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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양곡법 개정, '독' 될 수 있는 이유

  • 2023.04.10(월) 06:50

정부 매입 '재량'에서 '의무'로
시장 왜곡 오히려 커질 가능성
남는 쌀 의무매입 매년 1조원 

/ 사진=한전진 기자 noretreat@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연일 뜨거운 감자입니다. 법안 통과 여부가 정치권의 힘겨루기로 번지면서 세간의 입방아에도 오르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줄어드는 쌀 소비에 농가의 소득 보존을 위한 대안이라는 의견과 본래 목적과 정반대 결과를 낳을 것이란 분석이 첨예하게 대립 중입니다. 향후 여파가 큰 법안인 만큼 농가, 소비자, 산업계도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양곡관리법(양곡법)은 정부가 양곡의 수매·시장 격리를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입니다. 쉽게 말해 공급이 많을 때는 '시장 격리'를 통해 가격을 유지하고 공급이 부족하면 비축분을 풀어 가격 상승을 최소화하는 방식입니다. 양곡은 양식으로 쓰는 곡식 즉 쌀, 밀, 보리, 좁쌀, 옥수수 등을 말합니다. 

양곡법 개정안의 핵심은 정부 재량을 의무로 바꾸는 것이 골자입니다. 예컨대 기존 양곡법에선 정부가 최저가로 입찰된 쌀을 '자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었지만 개정 후에는 시장 가격에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합니다. 기준은 쌀 가격이 전년 대비 5%이상 하락하거나, 쌀 수요에 비해 초과 생산량이 3%이상일 때입니다. 시장에서의 정부 역할을 한층 강화한 겁니다. 

개정안이 등장한 배경은 최근 쌀값의 급격한 하락 때문입니다. 지난해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치로 하락했습니다. 작년 8월 15일 쌀 20kg 기준 산지 쌀값은 4만2522원으로 전년(5만3535원) 대비 20.6%나 떨어졌습니다. 이를 이유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농가 소득을 보장하는 한편,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정책이라며 양곡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쌀 값 하락 / 그래픽=비즈워치

반면 정부와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시장 왜곡입니다. 쌀은 지금도 가격이 높건 낮건 간에 농협과 정부가 대부분 사들이는 구조입니다. 이미 안정적인 판로가 있는 상황에서 "팔리지 않은 쌀은 정부가 사줘야 한다"는 법까지 만들면 만성 공급과잉이 될 것이란 예상입니다. 이는 결국 쌀값을 계속 낮추고 결국 농가에게 손해라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쌀의 공급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입니다. 재택근무 등으로 집밥에 대한 수요가 늘었던 때입니다. 당시 농가들은 큰 소득을 기대하고 쌀 재배를 늘렸습니다. 하지만 곧 엔데믹이 오면서 쌀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그럼에도 쌀 재배 면적이 줄지 않고 있는 건 정부의 수매 기대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이미 정부는 쌀 수매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쓰고 있습니다. 실제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9월 발표한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초과 생산된 쌀 매입에 드는 예산이 2022년 5559억원에서 2030년 1조4042억원으로 세 배가량 늘어날 것이라 추산한 바 있습니다. 이를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매년 1조443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모되는 셈입니다. 

쌀 재배 면적 변화, 엔데믹에도 쌀 재배 면적 감소는 0.7%에 그쳤다. /그래픽=비즈워치

반면 쌀 소비는 현재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쌀이 주식인 상황이 아닙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공급과잉이 심화된다면 오히려 농민들에게 불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2005년 1인당 연간 81㎏을 소비했던 국내 쌀 소비량은 지난해 57㎏으로 30% 급감했습니다. 현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쌀 소비량은 더욱 감소할 가능성이 큽니다. 

양곡관리법이 식량 안보를 위한다는 취지도 걸맞지 않습니다. 현재 정부는 쌀에 치우친 농업 포트폴리오를 밀, 콩, 가루쌀 등 대체작물로 다변화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양곡에는 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전략작물직불제란 인센티브 제도를 내놨습니다. 논에 벼 대신 이들 대체작물을 심으면 ha당 매월 최대 25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콩, 밀 등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입니다. 현재 한국의 밀 콩의 자급률은 1%, 25%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정책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농경제연구원은 쌀의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2027년 밀과 콩의 자급률은 각각 4%, 26.4%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최근에는 밀이 더 중요해지고 있죠. 양곡에는 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반드시 선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변화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낡은 관념을 바꿔 새로운 해법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양곡법 개정안은 자칫 농가를 쌀농사에만 묶어두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왜곡된 결과만 낳을 수 있습니다. 이 피해는 소비자와 농민 산업계가 고스란히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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