=하이트진로

'술 회사가 별것을 다 한다' 싶었다. '병따개가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보도자료를 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마케팅의 가장 기본이겠지만 병따개 하나 선보였다고 없던 관심이 생기겠나. 하지만 이런 생각이 오산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무심코 본 하이트진로의 스푸너 유튜브 영상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푸너, 너무 궁금했다.

궁금하면 알아보는 것이 이 직업의 숙명. 하이트진로에 연락했다. 스푸너 개발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조르면서도 문득 병따개 따위에 이토록 간절히 매달리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한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푸너에 대한 궁금증은 그런 자존심조차 내팽개치게 했다. 분명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때부터는 자존심의 영역을 넘어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됐다.

그런 오기가 통했을까. 하이트진로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 3일 오성택 하이트진로 마케팅 상무를 그렇게 만났다. 인터뷰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근처 커피숍에 앉아 스푸너 유튜브를 다시 봤다. 전의를 다지기 위해서랄까. 임원 인터뷰를 즐겨 하지는 않지만 스푸너 탄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스푸너 유튜브 영상은 다시 봐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스푸너, 전 세계 병따개를 누르다

시간에 맞춰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입이 딱 벌어졌다. 테이블 위에 지난 3년간 하이트진로 맥주 브랜드팀에서 스푸너를 만들기 위해 연구했던 다양한 도구들이 가득했다. 숟가락은 기본, 홈이 파인 손도끼, 군용 야전삽, 토르 망치까지 회의용 테이블을 가득 채울 만큼 다양한 물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기가 찼다.

인터뷰 시간에 맞춰 오 상무가 등장했다. 테이블 앞에 놓인 다양한 연구 재료들 앞에서 얼이 빠져있었다. 익숙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그의 표정을 볼 새도 없었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오 상무는 하이트진로의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2019년 하이트진로가 야심차게 선보인 맥주 '테라' 출시 행사 때 만난 기억이 있었다. 벌써 3년 전이다. 그때 무대에서 자신 있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용 야전삽 앞에 앉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왔던 스푸너 유튜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오 상무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였다. 마케팅 활동의 출발은 브랜드 콘셉트를 소비자들에게 흥미롭고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며 "이번 스푸너 유튜브 영상도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하이트진로

스푸너를 기획한 의도를 물었다. 그는 "테라는 자연발효과정에서 나오는 탄산, 즉 리얼 탄산만 100% 사용한 제품"이라면서 "리얼 탄산은 목넘김이 인공 탄산과 달리 따갑지 않고 부드럽다. 이뿐만이 아니다. 병뚜껑을 땄을 때 오픈음이 인공 탄산에 비해 2.5배가량 크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런 점을 잘 모른다. 이를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스푸너를 사용해 직접 테라의 병뚜껑을 따보였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테라를 먹어왔지만 테라의 병뚜껑 오픈음이 이처럼 맑고 청아한 줄은 처음 알았다. 테라 병뚜껑 안쪽을 보여줬다. 그는 "테라는 리얼 탄산이 새지 않도록 병뚜껑 안쪽에 실리콘으로 틀을 만들어뒀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병뚜껑 안쪽에 작은 테두리가 있었다. 몰랐다. 따서 먹기에 바빴지 그런 비밀이 숨어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테라의 병뚜껑 오픈음이 청아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 상무는 "테라는 병의 디자인과 색깔, 라벨 디자인 등을 통해 시각적, 촉각적인 새로움은 이미 줬다고 생각한다. 맛도 리얼 탄산과 청정 맥아를 통해 기존 맥주와 차별점을 확실히 줬다"며 "하지만 청각적인 측면은 그렇지 못했다. 분명 테라만의 특별함이 있었지만 이를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스푸너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아이템"이라고 밝혔다.

3년의 시간 그리고 황학동

스푸너는 지난 2019년부터 준비한 아이템이다. 당시 사업 계획에 이미 반영돼있었다. 시작은 하이트진로 맥주 브랜드팀에서부터다. 오 상무는 "맥주 브랜드팀은 팀 특성상 술을 무척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테라의 병뚜껑을 딸 기회가 많다. 그 과정에서 리얼 탄산 특유의 소리가 참 좋은데 이걸 알릴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테라의 리얼 탄산 효과를 청각적으로 극대화해보자고 해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디어는 참 좋았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전 세계의 오프너란 오프너는 다 모았다. 그리고 일일이 직접 다 따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수많은 물품들이 그간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듯했다. 오 상무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바로 숟가락이었다. 가장 친숙하고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한다. 이거다 싶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하이트진로

숟가락으로 범위가 좁혀졌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서울 황학동 주방용품 거리를 뒤져 숟가락 100여 개를 가져왔다. 숟가락들도 모두 모양이나 재질, 휘어진 각도 등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각도, 어떤 그립에서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테라의 병뚜껑을 땄을 때 가장 리얼한 테라만의 소리를 낼 수 있을까를 찾아내야 했다. 일일이 모든 숟가락을 자로 재고 테스트했다. 스푸너는 그렇게 만들어 낸 아이템이었다.

