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6위 부동산신탁회사인 무궁화신탁이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한파로 인해 재무건전성이 악화하면서 결국 금융당국의 주도 아래 강제 체질 개선에 나서게 된 셈이다.
관련 업권에서는 무궁화신탁이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부동산PF 시장 한파의 충격이 관련 업계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이번 문제는 무궁화신탁에 국한됐고 레고랜드 사태, 건설사 워크아웃 등을 통해 충분한 대응 능력을 쌓아온 만큼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무궁화신탁, 제3자에 회사 팔아야
27일 금융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무궁화신탁에 대해 경영개선명령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경영개선명령은 자본 건전성이 금융당국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금융회사에게 내리는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 중 가장 강력한 수위다.
무궁화신탁이 경영개선명령을 받게된 이유는 악화한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부동산신탁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을 150%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는데, 지난 9월말 기준 무궁화신탁의 NCR은 69%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명령안에 따라 무궁화신탁은 유상증자 혹은 자회사 정리를 통한 자체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 제3자 인수 계획 수립 등도 세워야 한다.
아울러 내년 5월 26일까지 차입형 및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신규 영업은 할 수 없다. 무궁화신탁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경영개선계획을 내년 1월 24일까지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현재 경영개선명령을 발동했고 이 계획서를 제출받은 이후 전문적인 경영평가위원회에서 평가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승인 이후 자체적인 증자나 제3자 매각 절차를 진행하면 이를 금융감독원이 점검을 하고 자본력을 보강하면 졸업을 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해 인가를 취소하는 그런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라며 "(무궁화신탁에서)제3자 매각 계획 등을 준비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무궁화신탁은 왜 사상누각에 올라섰을까
무궁화신탁이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게된 원인으로는 부동산PF 시장이 냉각되면서 손실이 눈덩이 처럼 불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된다.
무궁화신탁을 비롯한 부동산신탁회사는 '책임준공형' 방식으로 부동산 PF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책임준공형 방식이란 신탁사가 책임지고 준공하겠다는 의무를 지고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약정한 날까지 공사를 모두 끝마치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이에 따른 손실은 모두 신탁사가 떠안는 방식이다.
부동산 시장이 경색되기 이전까지는 이같은 방식이 문제가 될 소지가 적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물류비, 인건비, 자금에 대한 이자비용 등 제반비용이 모두 상승하면서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사업장이 속출했다. 이 때문에 책임준공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던 부동산 신탁사들이 대부분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됐다.
실제 무궁화신탁은 올해 3분기 16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부동산 PF 시장 경색 이전에는 매년 300억원 가량의 순이익을 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동산 PF 시장의 한파를 고스란히 맞았다는 평가다.
다른 부동산신탁회사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건은 다른 부동산신탁사의 경우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해 모기업 차원에서 지속적인 증자 등 수혈이 가능했는데, 무궁화신탁은 이와 같은 든든한 뒷배가 없었다는 것이 이번 금융당국의 경영개선명령을 받게 된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 무궁화신탁은 오창석 회장이 지분 50.8%를 보유한 대주주로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권대영 사무처장 역시 "대한민국 신탁사 14개 중 금융지주 계열은 8개고 이들은 지주가 대주주여서 상당한 자본 확충이 가능했"라며 "독립계도 대부분 개인이 아닌 군인공제회, 보성그룹 등이 대주주로 있어 (자산건전성이)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동산PF 더 얼어붙나…금융당국 '선 긋기'
무궁화신탁이 경영개선명령을 받으면서 과거 태영건설 구조조정 당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PF 시장에 대한 냉각이 더욱 가속화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단 금융당국은 무궁화신탁의 경영개선명령은 업계 전반의 문제가 아닌 무궁화신탁만의 특수성에 기인한 사례인데다가 부동산PF 시장 경색 이후 금융당국이 충분한 위기 대응능력을 갖춰왔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와 시장참여자들은 충분히 위기대응능력을 학습해왔고 이미 시장참여자들이 무궁화신탁의 건전성 문제를 상당기간 예의주시해 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금융개선명령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고 충분히 통제 및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금융당국은 무궁화신탁의 경영개선명령으로 인한 분양계약자, 시공사, 협력업체 등의 피해 방지를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현재 무궁화신탁이 공사중인 사업장 중 분양이 진행돼 분양계약자가 있는 사업장은 26개(주거 22, 비주거 4)다. 이 중 5개 사업장은 HUG의 분양보증 가입, LH 매입약정이 돼 있어 분양계약자 보호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21개 사업장의 경우에는 개별 사업장별로 계속 공사를 추진하거나 신탁재산의 책임 범위 내에서 분양계약자의 권리 보호 확보 유도해 나간다는 게 금융당국의 계획이다.
권 사무처장은 "사업장 별로 계속 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탁계약에 정한 바에 따라 공사대금이 원활하게 지급되도록 정부가 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