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대표이사 중 최초로 3연임에 성공했던 이대훈 농협은행장(사진)이 어제(2일) 사퇴의사를 표명해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지난 1월말 새 농협중앙회장이 선출된 뒤 CEO 물갈이가 시작된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미 주총까지 거쳐 임기가 시작된 CEO까지 사임하면서 농협의 '신용-경제사업 분리' 원칙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 경영성과 인정받고 임기 사작했는데 왜?
지난해 12월 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같은달 임기가 종료되는 이대훈 행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이어 농협은행 주총을 열어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대표 중 최초로 3연임이 확정했다.
당시 농협금융 임추위는 "이번 인사에는 그동안의 경영성과를 반영하고 안정적 수익구조 확보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임자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이대훈 농협은행장은 2017년말 취임한 이후 해마다 ‘역대 최대실적’을 갈아치우는 성과를 냈다.
2017년 6521억원 이었던 농협은행의 연간 순익은 2018년 1조2226억원으로 2배 가량 뛰었다. 지난해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순익이 1조5171억원으로 증가했다.
금융환경 변화에도 적극 대처했다. 서울 양재동에 NH디지털혁신캠퍼스를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대훈 행장은 매 주 한차례 NH디지털혁신캠퍼스를 방문하며 농협은행의 디지털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적극적이었다.
주총에서 선임돼 임기를 시작한 이대훈 행장이 사의를 표명한것에 대해 새 중앙회장이 계열사 CEO에 대한 물갈이에 나선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농협은행은 농협금융지주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농협금융지주의 지분 100%는 농협중앙회가 쥐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김병원 전 회장의 임기 종료에 따라 지난 1월31일 이성희 신임 회장을 선출했다.
이대훈 행장 뿐만 아니라 홍재은 농협생명 대표, 최창수 농협손해보험 대표 등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대표들과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비롯한 농협중앙회 계열사 대표들이 동시에 사의를 표명한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는 분석이다.
◇ 금융지주 후보추천위원회는 무용지물?
업계에 따르면 이대훈 행장은 사표가 수리됐고 홍재은 농협생명 대표와 최창수 농협손보 대표의 사표는 반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훈 행장의 사표만 수리된 것은 '직전 김병원 중앙회장 맨'으로 인식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대훈 행장은 2016년 농협은행 서울영업본부장을 지내다 같은해 11월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부행장 등도 지내지 않고 곧장 농협중앙회의 요직을 맡은 셈이다. 이후 2017년 12월 이경섭 농협은행장에 이어 4대 농협은행장으로 취임했다.
이대훈 행장의 이같은 초고속 승진은 경영성과와 함께 김병원 회장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김병원 회장 색깔지우기가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농협 협동조합 한 관계자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취임한 이후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결국 이 물갈이가 시작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광수 농협금융 회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농협의 신경분리(신용-경제사업 분리) 원칙이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농협의 신용(금융) 부문은 금융사로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독립적인 경영이 강조돼 왔다.
실제로 농협금융지주는 차기 CEO를 선임할 때마다 "임원 선임은 후보추천위원회 의지에 따라 이뤄지며 농협중앙회가 인사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