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부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오뚜기도 올렸다
우려했던 라면 값 도미노 인상이 현실이 됐습니다. 농심이 포문을 열었고 팔도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오뚜기까지 나섰습니다. 신라면이 오르니 진라면도 올랐습니다. 오뚜기는 오는 10월 10일부로 라면류의 출고가 기준 제품 가격을 평균 11.0% 인상키로 했습니다. 지난해 8월, 13년 만에 인상한 이후 1년 2개월 만에 또 가격을 인상합니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 판매가 기준으로 '진라면'은 620원에서 716원으로 15.5%, '진비빔면'이 970원에서 1070원으로 10.3%, '진짬뽕'이 1495원에서 1620원으로 8.4%, '컵누들'이 1280원에서 1380원으로 7.8% 인상됩니다. 신라면과 함께 국내 대표 라면인 진라면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근심도 커졌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는 데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면 가격도 줄줄이 올라서입니다.
그동안 라면 업체들은 가격 인상에 무척 조심스러워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 값이 오르게 되면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오뚜기가 작년 13년 만에 가격을 인상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라면과 치킨에는 진심입니다. 그래서 라면 값과 치킨 값 변동에 무척 민감합니다.
사실 오뚜기의 라면 값 인상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업계 1위인 농심이 깃발을 꽂은 만큼 다른 업체들도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고요. 삼양식품도 가격 인상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삼양식품도 상반기 수출로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국내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만큼 가격 인상 카드를 빼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입니다.
왜 올렸나
오뚜기가 라면 가격을 인상한 이유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겁니다. 요즘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한 '원재료값 상승' 탓입니다. 실제로 오뚜기는 “원재료값 상승에 고환율이 지속되고 물류비 등 국내외 제반 비용이 급등해 가격을 조정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라면의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과 팜유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업체들 입장에서도 원가 상승 부담을 버티기는 더 이상 어려웠을 겁니다.
오뚜기의 지난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대비 18% 늘어난 7893억원, 영업이익은 31.8% 증가한 477억원이었습니다. 실적이 좋았습니다. 2분기 적자를 기록한 농심의 실적과는 상반됩니다. 농심과 오뚜기의 실적 차이는 매출구조 탓이 큽니다. 농심의 경우 라면 등 면류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8.9%에 달합니다. 반면 오뚜기는 25.5%입니다.
상대적으로 오뚜기가 농심에 비해 라면 원재료 가격 급등의 후폭풍을 덜 받은 셈입니다. 여기에 오뚜기의 경우 라면 사업에서의 실적 부진을 다른 사업을 통해 메울 수 있습니다. 오뚜기는 각종 소스류부터 '3분 시리즈'로 대표되는 레토르트 식품, 육가공 제품, 냉동 피자, 캔 참치 등을 생산합니다. 오뚜기 홈페이지에 소개된 제품만 해도 총 12개 제품군, 928개에 달합니다. 이 제품들은 B2C뿐만 아니라 B2B 시장에서도 인기입니다.
그렇다면 오뚜기는 왜 가격을 올렸을까요? 오뚜기의 라면 사업 수익성은 생각보다 썩 좋지는 않습니다. 라면업계 1위인 농심과 경쟁하기 위해 오뚜기는 가격 동결을 기본으로 각종 마케팅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덕분에 농심과의 격차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뚜기 입장에서도 라면 사업의 실적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가격 인상을 통해 실적 방어에 나서야 했을 겁니다.
부담스러웠나
작년 오뚜기가 13년 만에 가격 인상을 단행했을 때 소비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3년간 라면 가격을 동결한 오뚜기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반면 오뚜기의 13년 만의 가격 인상이 화제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자주(?) 가격을 올린 셈이 된 농심과 삼양식품이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시 농심은 5년, 삼양식품은 4년째 가격을 동결하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오뚜기 입장에서 이번 가격 인상은 좀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작년에 가격을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가격을 올렸으니 소비자들의 비판이 신경 쓰였을 겁니다. 작년에 진행했던 13년 만의 가격 인상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감지한 듯합니다. 아무리 '갓뚜기'라도 소비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런 분위기는 오뚜기가 지난 16일 배포한 가격 인상 보도자료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오뚜기는 보도자료 말미에 "앞서 농심은 9월 15일부터 신라면 등 주요 제품 출고 가격을 평균 11.3% 올리고, 팔도는 10월 1일부터 평균 9.8% 인상한다고 밝혔다. 2008년 이후 라면 4사의 가격 인상은 오뚜기가 2회로 가장 적었고, 농심과 팔도가 각 4회, 삼양식품이 3회 인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도자료를 낼 때 타 업체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 것이 업계의 암묵적인 규칙입니다. 굳이 다른 업체 이야기를 거론해 상대적으로 우리가 다 낫다고 강조하는 것은 상대방을 자극할 수도 있어서입니다. 오뚜기의 가격 인상 보도자료가 배포되고 업계에서는 "오뚜기가 많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다른 업체의 인상률과 횟수를 비교한 것이 그 방증이라는 설명입니다.
늘어가는 근심
오뚜기의 라면 값 인상으로 라면 업계의 가격 인상 러시는 이제 거의 막바지로 접어든 듯합니다. 물론 삼양식품이 아직 남아있지만 삼양식품도 조만간 가격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라면 업계의 특성상 한 곳이 총대를 메면 다른 곳들도 줄줄이 따라서 인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원재료값 상승 추세가 어느 정도 꺾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과거에 비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원재료를 미리 구매해서 비축하고 사용하는 업체들은 원재료값 안정화 시기까지 버텨야 합니다. 버티기 위해 부득이하게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체들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원재료값이 안정돼도 가격을 인하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오리온이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향후 원재료값이 안정되면 가격을 인하하거나 제품 용량을 늘리겠다고 밝힌 것이 처음이지 싶네요.
업체들 입장에서는 가격을 인상하면 실적에 도움이 됩니다. 가격이 오른 만큼 더 좋은 맛과 품질로 보답하겠다고 밝히지만 사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소비자들에게는 가격 인상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게다가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라면 값이 줄줄이 오르니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 살이에 근심만 더 커집니다.
물론 고작 몇백 원 오르는 것을 두고 무슨 엄살이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민들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라면 값 인상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의 여파가 서민들의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오뚜기가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부분도 이 부분이었을 겁니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요즘, 이젠 라면 번들 한 개를 장바구니에 담을 때도 고민을 해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