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미쳤어요."
시장 좌판, 혹은 장사를 접기 위해 '땡처리'하는 가게에서나 볼 법한 문구들이 금융사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 한 대형 손보사가 암보험상품의 유사암 진단금을 높인 상품안내 자료에 실은 문구다. 발병이 잦고 치료비가 낮아 일반암의 10~20% 수준으로 낮췄던 진단금을 일반암의 150% 수준으로 높인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장포화, 경기침체로 신규 가입자가 줄고 해지가 늘자 보험사들이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한 결과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생존'전략일까?
보험사들은 최근 몇년간 상품 판매력을 높이기 위해 법인보험대리점(GA) 설계사들을 대상으로 수수료, 시책경쟁을 무리하게 벌여왔다. 금융당국이 대대적인 사업비와 수수료 개편작업에 나선 이유다. 당국이 수수료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자 보험사들은 더 나아가 보장확대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인해 업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보장이 확대되면 소비자들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보장금액만 높이고 정작 보장받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의 사실상 불완전판매나 가입자간 상대적 보장 차별 문제 등 피해를 볼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 보장금액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대표적인 상품은 암보험이다. 지난해 치아보험, 올해초 치매보험을 거쳐 최근 암보험시장 출혈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대부분 손보사들은 유사암, 소액암 진단금을 일반암 수준으로 끌어올린 상태다. 유사암, 소액암은 치료비가 낮은 반면 진단·발병률이 높아 암보험 손해율을 크게 높인 암들로 암보험 판매중단 사태에까지 이르게 했었다. 이후 소액암, 유사암으로 이름 붙여 진단금을 기존 일반암 대비 10~20%까지 축소하면서 다시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유사암은 갑상선암, 기타피부암, 경계성종양, 제자리암을 포함한다., 소액암은 주로 생보사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자궁암, 유방암, 전립선암, 방광암 등 생식기암을 말한다.
최근 손보사들은 유사암 진단금을 한시적으로 일반암을 뛰어넘어 최대 5000만원까지 지급하는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3000만원 수준의 일반암 진단비 보다 높게 측정한 것으로 파격이다.
이는 대대적인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됐다. 마치 걸리기 쉬운 질병을 통해 보험금으로 초과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보험의 '수지상등' 원리를 무시한데다 소비자들에게 보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 보험산업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는 유사암 진단비 경쟁이 간편심사보험으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간편심사보험은 유병자를 대상으로한 상품으로 간단한 고지만으로 가입이 가능하다. 유병자대상인 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인데 최근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걸린다는 2대질환(뇌혈관질환, 허혈성심장질환)진단비를 최대 1000만원까지 높인 상품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보장금액 상향 뿐 아니라 보험사 핵심업무인 언더라이팅(보험가입심사) 완화를 이벤트성 마케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A손보사는 간편심사보험 가입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도 중대질환 이력이 있으면 인수를 거절했지만 단기간 인수심사를 완화하고 예외질환도 추가로 확대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영업지점에 전달했다. B손보사는 기존 유사암으로 분류됐던 대장점막내암을 일반암으로 재분류하고 기존 무사고가입자에게는 감액·면책기간을 적용하지 않는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전달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 곳에서 진단금을 올리거나 인수기준을 완화하면 다음날 바로 다른 회사들이 이를 따라해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며 "상품경쟁이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출혈경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건강검진 등으로 발병, 진단 가능성이 높은 유사암 뿐 아니라 유병자들을 위한 간편심사보험에 2대질환진단금을 높인 것은 '다 주겠다'는 식으로 차후 손해율 상승이 크게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제살 깎아먹기식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비단 보험사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입자간 상대적 차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상품들은 한때 종적을 감췄던 비갱신형 상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저해지 혹은 무해지 상품들이다. 중간에 해지하지 않으면 기존 상품 대비 보험료가 저렴하면서도 차후 손해율을 적용해 보험료가 상승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보험가입자 입장에서는 보장은 높은데 보험료는 더 낮게 가입할 수 있다. 반면 기존 갱신형담보로 같은 보험종목에 가입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손해율을 떠안을 수 있다.
보험은 '수지상등의 원칙'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낸 보험료와 차후 지급될 보험금이 같아야 한다. 지급되는 보험금이 늘어나면 보험료를 더 거둬들여야 하는데, 비갱신형 가입자는 만기까지 동일한 보험료를 내기 때문에 기존 갱신형 보험에 가입한 가입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보험료는 더 내고 보장은 적게 받으면서 손실까지 떠안아야해 사실상 소비자간 상대적 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보장이 과하게 높거나 가입이 쉬운 부분은 실상 보험금을 받을 때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높은 진단금에 가입했는데 정작 보험금을 받기 어려운 상품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입열풍이 불었던 치매보험의 경우 경증치매 진단금을 높인 것이 주효했는데, 보험사들이 중증치매 진단 기준을 그대로 약관에 옮기면서 치매정도를 측정하는 CDR척도 1단계 진단 이외에도 MRI, CT 등 영상소견 진단이 반드시 있어야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증치매에 해당하는 CDR 1은 의사의 문진만으로 진단이 가능한데, 보험사들이 중증치매 진단금 지급 기준을 그대로 가져와 경증치매에 붙이면서 사실상 경증치매진단금을 지급받기는 어려운 상태"라며 "약관상 문제로 인해 차후 민원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손보업계는 '스코어링' 제도를 통해 특약을 연결시켜 손해율에 따른 위험을 분산해왔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스코어링을 적용하지 않고 있어 차후 위험률 증가 및 기존 가입자에게 미치는 영향도는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보사들이 출혈경쟁으로 시장을 주도하면서 보장성보험 시장을 빼앗긴 생보사들은 새 시장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저해지 종신보험으로 단순히 납입보험료를 낮춘 것에서 벗어나 가입후 만기까지 유지시 표준형보다 더 많은 환급금을 돌려주는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또한 7년 혹은 20년 등 납입기간까지 유지시 사망보험금과 더불어 기존 납입보험료까지 모두 돌려주는 상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해지하지 않을 경우 이전보다 저렴한 보험료로 더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지만 중도해지시 낸 보험료를 거의 돌려받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생보사들도 기존 대비 적게 받고 많이 주는 구조여서 고객들의 유지율이 높을수록 손실을 보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납입기간까지 유지할 경우 환급금이 137% 혹은 150%이상 상회하는 상품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는 종신보험을 높은 이율의 저축보험처럼 판매하는 것의 연장선상이어서 납입기간이 길고 중간에 해지시 거의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납입 여력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가입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판매자 역시 저축성보험처럼 판매할 경우 차후 민원소지가 많기 때문에 판매경쟁에 치우쳐 이를 간과하지 말고 고객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며 "생·손보 할 것 없이 생존이란 이름으로 과열경쟁으로 치닫고 있어 손해율을 비롯해 차후 소비자 민원 등이 대거 확대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업계 한 전문가는 "보험업계 가장 큰 이슈인 새 국제 회계기준(IFRS17)과 새 건전성기준(K-ICS) 도입으로 보험사들이 기존 상품 및 자산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수정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현재 RBC(지급여력비율) 숫자 맞추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며 "단기간 영업실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경영방침을 세워야 할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