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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이동걸 "혁신요람 부족은 기득권 공고한 탓"

  • 2022.01.03(월) 15:38

[신년사]도입 100년 걸린 조선 대동법 예로 들어
"구조조정, 국가 전체 회수율 제고에 방점"
"거시적 조정자 역할…기업 세대교체 오랜 꿈"

대동법은 투명한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혁신적 제도가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뒤 1708년 전국적인 세법으로 확대될 때까지 무려 10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기득권의 갖가지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중략) 그래도 개혁은 이루어졌습니다. 김육(金堉) 같은 소신 있는 경제 관료들이 오랜 세월, 정치생명을 걸고 사심 없이, 신념을 지켜 이룩한 결과였습니다.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 길을 뚜벅뚜벅 걸어갑시다. (중략) 구조조정은 끝나지 않을 숙제입니다. 지금 같은 전환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한계기업이 나올지도 모릅니다.원칙을 준수하여, 새로운 관행이 되게 합시다. 시장은 물론, 지역사회와 노조, 그리고 언론이 그 원칙을 이해하고 기대하도록 합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오늘날 정책금융 역할을 약 400년 전 조선시대에 대동법(大同法)을 도입하던 개혁에 빗댔다. 3일 내놓은 2022년 신년사에서다. 그는 조선시대 대동법 도입에 100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 "기득권의 갖가지 반대 때문"이었다며, 우리 경제의 규모에 비해 혁신이 부족한 것도 "기득권 중심 경제체제가 공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정책금융은 산업자금 공급에서 기업의 세대교체로, 더 나아가 시장참여자들 간 협력게임(Positive Sum Game)을 유도하고 촉진하는 거시적 조정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민간금융은 여전히 눈앞의 이익에 목말라 한다. 기업의 세대교체는 저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고도 했다.

다음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신년사 전문.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2년, 산은의 정책금융은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책금융은 중요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경제 규모는 급속히 커졌지만 혁신의 요람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성장곡선이 완만해진 탓도 있겠지만, 기득권 중심 경제체제가 공고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책금융은 산업자금 공급에서 기업의 세대교체로, 더 나아가 시장참여자들 간 협력게임(Positive Sum Game)을 유도하고 촉진하는 거시적 조정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지난 4년(취임 후), 우리는 축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1년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녹색금융 아어젠더(Agenda)를 확장, 선도했고 가보지 못한 혁신금융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탄소금융 표준모델이 된 '탄소스프레드', 18조 원 규모의 '산업·금융협력프로그램', '신산업심사체계’와 ‘데이터담보대출' 등 금융의 지평(地平)을 넓혔습니다.

대우건설의 성공적 매각은 KDB인베스트먼트의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산은이 추진해 온 시장 중심 구조조정이 그 첫 번째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조직문화도 변하고 있습니다. 부서별로 리소스(Resource) 일부를 투입하여 작년에만 117건의 혁신이 시도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계산된 도전’이 빛난 한 해였습니다.

산은 가족 여러분. 올해, 우리는 전환기 정책금융의 시대적 소명을 다해나가야 합니다. 오늘 저는, 조선시대 대표적 경제 개혁인 대동법(大同法)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대동법은 소유한 땅 크기에 따라 쌀로 세금을 부과하는 표준화된 세제였습니다.

특산물로 과세하던 기존 방식은 나라가 필요 품목과 물량을 미리 정해 지역별로 임의 배정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지역 소출 상황을 무시한 과세제도는 물건을 대납하고 폭리를 취하는 폐단을 낳았습니다. 백성은 가난해졌고, 재정의 누수도 커졌습니다. 

대동법은 투명한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혁신적 제도가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뒤 1708년 전국적인 세법으로 확대될 때까지 무려 10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기득권의 갖가지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물건(특산물)으로 세금을 바치는 것이 백성의 충성심이라 여긴 낡은 관념도 문제였습니다.

인식(Mindset) 전환에 꼬박 한 세기가 걸렸습니다. 대동법의 정착이, 화폐경제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싹을 틔우게 했다는 점에서 이 기간이 앞당겨졌더라면 조선의 역사도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개혁은 이루어졌습니다. 김육(金堉, 1580~1658, 경제 정책에 식견을 가진 조선 중기 문신으로, 조선왕조실록은 그를 "강인하고 단정·정확하고 일을 당하면 할말을 다하는" 곧은 품행의 소유자로 평가하고 있음) 같은 소신 있는 경제 관료들이 오랜 세월, 정치생명을 걸고 사심 없이, 신념을 지켜 이룩한 결과였습니다.

