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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KB국민은행 '9 TO 6' 지점, 직접 가보니

  • 2022.04.08(금) 06:50

국민은행 9 TO 6 지점 전국 72개 오픈
"은행 방문시간 제약 낮아져 좋아" 고객 호평
직원 워라밸도 동시에 챙겨…상호 윈윈 평가

은행 업무를 봐야 할 일이 있으면 늘 점심을 건너뛰어야 했다. 은행 업무를 보려면 오후 3시 30분까지는 영업점에 방문해야 했는데, 점심시간이 아니면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다. 

대출이나 금융투자상품 가입 같이 상담이 필요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를 볼때면 어쩔 수 없이 오후 반차를 내야 하기도 했다.

아무리 모바일 뱅킹을 통해 비대면으로 다양한 금융상품 가입이 가능해졌다지만 여전히 은행 영업점 직원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큰 안도감을 느끼게 해준다. 큰돈이 오고가는 업무기 때문에 특히나 그러했다.

과거에는 왜 은행은 4시면 문을 닫는지 궁금했다. 돌아온 답은 은행원들의 업무는 '문을 닫고난 이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당일 혹은 미뤄진 고객들의 서비스 사후처리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원들의 퇴근시간은 오후 8시나 9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올해 KB국민은행이 과감한 시도에 나섰다. 은행 영업점을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다. 고객 입장에서야 오후 4시 마감이라는 압박이 줄어드니 환영할 만한 일이겠다 싶었다.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들었다. 직원들은 어떨까? 오후 6시에 대고객 업무를 마감하면 저녁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KB국민은행 '9 TO 6' 지점 몇 곳을 찾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하는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전경. 입구 앞에는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오후 4시, 은행을 가다

KB국민은행 종로중앙종합금융센터를 찾은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인 오후 4시였다. 은행을 들어가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였다. 하지만 은행 객장은 이 시간이 무색하게도 '영업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문이 닫혀 은행 객장 앞 ATM기만 이용할 수 있는 시간대다. 

그렇게 은행 객장안으로 들어왔는데 뒤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회사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은행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 했다. 그가 업무를 끝내기를 기다린 후 그 회사원에게 취재 목적을 밝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행이 4시 이후에 문을 여니 어떠시냐고. 

그의 대답은 "몰랐다"였다. 은행이 4시 이후까지 문을 열 거라고 생각을 못해 급하게 사무실에서 뛰어왔다고 했다. 그에게 이 지점은 오후 6시까지 영업하는 지점이라고 설명하니 "근처 회사원들에게는 참 좋은 서비스 같다"며 "괜히 뛰어왔다"며 뒤늦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객장에는 한 노신사 분이 앉아 있었다. 이 고객은 외국에서 혼자 살고 있는 자녀를 위해 송금할 돈이 있어 은행을 찾았다고 했다. 아차 싶어 늦은 시간 은행을 찾았는데 문이 열려 있어 다행이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같은 나이먹은 사람은 직접 은행에 찾아와 은행업무를 보는게 익숙하다"며 "오늘 꼭 송금했어야 했는데 은행 문이 열려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객장 전경.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여전히 영업중이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KB국민은행은 왜 6시까지 영업 하기로 했을까

사실 KB국민은행은 일찌감치 이러한 시도를 시작했다. 종전에는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7시에 문을 닫는 지점을 몇군데 설치해 운영했는데 생각보다 고객의 호응이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후 7시까지 영업을 하기에는 직원들의 저녁시간도 보장해줘야 했다. 이를 조율한 게 '9 TO 6 지점'의 시작이다.

