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계열사 몰아주기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삼성생명과 HMC투자증권 등 일부 금융회사가 규제 공백을 악용해 불공정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펀드와 보험 상품과는 달리 퇴직연금만 유독 명시적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없다. 금융업계 자율결의 형태로 50% 규정을 도입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퇴직연금 시장이 커질수록 불공정 경쟁과 쏠림현상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계열사 몰아주기 관행 제동
금감원은 25일 ‘국민체감 20대 금융관행 개혁’ 조치의 하나로 퇴직연금시장 질서 확립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퇴직연금 계열사 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지금도 금융업계 자율결의로 계열사의 퇴직연금 비중이 50%를 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인 구속력도, 위반 시 제재 규정도 없다 보니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자율결의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50% 규정을 무시하고, 계열사 물량을 60% 선까지 늘렸다. 덕분에 삼성생명은 지난해 기준으로 퇴직연금 시장의 16%를 차지하면서 은행과 증권 등 전 금융권을 통틀어 적립금 1위 자리에 올랐다.
현대차그룹 계열의 HMC투자증권으로 계열사 퇴직연금 비중은 90%가 넘는다. HMC투자증권의 경우 자율협약에선 아예 빠졌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퇴직연금 일감 몰아주기 실태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그 결과를 관계 기관에 전달하고, 실효성 있는 억제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협의 사항이어서 당장 현실화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우 금감원 금융혁신국장은 “일감 몰아주기를 내버려두면 불법적 수단을 활용한 퇴직연금 유치 경쟁 또는 불공정 경쟁이 계속되고, 결국엔 가입자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다만 관계기관과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 김용우 금융감독원 금융혁신국장이 25일 퇴직연금시장 질서 확립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 특별이익 제공 점검도 강화
금감원은 특별이익 제공에 대한 점검을 강화한다. 퇴직연금 계약을 체결하거나 유지하는 과정에서 기업이나 가입자에게 3만 원이 넘는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어서다.
실제로 금융회사가 퇴직연금 가입 기업의 임직원에게 우대 대출금리를 제시하거나 각종 관람권을 배부하는 등 특별이익을 제공하는 사례가 빈번한 실정이다.
금감원은 이번에 퇴직연금 계약 체결에서 유지. 지급 단계로 나누어 개선책을 마련했다. 계약 체결 단계에선 계약서류 작성 시 법규준수 관행을 확립하고, 퇴직연금 표준약관을 제정해 회사마다 다른 약관을 통일하기로 했다.
금융회사가 중소기업 등을 상대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불법과 편법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강요하는 행위도 근절에 나선다.
계약 유지•관리 단계에선 모든 판매회사의 운용수익률과 수수료율을 비교할 수 있도록 일괄 공시시스템을 만든다. 퇴직연금에 특화한 투자권유 준칙을 마련해 가입자의 특성에 적합한 투자상품도 제공한다. 퇴직연금 적립금 정보제공 방법과 상품의 종류도 확대한다.
아울러 지급단계에선 도산한 기업을 비롯해 미지급 적립금이 있는 경우 미지급 퇴직연금액과 청구 절차를 안내해 조속하게 지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키로 했다. 다른 금융회사로 계약이전 요청 시 14영업일 이내 처리하고, 기한을 넘기면 지연이자를 지급하도록 했다.
김용우 국장은 "금감원 내 퇴직연금업무 검사를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해 은행과 보험, 증권 등 권역에 구애받지 않고 위법행위를 적발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