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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프랑스에서 낙지볶음 밀키트? 머지않았죠!"

  • 2022.05.25(수) 06:50

정수호 프레시지 해외사업팀장 인터뷰
시장 완성되지 않은 곳 '제2의 프레시지'
"고속 성장보다 꾸준히 걸어가는 것 목표"

정수호 프레시지 해외사업팀장.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프레시지가 궁금하다

요리는 한때 '특기'였다. 유튜브가 대세가 되기 전 유일한 교재는 텍스트와 이미지였다. 그나마도 애써 만들어 봐야 겉보기만 그럴듯한 '이세계의 무언가'가 되기 일쑤였다. '황금 볶음밥' 이상의 요리를 만들지 못하는 10년 경력의 자취생도 생각보다 흔했다. 그러다 보니 출중한 요리 실력으로 '썸'을 급진전시키는 친구도 있었다. 그 때마다 부러움은 내 몫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TV를 켜면 혼자 사는 이들이 집에 맛집을 차린다. 유튜브만 검색해도 황금 레시피가 쏟아져 나온다. 영상을 따라하는 것조차 못하는 진정한 요리치에게도 살 길은 남아 있다. 대형마트에 들러 밀키트를 산다. 시키는 대로 만들고 포장지만 슬쩍 숨겨두면 된다. 더 맛있게 만드려면 식재료를 추가해 주면 된다. 그렇게 요리는 쉬운 일이 됐다.

서울 강남에 자리잡고 있는 프레시지 본사 전경.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모두를 요리 고수로 만들어주는 밀키트는 '새로운 상품'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동네 반찬가게에서 비슷한 상품을 만날 수 있었다. 다만 메뉴는 다양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도시락에 가까웠다. 이 밀키트를 대중화시킨 기업은 2016년 설립된 프레시지다. 프레시지는 남들이 브랜딩에 투자금을 투입할 때 제조 공정과 퍼블리싱(위탁생산)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밀키트로 만들기 어려워 보였던 메뉴를 상품화하며 시장의 지배자로 성장했다.

이제 프레시지는 해외를 정조준하고 있다. 연내 15개국, 500만 달러 수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궁금해졌다. 국내에서 밀키트가 자리잡은 지 오래 되지 않았다. 비교적 유통 시장이 낙후된 동남아 등 시장에서 밀키트는 여전히 생소하다. 이런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스타트업이 과도하게 성장성을 어필하려 해외 사업을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들었다. 정수호 프레시지 해외사업팀장과의 만남을 부탁한 이유다.

왜 '지금' 해외인가

스타트업에서 사업을 담당하는 친구와 회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부담스럽다. 스타트업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나 거대한 비전을 쉽게 입에 담는 경우가 제법 많다. 누군가는 경영학 교과서에나 볼 수 있는 단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기도 한다. 가끔은 이를 뒷받침하는 내실과 근거가 빈약할 때도 있다. 때문에 정 팀장을 만나기 전부터 조금 불안했다. 자칫했다가는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을 듣게 될까봐. 기자에게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기우였다. 정 팀장은 스타트업 수출 담당자보다 '상사맨'처럼 느껴졌다. 시원한 반삭 머리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부터 압도적이었다. 인터뷰 전 받아본 그의 이력처럼 '무역 전문가'의 느낌도 물씬 풍겼다.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첫 질문으로 굳이 지금 시점에 해외시장을 노크하는 이유를 물었다. 국내 시장에서의 수익성 모델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시기상조 아니냐고도 질문했다.

정 팀장은 "해외 시장에는 국내의 10배 가까운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그의 대답은 '기회'였다. 해외 시장에도 밀키트라는 '단어'는 알려져 있다. 반면 이를 판매하는 전문 업체는 많지 않다. 프레시지가 국내 밀키트 시장을 사실상 개척하기 시작한 7년 전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밀키트의 '원조' 유럽 시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시장 주류 밀키트는 샐러드 등 '레디밀' 상품과 오븐에 데워 먹는 상품이다. 프레시지처럼 반조리 요리를 상품화한 업체는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정 팀장은 "해외 밀키트 시장에는 7년 전 한국 밀키트 시장보다 기회가 더 많다"라며 "레드 오션이 되어가는 국내에서 10배, 20배 성장이 최대치라면 해외에서는 100배, 200배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국내에 비해 인구도 많아 잠재 수요도 높아 현재 진출한 국가들 외에도 전 세계를 신규 시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KPI보다 '토양' 먼저

