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물가 인하 압력에 식품기업들이 일제히 꼬리를 내리고 있다. 식품의 원재료인 밀가루를 시작으로 라면, 과자 등이 도미도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영업이익률이 5% 남짓인 식품업계가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내리면서 내실은 더 나빠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표적된 라면가격
정부가 처음 가격 인하를 압박한 품목은 라면이다.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방송에서 "작년 9~10월 라면값을 크게 올렸는데 그때 대비, 1년 전 대비 지금 약 50% 밀 가격이 내렸고 작년 말 대비로도 약 20% 정도 내렸다"며 "제조업체도 밀가루 가격으로 올랐던 부분에 관해선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좀 내리든지"라고 압박 카드를 꺼냈다.
지난 26일엔 농림축산식품부가 제분업계를 소집했다. 농식품부는 CJ제일제당, 대한제분 등 7개 제분업체를 불러 밀가루 가격안정 방안 논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밀 수입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 이를 밀가루 가격에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지난 5월 밀 선물가격은 톤당 228달러로 작년동기대비 45.6% 떨어졌다. 올 1~6월 밀선물가격은 톤당 254달러로 거래되고 있다. 2018년 183달러, 2019년 182달러, 2020년 202달러, 2021년 258달러, 2022년 331달러 등으로 치솟던 톤당 밀 선물 가격이 올 들어 안정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 3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침공하면서 벌어진 식량난이 해소되면서다.
식품업체, 열흘도 못 버텼다
정부가 표적 압박을 가한 라면 업계는 열흘을 버티지 못했다. 라면업계 1위 농심은 지난 27일 다음달부터 신라면 출고가를 6.9% 내린다고 밝혔다. 소매점 기준 신라면 가격이 1000원에서 950원으로 50원 싸지는 것이다. 새우깡 출고가도 4.5% 내린다. 신라면(봉지면)과 새우깡은 국내에서 연간 3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민 간식'이다.
농심이 전격적으로 가격을 인하한 배경에는 제분회사의 밀가루 가격 인하가 결정적이었다. 농식품부 간담회 이후 CJ제일제당이 소맥분 가격을 다음 달부터 5% 내리기로 결정하자, 소맥분을 원재료로 라면 등을 만드는 식품회사가 가격 인하 대열에 등이 떠밀려 동참하게 된 모양새다. 농심 라면 가격 발표 직후 삼양식품 4.7%, 오뚜기 5%, 팔도 5.1% 등 일부 라면 가격 인하 발표가 쏟아졌다.
가격 인하 품목도 라면에서 과자로 확대됐다. 해태제과는 다음달부터 아이비 오리지널 가격을 10% 내리기로 했다.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도 '빠다코코낫', '롯샌', '제크' 등 총 3종의 편의점 가격을 각각 1700원에서 1600원으로 인하하기로했다. 앞으로 제품 가격 인하 품목은 제빵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가격 인하를 결정한 식품업체의 이익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올 1분기 주요 식품 업체의 영업이익률을 보면 삼양식품 9.7%, 오뚜기 7.6%, 농심 7.4%, 해태제과식품 5.8%, 롯데웰푸드 1.9% 등에 머문다. 이 기간 CJ제일제당의 식품부문 영업이익률도 3.5%에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익률이 10%도 되지 않은 식품 업체에 정부가 가격 인하 압박을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