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은행과 증권은 운동장이 다르다"면서 최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의 '기울어진 운동장' 발언을 반박하고 나섰다. 은행권에 불특정 금전신탁을 재허용하는 등 전업주의 대신 겸업주의를 도입해 아예 업권 간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종합운동장론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앞서 황 회장이 증권업계가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언급한 바 있다.
하 회장은 20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의 은행권 현안에 대해 작심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달 18일 금융연구원 등 유관기관 공동 기자간담회 이후 불과 한달 만이었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최근 현안에 대한 입장을 조목조목 밝혀 눈길을 끌었다.
최근 IB육성방안, 신탁업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 허용과 은행권의 불특정금전신탁 재허용 여부 등을 놓고 업권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현안들이 불거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 사진/은행연합회 |
◇ "운동장이 다르다‥차라리 종합운동장 만들자"
하 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은 축구장에서 축구경기를 하고, 증권은 농구장에서 농구경기를, 보험은 배구장에서 배구경기를 하라는 전업주의가 기본 방향"이라며 "운동장이 기울어진게 아니라 운동장이 다르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황영기 회장의 기울어진 운동장 발언에 대한 반박이다.
이어 "(증권업계에)지급결제를 허용 안해준다고 기울어졌다고 하는 것은 농구장에서 농구를 해야 하는 팀이 축구도 하겠다, 또 손을 잘 쓰니까 축구하면서 손도 쓰고 발도 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EU 등 어느 나라에서도 증권사가 지급결제망에 가입한 나라가 없고, 글로벌 IB도 지급결제망에 가입한 곳이 없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하 회장은 "몇년 전 증권사에 개인 지급결제만 허용하고 법인결제를 허용하지 않았던 점 역시 증권이 은행업을 영위하는 리스크를 안게 되고 이 경우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IB육성방안을 보면 이에 대한 위험도는 더 커졌다"며 계속 지급결제를 요구하면 자칫 역풍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겸업주의 도입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업권간 이해상충 문제)이런 논란을 없애는 것은 종합운동장을 만드는 것"이라며 "겸업주의로 가야 범위의 경제,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 회장은 "종합투자계좌(IMA) 허용 등 증권업은 전업주의의 벽을 허물고 겸업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며 "선별적 전업주의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금융산업 전반에 걸쳐 겸업주의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탁업법을 재검토하고 있고, 증권사에 IMA를 허용하는 마당에 이와 성격이 비슷한 은행권의 불특정금전신탁을 배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 "대고객 수수료는 수익 관점보다 차별화 관점서 봐야"
최근 일부 은행의 계좌유지수수료, 창구수수료 부과 논란에도 입을 열었다. 하 회장은 "수수료 부과 문제는 단순히 돈을 벌겠다는 관점에서 보는 것보다 차별화 관점에서 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씨티은행은 계좌유지 수수료를 받음으로써 고객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미이며 창구거래수수료는 4차 산업혁명시대·디지털 시대에 맞는 업무 프로세스로 전환하려고 하는 관점에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어떤 은행은 계좌수수료를 받고, 인터넷 전문은행 같은 곳은 계좌를 열기만 해도 포인트를 주기도 하고, 또 창구에서 수수료를 받기도 하는가하면 창구에 오면 특전을 주는 은행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수수료에 대한 정상적인 정도의 보상이 되지 않으면 결국 금융소비자의 불편으로 돌아간다"고도 언급했다. 가령 은행이 자동화기기(ATM)를 한대 운영할 때 150억원 이상 손실이 나는 상황인데, 수수료를 원가(500원)보다 적은 200~300원을 받는다면 결국 기계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기계를 비싼 수수료(1000원 가량)를 물고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맘때면 불거지는 은행권의 고배당 논란에 대해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돈을 갖고 가는게 안좋다는 논리라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국채 사는 것부터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 회장은 "주식시장에서 리스크를 안고 국채이자 수준 혹은 그보다 조금 높거나 낮게 받는 것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