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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해고' 푸르밀, '푸른 멍'만 남겼다

  • 2022.10.22(토) 10:05

[주간유통]푸르밀, 임직원에 일방적 '해고' 통보
실적 악화·매각 실패로 '사업 중단'…꼼수 지적도
노조 반발 "오너 일가 책임…정상화 노력 전무"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부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푸르밀, 사업 중단 선언

국내 유(乳) 업계 중견기업인 푸르밀이 갑자기 사업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회사 문을 닫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업을 중단하면서 임직원들에게 전원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으니 임직원들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오너 일가의 방만한 경영이 사업 중단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그 책임은 오너 일가가 아닌 임직원들이 짊어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푸르밀의 사업 중단은 꽤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푸르밀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아는 유업체들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름의 히트 상품도 있고 스테디셀러도 보유한 업체입니다. "어? 이게 푸르밀 거였네?"하는 제품들이 꽤 있습니다. '비피더스', '검은콩 우유', '가나쵸코우유' 등이 대표적이죠.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이 밖에도 푸르밀은 우유를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유제품들을 생산해온 곳이었습니다. 오너 일가가 경영을 맡기 전까지는 수익성도 좋았던 기업입니다. 자신들의 브랜드뿐만 아니라 대형 마트나 편의점의 PB상품 제조에도 뛰어들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푸르밀이 갑자기 사업 중단을 선언하자 업계에서도 꽤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업계에서는 푸르밀의 사업 중단이 전체 유업계의 현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출산이 지속하면서 우유 시장 자체가 축소됐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급식 우유 수요와 주소비층이 감소했습니다. 반면 비용은 늘어나 현재 국내 유업체들은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푸르밀은 이런 환경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푸르밀의 사업 중단 이면에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비극의 서막 '2018년'

푸르밀의 전신은 롯데유업입니다. 1978년 롯데그룹의 일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롯데유업을 맡았습니다. 이후 신준호 회장은 지난 2007년 지분 정리를 통해 롯데그룹에서 나옵니다. 신준호 회장은 독립 이후에도 롯데우유라는 상표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상표권 분쟁이 일었고 2009년 현재의 사명인 '푸르밀'로 바꿨습니다.

푸르밀은 이후 꾸준히 성장합니다. 유통망을 적극 공략하고 다양하면서도 친숙한 브랜드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앞세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조용히 그리고 탄탄하게 성장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푸르밀의 스테디셀러들도 모두 이런 전략을 바탕으로 성공한 제품들입니다. 덕분에 수익성도 좋았습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그랬던 푸르밀이 갑자기 어려워진 것은 지난 2018년부터입니다. 신준호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부임했습니다. 그동안 푸르밀은 전문 경영인 체제하에서 건실하게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신 대표가 회사를 맡은 이후 회사의 실적이 조금씩 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거짓말처럼 푸르밀은 2018년부터 계속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결국 신 대표는 푸르밀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여러 군데를 타진했고 LG생활건강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콜드체인 시스템 강화에 관심이 있었던 LG생활건강은 푸르밀 인수를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푸르밀을 들여다보니 시설이 노후화돼 인수해도 큰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해 인수를 포기합니다. 결국 실적 악화에 매각 무산으로 공중으로 붕 떠버린 푸르밀은 사업 종료를 선언하게 된 겁니다.

왜 '폐업'이 아닌 '종료'일까

업계에서는 푸르밀 사업 종료의 이유를 '경쟁력 저하' 탓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쟁업체들이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경쟁력 강화에 나선 반면, 푸르밀은 기존 제품으로 계속 승부를 내려 했습니다. 시설 투자나 마케팅에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다른 업체들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경쟁해야 했기에 원가절감에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사실 오너의 입장에서는 사업을 종료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비록 매각에는 실패했지만 사업을 유지하면 다른 매수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용 승계 등을 꾀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현재 불거지고 있는 노조 측의 극심한 반발과 사회적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매각이 순조롭지 않다면 오너 일가가 나서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 회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방안도 있었을 겁니다.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그럼에도 푸르밀 오너 일가는 사업 종료를 선택했습니다. 이를 두고 노조는 '꼼수'로 보고 있습니다. 노조는 "법인을 청산하면 영업 손실에 따른 수백억원대의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반납해야 하는 만큼 이를 피하기 위해 청산이나 폐업이 아닌 사업 종료를 택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오너 일가가 그동안 받아왔던 법인세 혜택을 반환하지 않기 위해 법인만 유지하고 직원들은 정리하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노조에서는 신준호 회장이 올해 초 푸르밀에서 퇴사한 것도 모두 회사를 정리하기 위한 계획된 수순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신준호 회장은 회사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황임에도 퇴직금 30억원 가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조는 오너 일가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현재의 전원 해고 통보도 그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가정을 지키며 살고 싶다"

현재 푸르밀 노조는 회사의 일방적인 전원 해고 통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푸르밀은 전체 임직원들에게 오는 11월 30일까지 사업을 종료하고 모든 임직원들을 정리 해고하겠다고 '이메일'로 통보했습니다. 사전에 노조 등과 전혀 교감이 없이 진행된 일방적인 통보였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갑작스럽게 이메일로 통보한 겁니다.

푸르밀 임직원들은 현재 패닉 상태입니다. 오랜 기간 근무했던 직장이 갑자기 없어진다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당장 식구들을 먹여살릴 방도가 막막합니다. 푸르밀 임직원들뿐만 아니라 푸르밀과 거래하고 있던 거래처, 낙농 농가들도 망연자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노조의 강한 반발에도 신 대표는 "더 이상 직원들과 얼굴 보는 일은 없다"고 못 박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기업의 오너 입장에서 사업이 어려워졌을 경우 정리하느냐 마느냐는 그의 몫입니다. 누구도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함께 회사를 지킨 임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은 있습니다. 사전에 임직원들에게 회사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부단한 노력도 했어야 했습니다. 그 도리만 지켜졌더라도 이처럼 큰 파열음은 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푸르밀 오너 일가는 이런 최소한의 도리를 저버렸습니다.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조도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김성곤 푸르밀 노조 위원장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서 전주, 대구공장 별로 인원도 축소시켜왔고 일반직 직원들은 반강제적인 임금 삭감까지 당했다"며 "회사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내하며 동참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회사를 살리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원 해고'였습니다.

최근 김 위원장의 호소문을 받아봤습니다. 호소문에는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당황하고 분노한 그의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특히 "회사 정상화를 위한 방도를 마련하고 싶고 가정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같은 가장으로서 그 책임감이 무엇인지 알기에 가슴이 한켠이 시큰했습니다. 푸르밀 오너 일가가 임직원들 마음에 남긴 '푸른 멍'은 누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답답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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