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 집을 가져가려는 수작이다!"
정부가 올해 안에 이른바 '주택연금 3종 세트'를 출시하겠다고 하자 기사 댓글에 이런 반응이 많았습니다. 내 집을 정부에 넘기고 적은 돈만 주겠다는, 결국 난 손해고 정부만 이익이라는 시선입니다.
그러나 주택연금이라는 제도를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정부가 오히려 손해를 보게 설계한 상품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잘만 활용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집을 정부에 넘겨버리고 마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내 집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 어떨까요? 연금은 그대로인데 집을 넘겨놨으니 손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른 만큼의 차익을 본인이나 사후(死後) 자녀들이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집값이 내려가면요? 그러면 정부가 돈을 냅니다.
우리나라 집값이 앞으로 크게 오를 일은 없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주택연금 가입의 적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부는 오히려 십수 년 뒤엔 주택연금 탓에 재정에 부담될까 걱정하고도 있습니다.
◇ 60세 이상, 9억 원 이하 가입
정부가 주택연금 활성화를 외치고 있는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개인 자산의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고령자들은 당장 현금화가 쉬운 금융자산보다 부동산 자산의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그래서 집은 가지고 있지만, 당장 쓸 돈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면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게 되고, 결국 경기 침체도 지속합니다.
그래서 부동산 자산을 금융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내놓은 게 바로 주택연금입니다. 물론 집을 팔아 돈을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살 집이 없어집니다. 본인의 집에서 평생 살고, 그 집값을 연금으로 받는 정책입니다.
소유자가 60세 이상이어야 가입할 수 있고요. 이 중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하나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주택자는 합산 가격이 9억 원 이하면 가능합니다. 보유 주택이 2개인데 합산 가격이 9억 원이 넘는 경우엔 하나를 3년 이내에 처분하는 조건으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인근 주택금융공사 지사에서 신청하고, 이후 은행에서 실무 작업을 하면 됩니다.
◇ 낮아지는 월 지급액…중간 목돈 인출 가능
주택연금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집을 맡기면, 주택금융공사가 주택가격과 기대수명 등을 따져보고 월 지급액을 정합니다. 신청할 때 정해진 지급액은 평생 변하지 않습니다.
신청 시 적용하는 월지급액 기준은 주택금융공사가 연 1회 새로 산정하는데요. 점점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월지급액 기준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적용 기준은 22일 새로 나왔습니다. 물론 지급액이 낮아졌습니다.
▲ 2016년 2월, 월지급금 변경내용. 주택금융공사 |
연금은 부부가 함께 받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뜨더라도 남은 분이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급 유형은 평생 일정 금액을 매달 받는 것 외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입 뒤 10년 동안 돈을 많이 받다가 11년 째부터, 70%만 받는 방식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돈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아이디어에서 만든 방식입니다.
기존에는 점점 받는 돈을 늘리거나, 점점 낮추는 방식도 있었는데 올해 2월부터 폐지합니다.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은 데다,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10년이나 30년 등 일정 기간만 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연금을 받는 중에 목돈이 필요하면 한 번에 찾는 것도 가능합니다. 주택금융공사가 처음에 책정한 예상 연금 총액의 50%까지 됩니다. 대신 그만큼 이후 월지급액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찾을 목돈을 설정해놓고, 나머지만 연금으로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 일찍 죽거나, 집값 오르면 손해? NO!
연금을 받다가 내가 일찍 죽거나, 혹은 집값이 뛰면 손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연금을 받다가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 그동안 받은 연금을 뺀 나머지 집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속자가 직접 집을 팔거나, 아니면 주택금융공사에 경매를 맡기면 됩니다. 집값이 뛴 경우 역시 집을 팔면 돈이 예상보다 많이 남을 테니, 상속자가 차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장수(長壽)'를 해서 예상보다 돈을 많이 받으면요? 그땐 집을 판 금액만 주택금융공사에 주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택금융공사가 메웁니다. 집값이 하락한 경우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연금 받은 것보다 집값이 낮아지더라도 주택금융공사가 돈을 냅니다.
▲ 주택처분과 연금지급 차익 처리. 주택금융공사 |
부득이하게 이사할 경우엔 이사한 집이 같은 가격이라면 당연히 변동이 없고요. 새집이 더 비싸면, 월지급액을 재조정해서 더 많은 연금을 받으면 됩니다.
이사한 집이 저렴할 경우엔 기존에 받았던 돈 일부를 내야 합니다. 일부러 집을 팔아 차익을 챙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월 지급액 100만 원에 해당하는 집에 살았다가 50만 원에 해당하는 '작은 집'으로 이사한다면, 그동안 받은 연금 중 월 50만 원 만큼의 돈을 모두 모아서 내야 합니다. 대신 이후엔 계속 이전처럼 100만 원씩 받을 수 있습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의 경우 역시 마찬가집니다.
◇ 주택담보대출, 연금액 인출해 갚아야
주택담보대출이 있으면 주택연금 가입이 안 되는데요. 대신 연금 지급액의 50% 내에서 한 번에 찾아 갚은 뒤 가입하면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빚이 많아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정부가 이번에 '주택연금 3종 세트'라는 이름으로 새 방식을 내놨습니다. 70%까지 찾아 주택담보대출금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만 연금을 받는 식입니다. 물론 월지급액이 많이 낮아지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관련 기사 : 주택연금으로 주담대 갚는 상품 나온다
여기에 더해 40~50대의 경우 주택금융공사가 주관하는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을 신청하면서, 주택연금에 미리 가입할 수 있는 방식도 내놨습니다. 이 경우 보금자리론의 금리를 깎아줍니다. 또 2억 5000만 원 이하 주택을 가지고 있는데, 연 소득이 2350만 원보다 낮은 '저소득' 노인층에 대해선 기존 주택연금보다 20%를 더 주는 우대형 상품도 내년부터 내놓습니다.
▲ 40~50대 대상 보금자리론 연계 주택연금. 금융위원회 |
◇ 3만 가구 가입…상속 문화 여전
물론 연금을 받는 중간에 그동안 받은 돈을 상환하고 해지할 수 있고요. 대신 한 번 해지하면 3년 동안 가입을 못 합니다.
주택연금은 2007년 7월부터 시행했는데요. 현재 3만 가구 가까이 가입해 있습니다. 60세 이상 자가보유 세대가 326만 6000가구 정도라고 하니 1%에 조금 못 미칩니다. 가입자의 평균 주택 가격은 2억 8000만 원가량이고, 평균 월 99만 원을 받습니다.
주택연금의 호응이 아직 적은 이유는요. 정부 정책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월 지급액도 적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상속'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자녀에게 주택을 물려주고 싶거나, 부모님 주택을 상속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자녀분들에겐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