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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친절한 '컬리'씨의 특별한 15초

  • 2022.05.16(월) 06:50

남경아 컬리 브랜드마케팅팀 리더 인터뷰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말' 거는 광고 만들 것"
"'핏'은 맞춰지지만 '결' 맞추는 것 어려워"

남경아 컬리 브랜드마케팅팀 리더.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좋은 광고'란 뭘까

새우깡에는 손이 간다. 농부 후안은 바리스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면 오로나민C다. 전지현씨는 bhc다. 이웃 건물 떡볶이집은 알고 보니 우리 민족이었다. 선배 앞에서 열이 나면 레쓰비다. 광고가 만든 문장들이다. 멋지고 예쁘지 않아도 좋다. 15초 내외의 짧은 시간에 깊은 기억을 남기면 된다. 몇 번 보다 중독되면 더 좋다.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좋은 광고'가 이렇게 태어났다.

여기 다른 광고도 있다. 회사 이름은 광고 시작과 끝에만 나온다. 전지현씨가 나오지만 "좋은 건 새벽에 와요"라며 웃을 뿐이다. 다음 주자인 박서준씨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한다. 그러자 대표가 노트북 앞에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쉰다. 회원 1000만명 돌파 감사 광고에도 거창한 이야기는 없다. 고객에게 '큰절'도 올리지 않는다. 단지 계란과 호박이 나와 춤을 출 뿐이다. 마켓컬리(컬리) 이야기다.

컬리 광고에는 '스타'보다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진=컬리

컬리는 국내 유통업계의 가장 어린 주자다. 설립된 지 고작 7년밖에 되지 않았다. 컬리의 주무대인 이커머스에는 수많은 형님들이 계신다. 더 넓게 보면 기라성 같은 대기업들도 경쟁 상대다. 이들과 맞서려면 이름을 더 알려야 한다. 전지현으로 '붐업'이 일어났다면 더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컬리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좋은 광고'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유통과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피 터지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커머스의 경우 대부분 플랫폼이 적자다. 컬리도 그렇다. 그만큼 미래가 두려울 수 있을 테다. 상장을 앞두고 자신을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어떻게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광고를 내놨을까. 무슨 자신감이 저변에 깔려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광고를 만드는 사람과의 인터뷰를 청했다. 남경아 브랜드마케팅팀 리더를 만나게 된 이유다.

특별하지 않아서 대화를 건다

플랫폼 기업의 이미지는 '미래적'이다. 사무실은 깔끔하다. 개성 있는 옷을 입고 있는 구성원은 댄디·스마트하다. 문화는 합리적이다. 실제로 많은 플랫폼은 자신들을 이런 이미지로 홍보한다. 컬리는 달랐다. 역삼동 본사 입구에서부터 기대가 무너졌다. 한 마디로 부산했다. 곳곳에서 업무 이야기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일하고 있었다. 꾸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딘지 모르게 대학 동아리방처럼 푸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남 리더도 그랬다. 새벽배송 선두 플랫폼의 브랜드 마케팅 리더라기에 평범한 인상이었다. "머리가 엄청 화려했는데, 얼마 전에 쳤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스타트업'의 향기를 느꼈다. 자리에 앉아 '기선제압'용 질문을 던졌다. 컬리 광고는 결국 스타마케팅 아니냐고 했다. 남 리더는 1초도 되지 않아 "맞다"고 대답했다. 전지현씨가 출연한 광고의 효과가 대단했다고 설명했다. 당황스러웠다. 스타와 플랫폼의 '흔한 시너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다.

남 리더는 "컬리는 평범하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다행히 인터뷰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남 리더는 컬리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일상적인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스타는 모델일 뿐 그 입을 통해 소비자와 대화하기 위해 광고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듣고 보니 그랬다. 컬리의 스타 광고에는 스타의 이미지가 없었다. 컬리 광고에 출연했던 박서준은 '박서준'이었다. 당시 대히트하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없었다. 오히려 같은 광고에 출연해 박서준과 통화한 후 김슬아 대표가 한숨을 내뱉는 모습이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론칭된 크리스마스 광고도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19로 이커머스 플랫폼은 대세가 됐다. 컬리의 식품 새벽배송도 각광받았다. 하지만 컬리는 우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단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자고 권한다. 1000만 기념 광고도 마찬가지다. '포스'를 절대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상품을 골랐을 뿐이라며 겸손해한다. 이를 보는 시청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컬리와 '대화'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1만 분의 회의, 1만 개의 목소리

이런 광고가 만들어진 배경이 궁금해졌다. 컬리는 올해 상장에 도전한다. 무기는 매출 성장세뿐이다. 창사 후 단 한번도 흑자를 내지도 못했다. 이런 가운데 상장 경쟁사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광고로 성장세를 어필하자는 의견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됐다. 게다가 컬리는 '경력직'이 다수인 조직이다. 경영진에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대기업 출신도 많다. 이들로부터의 반발이 없었는지 질문을 던졌다.

