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은행 사용법'이 올해를 기점으로 확 바뀔 전망이다. 9월부터는 편하게 주거래은행을 바꿀 수 있고, 연말부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있다. 금리나 서비스에 따라 손쉽게 고객들을 뺏길 가능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의 움직임도 바빠질 전망이다.
◇ 비대면 확인 절차 2가지 이상…핀테크 활성화 기대
금융위원회는 18일 금융사 창구를 방문하지 않아도 첫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비대면 실명 확인' 허용 방안을 내놨다. 은행은 12월부터, 증권사 등 다른 금융권은 내년 3월부터 적용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1993년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은행이나 증권사, 저축은행 등에서 계좌를 만들려면 창구를 직접 찾아야 했다. 금융위는 이 같은 방식이 핀테크 등 격변하는 금융환경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 22년 만에 비대면으로도 실명을 확인하고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금융위는 △신분증 사본 제시 △영상통화 △현금카드 전달 시 신분 확인 △기존 계좌 이용 등을 금융사가 활용 가능한 비대면 실명 확인 방안으로 규정했다. 이중 최소 2가지 이상을 병행하도록 했다. 이 밖에 금융사 자체적으로 또 다른 비대면 실명 확인 절차를 더할 수 있다.
현금카드나 통장, 보안카드, 공인인증서 등을 발급할 때도 비대면 실명 확인이 허용된다.
◇ 계좌이동제와 맞물려 은행권 경쟁 격화될 듯
모든 금융사에 비대면 실명 확인이 허용되면 인터넷전문은행 등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동안 대면 실명 확인을 의무화한 규제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등을 제약해 핀테크 발전의 대표적인 걸림돌로 지적됐다.
오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계좌이동제와 맞물리면 소비자들의 은행 이용 방식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그동안 주거래은행을 바꾸고 싶어도 대면확인 원칙 등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편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좌이동제란 고객이 주거래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기면 기존 계좌에 연결된 공과금 이체, 급여 이체 등도 별도 신청 없이 자동 이전되는 시스템이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돼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최근 연구 결과 등에 따르면 은행 고객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주거래은행을 최근 3년 새 바꿨거나 앞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거래은행을 변경하지 못한 이유로 '영업점을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58%로 가장 많았다.
◇ 대포통장 우려는 여전…"위험요인 파악할 것"
계좌 개설이 쉬워진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를 들어 통장 명의자가 대포통장 사기범의 강요나 설득 때문에 온라인으로 통장을 개설할 경우 이를 알아챌 가능성이 작아진다.
금융위는 이 같은 우려에 따라 모니터링이나 거래 목적 확인 절차 등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이는 계좌개설이 쉬워지기 전에 만들어진 기존 대포통장 방지대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도규상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본격 시행 전 사전테스트 과정에서 대포통장 개설 위험요인을 파악해 시행 전까지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