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구조의 변화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국내 유(乳)업계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내년부터 미국과 유럽산 유제품의 관세가 사라지면서 수입 우유와 가격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선유를 소비하기 위한 유인책과 지속가능한 자급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분석한다.가뜩이나 어려운데
국내 주요 유업체들의 실적은 최근 몇 년간 악화일로다. 실제로 남양유업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된 적자만 3236억원에 달했다. 매일유업의 경우 2021년 영업이익 878억원을 거둔 이후 줄곧 600억~700억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매일유업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6억원 이상 감소했다.
수익성 부진의 핵심 요인은 국내 우유 소비 둔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우유는 총 389만톤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9.7%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1인당 우유 소비량 역시 83.9㎏에서 76㎏으로 축소됐다. 이는 최대치였던 2021년(86.1㎏)과 비교하면 10㎏가량 적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악재까지 다가오고 있다. 내달부터 미국과 유럽 우유가 무관세로 수입된다. 정부는 2011년 유럽연합(EU), 2012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36%였던 평균 관세율을 조금씩 낮추기로 협의했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산 우유는 2.4%, 유럽산은 하반기 2.2%까지 하락했다. 여기에 10%대 관세를 부과 중인 호주산과 뉴질랜드산 우유도 각각 2033년, 2034년에 무관세로 전환될 예정이다.
업계는 우유 관세가 0%로 낮아지면 내수 부진 속에서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했던 기업간 거래(B2B)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무관세에 따라 수입산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다, 멸균 공정을 거친 제품이 많아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이점까지 있기 때문이다.
관세 철폐를 앞둔 현재도 수입산은 이미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파고드는 추세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멸균우유의 수입량은 7022톤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배 늘었다. 내년부터는 베이커리와 카페 등 대규모 우유 소비처의 수입산 우유 수요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위협받는 자급률
다만 정부는 이번 수입산 우유 무관세가 소비자 가격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입장이다. 유제품 시장의 공급 구조 개선, 가공유 확대 등의 변화가 안정적인 가격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게 이유다. 이와 함께 가공유 공급 확대, 공급망 확보, 수급 모니터링 강화를 통해 국내 낙농업의 경쟁력까지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국산 우유의 자급률이 50% 이하로 떨어진 건 물론 정부가 지난 2023년 도입한 원유의 '용도별 차등 가격제' 역시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등 가격제는 생산비 상승이 곧 가격 인상으로 직결됐던 과거 '연동제' 방식과 달리 시장 수요를 반영해 원유의 기본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관련 제도가 가격 신축성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수입 우유의 가격은 1136원으로 전년(1157원)보다 1.8% 감소했다. 반면 '남양유업 맛있는우유GT(900㎖)'의 평균 가격은 3053원에서 3062원으로, '매일우유 오리지널(900㎖)'은 3101원에서 3134원으로 각각 올랐다. '서울우유의 흰우유(1ℓ)' 가격 역시 3150원으로 33원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국산 원유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시장 기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산 우유의 대규모 소비처에서 국산 원유를 사용할 경우 세액을 공제해주거나 가맹 수수료를 감면해 실제로 기업의 원가 절감 효과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지자체 축제 납품, 공공조달, 군·사무실 급식 등 확장 가능한 공급처 전체에 국산 원유 사용 시 가점을 부여하는 구조를 제도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에선 가격이 아닌 가치 경쟁을 위해 제품 정보를 표준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원산지, 가공 방식, 신선유 여부, 단백질·유당 기능 정보, 탄소 배출량 등 지속가능한 지표를 제품 라벨에 표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국산 신선유가 가진 프리미엄 가치를 체감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선택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이점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국내 유업계와 낙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정책적인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식량 안보라는 명분이 존재하는 쌀과 달리 우유는 소비하는 연령대가 한정돼 있고 대체품도 충분한 탓에 지원 체계가 뒷받침 되지 않고선 산업 기반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