남 리더는 "이커머스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경쟁강도가 높은 만큼, 대세감을 강조하기 위한 기업PR이 필요하다는 제작사의 제안도도 분명 있었다. 이런 의견들도 모두 반영해 광고 기획 단계부터 크리에이티브 라운드(회의)를 수없이 진행했고, 다른 결론을 내게 됐다"며 "이번 광고를 예로 들면 총 9개 정도의 콘셉트를 잡아 두고, 경영진까지 의견을 나누며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회의를 했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며 웃었다.

컬리 광고에 출연한 김슬아 대표의 '한숨'은 화제가 됐다. /사진=컬리

숨이 막혔다. 흔한 '회사 회의'의 광경이 떠올랐다. 결론은 정해져 있고, 일을 어떻게 할지 닦달하는 그런 느낌말이다. 남 리더에게 회의 시간은 보통 몇 시간 정도였냐고 묻자 '미정'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많이 피곤했겠다며 위로를 건넸다. 그러자 남 리더는 "피곤하지 않았다. 광고 관련 회의는 구성원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자리였다"며 "그러다 보니 회의도 흥미롭게 진행됐고, 결정된 사안에 대한 반발도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광고가 이렇게 만들어지다 보니 평가 방법도 달랐다. 컬리 광고의 KPI는 실적이 아니다. 대신 인식지표를 중시한다. 구체적 수치보다는 소비자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이 목표다. 결과는 '성공'이다. 스타가 출연했던 광고는 요즘도 회자된다. 최근 펼쳐진 광고도 감성을 자극한다는 평가가 많다. 공감되는 전략이라고 전하자 "사실 전지현·박서준씨는 딱 1년씩만 모델을 하셨다"는 웃음 섞인 답이 돌아왔다. 또 한 번 놀랐다. 어제도 그 광고를 본 것 같은데 말이다.

'핏'은 맞춰지지만, '결'은 그렇지 않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분명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상하게 편안했다. 서로 "고맙다"를 연발해서일지도 모른다. 신기했다. 기자에게 인터뷰는 기회다. 공식 채널 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다. 반면 기업 실무자에게 인터뷰는 조금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인터뷰의 공식 '마무리 대사'는 "수고하셨습니다"다. 무엇이 그렇게 고마운지 궁금했다. "다양한 경로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남 리더는 끝까지 '대화'에 집착했다.

남 리더에 따르면 이는 '컬리톤'이다. 컬리톤은 '물결'이다. 조직과 맞추는 '핏(fit)'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물결은 끝없이 흐른다. 파도를 잘 타는 사람만이 물결을 탈 수 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컬리의 상품 설명은 지나치게 친근하다. 할인 행사 알림 메시지는 말이 너무 많다. 남 리더는 "광고를 기획할 때도 상품 소싱, 지원·개발부서 등 모두와 생각을 공유한다"며 "덕분에 문자메시지 한 줄에서부터 일관된 톤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슬아 대표의 사무실은 컬리 사옥 18층 카페테리아의 '어딘가'다.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인터뷰는 기회인 한편 부담이기도 하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터뷰를 앞두고 압박감을 느낀 적도 많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 동료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터놓고 나눴다. 다소 주도권은 빼앗긴 느낌이었지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덕분에 컬리가 광고에 담은 '꿈'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컬리는 '잘 나가는' 플랫폼보다 '가까이 있는' 플랫폼이 되고 싶어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올 때 카페테리아 개인 좌석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후드티를 입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모니터에 집중하던 여성이었다. '설마'하며 누군지 묻자 "아, 소피(김 대표)예요"라는 대답이 들렸다. 컬리 대표가 '도서관 메뚜기'처럼 일한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컬리톤은 대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를 청하려 부리나케 돌아갔지만 어느새 자리는 비어 있었다. 보람의 일부가 한 순간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눈물을 삼키며 건물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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