혁신은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힘을 모으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혁신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올해 여러분과 한마음으로 기업의 세대교체와 산업 전환, 우리가 추구하는 혁신을 위한 걸음을 재촉하겠습니다. 2022년 열쇳말(Keyword)을 셋으로 압축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안정감과 연속성, 둘째 내부 쇄신, 셋째 연대와 협력입니다.

먼저, 「안정감과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 길을 뚜벅뚜벅 걸어갑시다. 비전과 KDB 웨이(Way)는, 그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혁신성장과 산업재편 등 잘해온 것은 더 잘해서 정착시킵시다. 탄소금융과 신산업금융 등 새로운 것은 그 기반을 건실히 닦아 지속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갑시다. 구조조정은 끝나지 않을 숙제입니다. 지금 같은 전환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한계기업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원칙을 준수하여, 새로운 관행이 되게 합시다. 시장은 물론, 지역사회와 노조, 그리고 언론이 그 원칙을 이해하고 기대하도록 합시다. 국가 전체의 회수율 제고에 방점을 두어야 합니다.

금융은 길게 보며 해야 합니다. 인내자본 공급, 더욱 확대합시다. 오래 지속될 관계 형성도 중요합니다. 키워주니 도망간다면, 모두 헛일입니다.

혁신금융부문은 누구보다 먼저 미래로 달려가야 합니다. 새 얼굴을 발굴하고, 점프업(Jump-up, 도약) 시켜야 합니다. 중소·중견금융부문은 뿌리산업 강화에 앞장서 주십시오. 서플라이체인(Supply Chain, 공급망) 재편과 경쟁력이 경제의 힘입니다.

기업금융부문은 산업지형을 크게 그려야 합니다. 대기업과 함께, 새로운 기간 산업을 키워내십시오. 산은의 특기인 일관된 종합금융지원은 자본시장부문의 IB(투자은행) 역량을 통해 보완·완성됩니다. 아낌없는 협업과 선제적 지원을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내부 쇄신」입니다. 쇄신은 바꾸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쇄신입니다. 미래에 집중하십시오. 과거의 끈은 자연히 희미해질 것입니다.

신규 비즈니스를 추진할 때는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 일이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인지 그리고 우리가 감당 가능한 리스크인지, 그 답이 모두 예스(Yes)라면, 우리는 성공할 것입니다.

탄소금융 모델의 두 축은 녹색 금융상품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 관리체계입니다.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 고도화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인재 양성은 쇄신의 출발입니다. 조직문화가 훌륭하면 인재가 모입니다. 우리 문화는 아직 딱딱합니다. 바꿔야 합니다. 공공기관 한계를 뛰어넘어 내부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프로토콜(Protocol)에만 얽매이지 않는 조직, 일 잘하면, 성장의 기회를 주는 조직, 희망 없는 답습이 아닌 차별화를 추구하는 조직, 이것이 일하고 싶은 직장, 산은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인사관리의 핵심은 동기 부여입니다. 더 많은 젊은 리더들을 키워냅시다. 국제금융, M&A(인수합병) 전문가가 늘어나야 합니다. 기획력과 영업력을 고루 갖춘 전문가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연대와 협력」입니다. 탄소금융 등 산업 전환은 혼자 해낼 수 없습니다. 수십조 원 이상의 인내자본 조성을 주도할 리더십 있는 경제주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글로벌 규준 마련에 동참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도 강화해야 합니다. 프랑크푸르트 지점, 유럽 벤처 데스크(Desk) 등 탄소금융 선진 지역에 거점을 확보하고 동남아 지역 전반에 KDB 네트워크(Network)를 확충하여 글로벌 리더십(Global Leadership)을 갖춰나갑시다.

친애하는 임직원 여러분 혁신은 중대하고 시급합니다. 그러나 동행(同行)이 수반되지 않은 그릇된 혁신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67년간 발전한 것은 국책은행이어서가 아닙니다. 시장과 기업, 그리고 동료와의 동행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굿 어스(The Good Earth)'로 노벨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 펄 벅(Pearl S. Buck)은 한국에서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한 농부가 소에게만 볏단을 지우지 않고 자신의 지게에도 함께 진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펄 벅이 그 이유를 묻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소도 종일 힘들었으니, 짐을 나누어져야지요.” 경영진도 농부처럼 함께 짐을 지겠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이 단기적 이익에 집착할 때 삶을 얼마나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위기는 지나갔지만, 후유증은 여전합니다. 민간금융은 여전히 눈앞의 이익에 목말라 합니다. 산은의 존재가 오늘날 빛나는 이유입니다. 기업의 세대교체는 저의 오랜 꿈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와 인연을 맺은 회사들이 후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여 한국의 정책금융이 글로벌시장의 주목을 받고 산은이 ‘위대한 은행’으로 존경받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산은도, 혁신도, 그리고 로마도. Rome was not built in a day.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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