100배, 200배라는 엄청난 수치가 제시되자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지, 핵심성과지표(KPI)는 어느 정도인지 당연히 궁금해졌다. 정 팀장은 지나친 수준의 KPI를 비전으로 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최소 3년, 최대 5~7년의 시간을 두고 바닥부터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100배, 200배는 그 다음에야 논할 수 있는 목표라고 했다. 아울러 이것이 단순히 투자금을 활용한 '계획된 적자' 전략과 결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의 설명처럼 프레시지의 자신감에는 '사업상 근거'가 있다. 프레시지는 지난 2년간 공격적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닭가슴살 전문 온라인몰 허닭, 건강특수식 전문기업 닥터키친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밀키트 시장의 경쟁자였던 테이스티나인도 품었다. 이들은 프레시지의 약점을 메워주는 기업들이다. 허닭은 온라인 기업-소비자간거래(B2C) 플랫폼이다. 테이스티나인과 닥터키친은 오프라인 점포 운영 경험이 있다.

프레시지는 '체험'을 해외 시장 개척의 첫걸음으로 봤다. /사진=프레시지

프레시지는 이런 역량을 활용해 해외 사업을 고도화할 수 있다. 정 팀장은 단순 유통보다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왜 체험에 집중하는지 묻자 "식품은 보수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구라도 새로운 식품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는 항상 먹던 것을 먹는다. 이런 관성을 깨려면 일단 '먹여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험치를 쌓아야 일상적 메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익성을 위한 장기 계획도 이미 짜뒀다. 프레시지는 '현지화'보다 K-푸드 기반 밀키트 수출에 집중할 계획이다. 기본적 제조 노하우와 레시피가 갖춰져 있어 비용 관리 등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정 팀장은 "K-푸드가 관심을 얻고 있지만, 그 인기가 K-콘텐츠처럼 폭발적인 해외 시장은 적다. 그만큼 당장 목표를 잡기 어렵다"며 "제조·유통 역량을 활용하겠다는 장기 목표 아래 지금은 K-푸드 상품 카테고리라이징에 집중하며 기회를 잡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 밝은 시장, 다 함께 가자"

보통 국내 식품 기업의 해외 진출은 현지 기업에 브랜드를 위탁하는 마스터 프랜차이즈(MF) 방식으로 진행된다.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빠르게 시장을 확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프레시지는 해외에서 직접 '영업'을 뛰고 있다. 상품 기획·생산은 물론, 결과물에 대해서도 현지 협력사와 함께 책임진다. MF와 크게 다른 수평적 구조다. 글로벌 대기업이 아닌 프레시지에게는 다소 번거로운 방식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전략에는 프레시지의 '꿈'이 담겨 있다. 프레시지에게 해외는 단순 판매 시장이 아니다. 제2, 제3의 생태계를 꾸리기 위한 터전이다. 이 생태계에는 현지 공장과 로컬 맛집, 소상공인 등이 들어간다. '승산'도 있다. 물가 상승으로 외식이 부담스러워지는 것은 해외도 마찬가지다. 현지 구성원과 끈끈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비용을 낮춘다면 합리적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상품을 흥행시키고, 서로간의 '윈윈(Win-Win)'을 부르겠다는 전략이다.

프레시지의 핵심 생산기지 용인공장 전경. /사진=프레시지

정 팀장은 "급격한 물가 상승이 이어지는 만큼 밀키트 등 가정간편식(HMR)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높을 것으로 보이고 해외 현지 기준으로 2인 이상이 먹을 수 있는 프레시지 상품의 1인당 단가는 외식비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다"고 강조했다.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시장에 적합한 제품을 내놓고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면 충분히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서류가 아닌 화학적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만난 프레시지는 '계획'이 있는 회사였다. 진정성도 충분히 느껴졌다. 정 팀장은 인터뷰 내내 '프레시지 자랑'을 하지 않았다. 대신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많은 플레이어가 관심을 가지길 바랐다. 덕분에 부담감 없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만큼 K-밀키트의 미래도 궁금해졌다. 10년 후 우리는 프랑스 어딘가의 마트에서 한국산 '낚지볶음 밀키트'를 만나볼 수 있을까. 나름의 기대감을 안고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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