오 상무는 "숟가락에 구멍을 얼마나 크게 내야 하는지, 위치와 각도는 어때야 하는지 연구했다"면서 "그렇게 찾아낸 각도가 33도다. 이 각도가 테라의 병뚜껑에 딱 걸었을 때 제일 적은 힘으로 제일 경쾌한 소리를 내는 각도"라고 말했다. 일반 오프너를 병뚜껑에 걸었을 때의 각도는 25.5도다. 이어 "스푸너로 땄을 때의 데시벨(㏈)이 가장 높았다. 병뚜껑이 날아가거나 손을 다칠 염려 등 안전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듣다 보니 스푸너는 굉장히 과학적인 아이템이었다. 테라가 가진 리얼 탄산을 소리로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한 아이템이다. 리얼 탄산 포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병뚜껑 안쪽의 틀을 만들었다. 이것이 병뚜껑을 딸 때 더 경쾌한 소리가 나게 한다는 것을 '청각 마케팅'으로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게다가 스푸너에는 물리학 원리인 하나인 지렛대 원리가 적용된다. 각도와 힘이라는 요소도 고려됐다.

물리학+경영학=스푸너 

단순히 재미있는 마케팅 수단으로만 여겼던 스푸너에는 정말 많은 과학적, 마케팅적 요소들이 함축돼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스푸너 유튜브 영상에는 실제로 물리학자인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등장한다. 그의 진지한 모습과 멘트 등은 영상이 페이크 다큐임을 알면서도 더욱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김 교수도 하이트진로의 스푸너에 대한 설명을 듣고 흔쾌히 영상 출연을 승낙했다고 했다.

오 상무는 "김 교수에게 스푸너의 원리와 목적 등에 대해 설명드렸더니 100%  물리학적 원리가 들어가 있다면서 영상 출연을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면서 "영상에 등장하는 칠판 위 각종 공식 등도 김 교수가 직접 작성하고 증명한 것들이다. 김 교수가 이런 시도 자체를 매우 위트있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현재 하이트진로의 스푸너 유튜브 영상은 공개 2주 만에 조회수 186만회를 넘어섰다.

하이트진로는 '스푸너' 유튜브 영상에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를 등장시켜 성공적인 페이크 다큐를 완성했다. / 사진=스푸너 유튜브 영상 캡처

그는 "스푸너 출시 소식이 알려지고 스푸너를 찾는 분들이 정말 많다"며 "출시 전 임원 회의 때도 시연했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밝혔다. 스푸너는 현재 한정판으로 생산되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생산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하이트진로는 향후 스푸너를 각종 마케팅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후에는 수량도 늘려 소비자들이 더욱 많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테라 브랜드의 노후화 우려에 대해 물었다. 자주 접하다 보니 소비들이 식상해 할 수도 있다. 그러자 그는 "테라라는 브랜드가 가진 숙명"이라며 "하지만 이를 리프레시해주는 것이 바로 마케팅이다.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느끼게 해야 한다. 스푸너도 그 일환이다. 스푸너를 통해 테라 브랜드를 한 번 더 생각하고 새로운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 마케팅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역시 마케팅 전문가다운 대답이다.

이어 "기본적으로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면서 "현재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사실 폭발적으로 마케팅을 벌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하지만 수급 상황이 좋아지는 대로 공격적으로 가져갈 생각이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연구 개발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미 다음 아이템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을 풀었다

오 상무에게 스푸너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너무 싱거웠다. 스푸너는 누구나 테라 병뚜껑을 쉽게 딸 수 있도록 제작된 만큼 비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그는 "오히려 어렵게 따려고 하면 더 소리가 나지 않는다"며 "스푸너를 이용하면 8N(뉴턴)의 힘만으로 테라의 병뚜껑을 딸 수 있다. 일반 오프너의 경우 27N의 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문현답이었다.

/사진=정재웅 기자 polipsycho@

마지막으로 목표를 물었다. 그는 "테라를 국민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느낌과 더불어 후레쉬한 인상을 심어줘야한다. 품질력은 기본이다. 많이 판매하는 것보다 소비자들에게 테라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시 주류 업계에서 손꼽히는 마케터다웠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며 그는 내게 스푸너를 건넸다. "꼭 한 번 써보라"고 했다.

마침 저녁 약속이 있었다. 설렜다. 스푸너를 써 볼 기회를 엿봤다. 테라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스푸너를 꺼냈다.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놀란 시선이 스푸너에 꽂혔다. "이게 그 스푸너라는 건데"라며 테라의 병뚜껑을 스푸너로 땄다. 마치 전문가인 양 능숙한 듯 손목에 가볍게 힘을 줬다. '펑' 소리가 식당에 청아하게 울려퍼졌다.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봤다. 오프너가 아닌 스푸너로 30년 만에 한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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