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위축 가능성이 커졌지만 실물경기에 미칠 여파를 더 두고보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한은은 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1.25%로 유지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한은은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이후 넉달째 동결행보를 이어갔다.
이번 결정은 201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한은의 결정과는 다른 것이다. 당시 한은은 전염병이 경기침체 압력을 더 높일 것을 우려해 각각 0.25%포인의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한은은 금리인하 대신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에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통해 5조원을 공급하는 카드를 꺼냈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시중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실행하면 한은이 대출금액의 절반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번에 지원한도를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5조원 늘렸다. 금리인하가 경제전반에 영향을 주는 정책이라면 금융중개지원대출은 핀셋형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금리동결은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의 발언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이 총재는 지난 14일 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내경제 영향을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추가 금리인하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통위 내부에선 조동철·신인석 위원을 중심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도 컸다. 금통위 의견이 집약된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보면 '코로나19'라는 표현이 여섯차례 나온다. 국내경제에 대해서도 '성장세가 약화됐다'고 진단했다.
실제 한은은 이날 2020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1%로 낮췄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1.0%)는 그대로 놔두고 성장률만 손을 댔다. 경기하강 위험을 크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1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열어놨다.
그럼에도 기준금리를 묶어둔 건 한은이 통화정책을 쓸 여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가 역전된 가운데 기준금리를 더 낮추면 자금 해외유출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정책 여력 축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뛴 것도 한은의 금리인하를 주저하게 만든 요인이다. 이 총재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높고, 주택가격 안정을 확신하기 어려워 아직은 금융안정에 유의할 필요성을 함께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동결에도 불구하고 오는 4월 열리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은 남아있다. 한은은 코로나19가 오는 3월 정점에 이른 뒤 점차 진정될 것으로 봤다. 이런 예상과 달리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점을 내비쳤다.
이 총재는 "금통위는 상황변화에 맞춰 항상 적기에 필요한 조치를 다할 준비가 돼있다"며 "코로나19가 어떻게 진행될지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