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들이 핀테크 기업 직접 투자에 여전히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정부가 최근 관련 규제 정비 등 투자 활성화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금융 관련법의 특성상 한계가 있고, 금융사들은 당장 핀테크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에 주저하는 모습이다.
◇ '금융사 출자 가능' 핀테크 기업 유권해석
금융위원회는 6일 열린 제3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핀테크 산업 활성화 방안'을 보고했다. 앞서 발표한 'IT·금융 융합 지원방안'을 비롯해 그동안 내놨던 핀테크 관련 정책들을 구체화했다.
눈에 띄는 내용은 금융사의 핀테크 투자 활성화를 위해 출자 가능 기업 범위를 유권해석한 부분이다. 금융 관련 법상 금융사는 금융업이나 금융기관의 업무 수행과 관련 있는 회사만 출자·지배할 수 있게 돼 있는데, '관련 회사'의 범위가 명확지 않아 금융사들이 그동안 투자를 주저해 왔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금융위는 '핀테크'를 금융업과 관련이 있는 업종이라고 규정하고, 그 업무 범위를 △전자금융업(전자화폐 발행·관리, 전자자금이체, 전자지급결제대행, 직·선불 전자지급수단 발행·관리 등) △빅데이터 개발 등 금융데이터 분석 △금융소프트웨어 개발·제공 △금융플랫폼 제공 등으로 제시했다.
핀테크 외의 사업을 병행하는 기업에 대한 처리 방향도 내놨다. 대기업 중에서는 핀테크 사업이 전체 매출·자산의 75% 이상을 차지해야 핀테크 기업으로 분류하고, 중소기업의 경우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 주된 업종이 핀테크 업무면 출자할 수 있는 기업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 이제 투자 '첫걸음'…넘어야 할 산 많아
금융사들은 이번 방안으로 그동안 모호했던 핀테크 기업의 범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금융사가 핀테크 기업 출자에 '걸음마'를 뗄 수 있게 된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선 사전에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큰 틀에 변화가 없다. 다만 금융위는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금융사의 출자 승인 의무를 일부 폐지하는 방안을 입법예고 한 바 있다. 사모투자전문회사나 펀드 등으로 적용 범위를 제한했는데, 추후 시행령을 통해 이번에 발표한 핀테크 기업군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사후보고로 바뀌더라도 다양한 사업 영역을 창출하는 핀테크 사업의 특성상 금융사 자체적으로 출자 허용 기업이라고 먼저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핀테크 기업 출자의 길을 제시해줬지만, 국내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다. 실제 국내 은행들의 경우 경쟁적으로 핀테크지원센터 등을 출범하고 있지만 IT 기업과 제휴를 논의하거나 대출 상담을 하는 '소극적 대응'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아직 핀테크 '열풍'을 경계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김남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해외와 달리 국내 금융 인프라는 잘 발달해 있어 핀테크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닷컴 버블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지적했다.
전상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전략연구실장 역시 "해외 주요국에서 핀테크 기업이나 인터넷은행이 금융업 혁신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금융시스템 전체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고 보기는 무리"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