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전 빵을 싫어합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입니다. 소보로 빵에 빠져 하루 종일 열댓 개를 먹은 적이 있는데, 그날 밤 배탈이 나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성인이 된 지금도 빵을 잘 먹지 않습니다. 빵 특유의 '더부룩한' 느낌을 싫어합니다. 뭔가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라면은 좋아합니다) '핫템'인 포켓몬 빵도 제 입맛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사회에 나와보니 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건강 등 여러 이유로 빵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쌀빵'에 대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가루쌀(분질미·粉質米)로 만들어 빵보다 속이 편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쌀빵이 공급 과잉으로 폭락한 쌀 가격의 해결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담겼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쌀의 수요는 매년 급감하고 있죠.
이런 점에서 쌀빵은 신선했습니다. 실제로 건강을 우선해 음식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고요. 쌀 가격과 달리 밀가루 가격은 최근 크게 오른 상황입니다. 쌀빵이 여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들었습니다. 하지만 알아보니 쌀빵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쌀빵을 먹어봤다는 사람도 아직 없었고요. 파는 곳도 많지 않았습니다.
문득 쌀빵은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궁금했습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죠. 쌀과자, 쌀국수 등 상품도 많은데 쌀빵 제품은 왜 이렇게 적은지도 의아했습니다. 의문을 참지 못하고 SPC삼립, CJ푸드빌 등 제빵업계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각각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제빵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인 기업이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 생각은 '시기상조'였습니다.
쌀빵이 아직 인기가 없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식감입니다. 가루쌀 만으로는 빵의 식감을 100% 구현하지 못합니다.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이유는 '글루텐' 때문입니다. 글루텐은 밀, 보리 등에 들어있는 단백질 성분입니다.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면 이 글루텐이 형성됩니다. 점성이 생기고 쫙쫙 늘어나죠. 빵의 쫄깃한 식감은 이 글루텐 덕분입니다.
반면 가루쌀에는 글루텐이 거의 없습니다. 쌀은 밀보다 조직이 단단하고 퍽퍽합니다. 이 때문에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식감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물론 '활성 글루텐'을 첨가하면 빵과 비슷한 식감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100% 쌀빵으로 보기 어렵죠. 가루쌀을 쓰는 의미도 적어지고요. 실제로 현재 시중의 제빵용 쌀가루 제품에는 글루텐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100% 가루쌀만으로 빵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이는 발효가 덜 필요한 케이크나 카스텔라의 경우입니다. 일반 빵의 경우는 맛과 식감 등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합니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연구개발로 글루텐 첨가가 필요 없는 가루쌀을 개발하기도 했죠. 문제는 가공공정으로 원가가 크게 오른다는 점입니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쌀 가격이 폭락했다고 해도 여전히 밀가루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며 "쌀은 아직 원부자재 부담이 큰 원료"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일반 쌀빵의 가격대도 아직 높은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웰빙 수요를 타깃으로 잡는 것은 어떨까요. 소비자는 높은 가격에도 건강이라면 지갑을 여니까요. 다만 업계에서는 그 수요가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빵은 대표적인 기호식품입니다. 영양보다는 맛을 이유로 먹습니다. 애초에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빵을 잘 찾지 않죠. SPC 관계자는 "가루쌀은 빵보다도 쌀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과자, 누룽지, 죽 등 다른 가공품에서 더 효용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밀가루의 글루텐이 몸에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죠. 물론 유전성 질환인 ‘셀리악병’을 가지고 있다면 글루텐 섭취를 제한해야 합니다. 다만 현재까지 보고된 한국인의 셀리악병 발병 사례는 단 1건입니다. 다른 글루텐 대체품이 건강에 이로운 것도 아닙니다. 쌀가루, 옥수수 전분, 감자전분 등은 혈당을 높이는 주요 식품이죠. 현재로서는 쌀빵의 '포지션'이 애매한 상황인 겁니다. 맛도 건강도 가격도 밀빵에 비해 월등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쌀빵이 인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죠. 이날 저도 쌀빵을 직접 먹어보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백화점, 마트, 빵집을 돌고 돌아 한 제과점에서 쌀빵을 구입했습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밀빵보다 속도 편한 느낌입니다. 조금 비쌌지만 쌀 빵 특유의 맛도 느껴봤고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쌀빵이 대세가 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한 번쯤 밀빵과 비교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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