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어릴 적 치토스를 참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특유의 고소하고 짭짤한 양념은 자꾸 제 손을 치토스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언젠간 먹고 말 거야' 라고 말하는 치토스의 캐릭터 '체스터'도 좋아했고요. 과자 안에 같이 동봉되어 있는 '따조'는 먹는 재미를 더했죠. 맛도 굉장히 다양했습니다. 바비큐맛부터 치즈맛, 피자맛, 양념치킨맛까지 다들 한 번씩 맛 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그중에서도 제 '최애'는 화이트 치토스였습니다. 붉은 빛깔의 일반 치토스와 달리 화이트는 백옥같은 바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색 포장지도 인상적이었죠. 지금 이 맛을 설명하기 어려운데 당시 굉장히 독특한 맛이었습니다. 고소한 팝콘 맛이 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났습니다. 특히 공기를 머금어 눅눅해지면 이런 맛이 더 극대화됐죠. 제 입맛이 특이하긴 했나 봅니다.
우리가 아는 화이트 치토스는 오리온에서 처음 출시했습니다. 실제로 부드럽고 고소한 맛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니아층이 알음알음 생겼죠. 그러나 1997년 돌연 단종 수순을 밟았습니다. 워낙 예전이라 오리온도 당시 정확한 이유를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다만 매콤한맛, 바비큐맛처럼, '주전 선수'가 되기엔 2% 부족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 오리온과 미국 프리토레이사와의 계약이 2004년 끝나면서 화이트 치토스는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프리토레이는 1948년 치토스를 개발한 글로벌브랜드입니다. 이후 프리토레이는 2006년 롯데제과 (현 롯데웰푸드)와 손을 잡습니다. 이후 출시된 치토스는 롯데제과표입니다. 과거의 추억 때문일까요. 이후 롯데제과에 화이트 치토스를 재생산 해달라는 문의가 많았다고 합니다.
롯데제과는 여기에 힘입어 화이트 치토스를 부활시킵니다. 롯데제과는 지난 2018년 5월 치토스 콘스프맛을 출시합니다. 20여년 만에 화이트 치토스가 돌아온 겁니다. 다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과거 마니아층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했거든요. 당시 SNS 상에서 '과거의 맛과 뭔가 다르다', '그때는 군옥수수맛이었는데…', '뭔가 더 느끼해졌다'는 등의 반응이 많았죠.
결국 돌아온 화이트 치토스도 출시 몇 년만에 다시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타사에서 먼저 출시됐던 상품인 만큼 맛과 브랜딩 등을 이어오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면서도 "제조 공정이나 소비자 입맛이 발전한 것도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업계에서 이런 재출시 상품은 '추억 보정'의 영향이 크다고 말합니다. 소비자들이 실제로 먹고 싶다기 보다 그 당시의 추억을 원한다는 심리입니다. 그래서 그때의 맛을 최대한 똑같이 구현한다고 해도 그때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마치 군대에서 먹던 라면이 사회에서 다른 것처럼요. 애초에 그렇게 인기가 많았다면 단종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똑같이 맛을 구현한다 해도 문제입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부 마니아만 위한 상품이 되어선 안 되니까요. 어느 정도 변화한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합니다. 고소함이 트렌드인 시장에서 갑자기 과거의 매운맛을 출시하면 그 상품은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이 때문에 재출시 상품이 다시 롱런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잠깐 화제를 모았다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그래서 사실 업체들은 재출시 상품을 스테디 셀러로 키우기보다 마케팅에 이용합니다. 일종의 이벤트성 상품인 겁니다. 과거 인기를 모았던 제품을 소환해 브랜드 존재감을 어필합니다. 특히 스낵과 이이스크림은 트렌드에 민감한 상품입니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잘 팔리지 않더라도 다양한 '베리에이션(variation)' 성격의 여러 맛을 내놓습니다.
이처럼 화이트 치토스 같은 재출시 상품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소비자는 '추억의 맛'을 되살릴 수 있어 좋고, 제조업체의 경우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좋습니다. 게다가 재출시 제품들은 소비자들이 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마케팅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일석이조인 겁니다.
여기까지 화이트 치토스로 알아본 재출시 제품의 비밀입니다. 안 팔면 괜히 더 사고 싶고, 떠나면 더 보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죠. 화이트 치토스로 잠시나마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화이트 치토스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추억의 시간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