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꿈이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이념을 받들어 육·해·공을 연결하는 '수송왕국'을 꿈꿨던 조 회장에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전망이다.
산업은행 등 한진해운 채권단은 30일 '신규지원 불가' 입장을 확정했다. 더이상 한진해운에 새로운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진그룹이 조양호 회장의 사재와 함께 5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마련했지만 채권단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한진해운은 결국 법정관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그리고 조양호 회장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회장의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가 1977년 세운 회사다. 수출이 주력인 한국에게 해운업이 필수적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1988년 대한선주를 인수한 한진해운은 한국 산업의 성장과 함께 발전해왔다.
지난 2002년 조중훈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며 한진해운은 3남인 고 조수호 회장에게 맡겨진다. 하지만 2006년 조수호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하며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섰고,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최은영 회장은 한때 계열분리를 시도하는 등 독립경영을 꿈꾸기도 했지만 정작 해운업 경기침체가 다가오자 이를 이겨내지 못했다.
지난 2013년 최은영 회장은 결국 시숙인 조양호 회장에게 한진해운 경영권을 넘기고 물러나게 된다. 창업주의 장자인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 경영을 맡은 후 그룹 역량의 상당부분을 한진해운에 투입했다. 2014년에는 직접 대표이사 자리를 맡아 무보수로 일하는 등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사들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원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와 영구채 발생 등을 통해 8000억원이 넘는 지원을 했고, (주)한진과 한진칼 등도 자산·상표권 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했다. 한진해운도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14년 이후 한진그룹 계열사들이 지원한 금액만 약 1조2500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한번 침체된 업황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한진해운은 다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조 회장은 결국 경영권을 포기했고, 한진해운은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는 처지가 됐다. 자율협약 아래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진그룹의 자구안을 받아본 채권단은 결국 이날 신규자금 지원 불가 결정을 내렸다. 한진해운 입장에서 남은 카드는 '법정관리 신청' 뿐이다. 한진그룹은 이날 공식입장을 통해 "한진해운 경영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며 "해외 채권자와 선주사들의 협조까지 힘들게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지원 불가 결정이 내려져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한진그룹은 해운산업 재활을 위해 그룹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식 입장에서 법정관리를 언급하며 사실상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내비친 셈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현재 경영상황과 해운업 특성 등을 감안하면 경영정상화보다 파산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수송왕국'이라는 청사진을 그렸던 조양호 회장의 꿈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