이 시도는 올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종전에는 20개가량 지점에서 한정적으로 운영하다가 지난달 이를 전국 72개로 늘렸다. 앞으로도 더욱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취임한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의 첫 역점사업이다. '영업통' 출신인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은행의 비대면 거래가 아무리 늘어나도 대면 고객의 접점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6시까지 문을 여는 것은 좋은 서비스다. 하지만 이를 응대해야 하는 직원들은 어떨까? 오후 6시에 객장의 문을 닫으면 그 이후 쌓여있는 업무에 직원들의 삶에서 저녁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까?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객장. 9 TO 6 지점 방침에 따라 오후 4시 이후 오전조의 경우 대고객 영업은 오후반에게 맡기고 남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있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이를 해결하기 위해 KB국민은행은 '9 TO 6 지점'을 확대하기 전 해당지점에 출근하는 직원들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운영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오전반의 경우 아침 9시까지 출근하는 직원들은 오후 4시까지 업무를 본다. 오후반의 경우 오전 11시까지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업무를 보는 방식이다. 

KB국민은행은 특히 '9 TO 6 지점'의 문을 열기전 해당지점 근무를 지원하고 오후반 근무를 선택하는 직원들이 일정기간 근무를 하면 향후 인사때 원하는 지점에 우선 배치해주는 것과 같은 인센티브를 걸었다. 그렇게 자원자들로 '오후반'을 모아 72개 지점을 열 수 있었다.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에서 오후반으로 근무하는 김은정 대리가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오히려 워라밸 지켜주는 9 TO 6 지점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은정 대리를 만났다. 그에게 워라밸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만족한다' 였다.

김은정 대리는 "아이가 있는 직원의 경우 아침에 아이들을 충분히 케어한 이후 출근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돼 오히려 반응이 좋다"며 "아이가 없더라도 아침시간을 활용하기 좋아하는 직원들도 있다. 직원들이 각자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해가 진 이후 야근을 걱정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KB국민은행은 전 영업점 지점에 PC OFF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정시간 근무시간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PC가 꺼지는 시스템이다. 은행의 경우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지정된 PC가 아니면 업무를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출근 이후 업무 집중도가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야근이 강제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해당된 시간안에 업무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업무 집중도가 올라간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김은정 대리는 "투자, 대출 등은 영업점이 문을 닫고나서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지정된 시간 이상 근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업무집중도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며 "우려하는 저녁 없는 삶은 아직까지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 지점은 주변에 직장인과 소상공인이 많다는 특성이 있어 영업시간이 길수록 고객에게는 편리한 측면이 있다. 이에 고객 호응도 좋다"며 "고객과 직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은행 객장 문을 닫을때까지 은행 근처에서 찾아오는 고객들을 유심히 살폈다. 평소 이 시간대에는 은행 객장 문이 닫혀있는 만큼 ATM기를 활용하는 고객이 많은 시간이다. 하지만 하나 둘 객장으로 들어가 은행 업무를 보는 고객도 많았다. KB국민은행이 대면 은행 영업에 대한 고객 니즈를 정확히 짚은 셈이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단축영업을 하고 있어 오후 5시30분에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의 문은 닫혔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고객이 영업점을 찾아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객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이제 막 한달째에 접어든 KB국민은행의 '9 TO 6 지점'. 시작은 고객과 직원 모두의 호응을 얻고 있지만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들도 여전하다.

한 회사원은 "이왕 할 꺼면 6시 이후에도 영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오후 6시는 아직 퇴근 전이기 때문에 어찌됐든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서는 회사의 눈치가 보인다는 얘기다.

또 다른 고객은 "이런 지점이 시내에만 몰려있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주택가 인근이나 시장 인근 지점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이런 곳에 영업시간이 긴 영업점을 우선 배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유다. 실제 KB국민은행이 9 TO 6지점을 전국 72개 지점으로 늘리기는 했지만 주로 오피스 타운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차후 고객이 몰릴 경우 직원들의 '저녁' 역시 지금과 다른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현재 금융투자상품 가입, 가계대출은 금융소비자보호법 도입과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현재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는 대출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방안을 고심중이다.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을 찾는 고객은 더욱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고객증가는 회사 입장에서는 좋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업무량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KB국민은행에게는 앞으로 대고객 서비스 질의 향상과 직원들의 삶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이러한 과제를 '9 TO 6 지점'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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