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의 최종 열쇠를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가 속내를 드러냈다.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다.
금융위는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2.17 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론을 견지했다. 반면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 간 사적 합의 사항인 만큼 이해 당사자가 합의하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적절한 모양새가 만들어지면 조기 통합을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는 '2.17 합의'의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못박았다.
◇ 신제윤 “2.17 합의는 노사 합의”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답변에서 외환은행의 5년 독립경영을 담은 ‘2.17 합의’는 지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가 맺은 ‘2.17 합의’의 기본 정신이 지켜져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이해 당사자가 원한다면 조기 통합이 가능하다”고도 말했다. ‘2.17 합의’가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타당하다는 의미는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는 뜻”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신 위원장은 “‘2.17합의’는 노사정 합의보다는 노사 합의 성격이 강하다”면서 정부는 합의의 주체가 아닌 제3자라는 사실도 분명히 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17 합의’ 자리에 함께 참석하긴 했지만 단순 입회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앞서 외환 노조의 중재 요청에 대한 확실한 거부 답변이기도 하다.
◇ 모양새 갖추면 조기 통합 승인?
신 위원장의 발언은 ‘2.17 합의’는 존중하지만, 하나금융과 외환 노조 등 이해 당사자가 동의하면 조기 통합도 승인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 위원장은 오히려 조기 통합에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노사 합의가 없는 조기 통합을 승인할 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가정으로 답할 순 없다”면서도 “경영진은 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노조는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외환은행의 앞길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신 위원장은 중재 역할이든 뭐든 하나금융과 외환 노조의 조기 통합 논란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정리했다. ‘2.17 합의’는 하나금융과 외환 노조간 사적인 합의인 만큼 양측이 알라서 해결하라는 주문이다.
결국 금융위의 입장은 하나금융이 적당한 모양새를 만들어오면 조기 통합을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금융위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오라는 얘기다.
◇ 하나금융의 선택은 두 가지
결국 하나금융이 금융위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외환 노조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책이다. 다만 외환 노조가 조기 통합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외환은행 일반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우회전략을 펼칠 수도 있다.
신 위원장이 지칭한 이해 당사자가 일차적으론 외환 노조를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론 외환은행 일반 직원들을 아우르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외환 노조의 대표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강경 일변도인 노조를 비판하는 내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다, 노조 집행부간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여기에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외환 노조가 ‘2.17 합의’를 먼저 파기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김 전 회장은 이날 국감 답변에서 “외환은행 독립경영은 IT와 신용카드 부문 통합이 전제였다”면서 “그러면 두 은행을 통합하지 않아도 1700억~18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도 된 게 없다”면서 “합의는 양자가 함께 지켜야 의미가 있다”고 꼬집었다.
◇ 하나금융은 차곡차곡 명분쌓기
‘2.17합의’를 먼저 파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하나금융은 차곡차곡 명분을 쌓으면서 연내 통합을 밀어부치고 있다. 외환 노조의 거부에도 계속 대화를 요청하고 있고,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노조사무실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텅빈 회의장을 지키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등 여론전도 펼치고 있다.
최근엔 외환은행 직원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도 진행하고 있다. 조기 통합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그렇다면 이유가 뭔지를 적어내도록 했다. 공개적으로 찬반 의사를 묻는 방식에 대한 내부 비판이 많긴 하지만 찬성 의견이 많이 나오면 노조의 대표성은 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 역시 은행산업의 발전이란 차원에서 하나-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2.17 합의’가 존재하는 만큼 하나금융이 명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