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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아! 구조개편' 산업은행의 탄식

  • 2016.08.31(수) 15:33

한진해운, 채권단 주도 기업 구조조정 한계 드러내
산업 재편 없인 성공 어려운 데 정부는 자화자찬만

"향후 여러 상황을 봤을 때 (채권단의) 부족자금 지원 규모가 확대될 개연성이 매우 큽니다. 이 상태에서 구조를 개편하지 않고선 채권단 지원만으로 정상화는 어렵습니다."

채권단의 한진해운 신규지원 불가 결정에 대한 산업은행의 기자간담회 직후였습니다. 기자들은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던 정용석 산은 구조조정부문 부행장에게 몰렸습니다.
몇가지 질문들이 오갔고 답변 말미에 툭 던진 그의 얘기가 귓가에 맴돕니다.

한진해운 구조조정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1차적인 책임은 최은영 전 회장(현 유수홀딩스 대표)이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전현직 경영진에게 있습니다.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던 산업은행과 금융당국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 부행장의 언급은 단순히 실패를 면피하고자 한 얘기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지난 5월 초부터 넉달 가까이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이끌어오면서 그가 몸소 느꼈던 한계가 아니었을까요.

이젠 업황 사이클이 단순하게 경기변동과 함께 움직이진 않는 상황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3D프린팅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각에선 해운업의 존폐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이를 차치하고라도 당장 해운시장이 살아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이 세계 1, 2위사인 머스크와 MSC 역시 영업손실을 내고 있고, 해운업의 정통적인 성수기로 꼽히는 2~3분기에도 운임이 전혀 오르지 않는 등 대외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고 거론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면에서 벼랑 끝에 섰다가 정상화의 기반을 마련한 현대상선의 얘기는 좀 다릅니다.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됐지만 천운이 따랐습니다. 한 차례 매각에 실패했던 현대증권이 대우증권이란 매물이 사라지면서 단숨에 인기 매물로 등극했고 몸값도 1조원대로 뛰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한진해운이 청산절차를 밟게 되면서 대체선박 투입 등을 하게 될텐데요. 이러한 과정들이 현대상선의 수익 개선이나 정상화엔 호재로 작용할 겁니다. 유일한 국적선사가 됐다는 점도 그렇고요.

이제는 채권단에서 돈을 넣어 어려움을 모면하는 식으로 구조조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민간연구소나 업계 전문가들의 이같은 지적은 지난해부터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주도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구조조정에는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정부 차원의 산업재편 혹은 구조개편이 동반돼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도 정부는 지금까지 10년 전에 적용했던 구조조정 틀을 고수했고, 결국 실기했습니다.

그 사이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이번엔 한진해운입니다. 산업에 대한 밑그림 없이 4조원 넘는 신규 자금을 지원키로 한 대우조선해양 역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31일 한진해운 회생절차 신청에 따른 금융시장 대응회의에서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킨 사례로 '혈세지킨 현대상선, 원칙지킨 한진해운'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요.

앞선 구조조정 사례처럼 국가 경제 혹은 국익이라는 논리에 밀려 매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혈세를 지원하지 않은 점은 다행입니다.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킨 점도 그렇고요. 하지만 금융위가 이를 자화자찬할 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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