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지난 상반기 역대급 이익을 낸 자동차보험을 두고 "영업실적에 부합하는 보험료 조정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범정부적 조치로 손해율(보험료 대비 보험금 비율)이 떨어져 올 상반기 손해보험사들의 영업손익과 당기손익이 역대 최대 기록을 다시 쓴 만큼, 보험료를 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보업계에선 벌써 반발이다. 지난 10년간 누적적자가 6조3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반기 실적만 보고 보험료 인하를 미리 논하는 건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보험가격 자율화가 이뤄진 지 오래지만 금융당국이 여전히 가격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5일 내놓은 '2022년 상반기 자동차보험 사업실적 및 향후 감독방향'에 따르면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이후에도 자동차 사고율은 하락하고 있다. 코로나가 본격 확산한 2020년 15.5%, 2021년 15.2%를 기록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올해 상반기 14.3%(잠정)로 사고율이 개선된 것이다.
사고율이 좋아지면서 올 상반기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77.1%를 기록했다. 2017년(77.8%) 이후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큰 폭의 영업이익을 낸 전년 동기 79.4%와 비교해도 2.3%포인트 하락했다. 사업운영비를 고려해 업계가 주장하는 적정손해율인 78~83% 범위도 밑돈다.
사고율 감소로 손해액이 줄어든 반면 보험가입 대수 증가로 보험료 수입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금감원은 분석했다.
이에 힘입어 상반기 자동차보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4137억원 대비 51.4% 증가한 6264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투자손익을 더한 자동차보험 당기손익은 9682억원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원수보험료 기준 시장점유율(MS)이 28.7%로 가장 큰 삼성화재는 가장 많은 214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금융당국은 "보험료 인하 여력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양호한 실적에 더해 차 사고 감소를 위한 강도 높은 범정부적 대책 추진으로 손해율 안정화 여건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지난달 수도권 집중호우로 자동차보험 손해액이 크게 확대됐다는 업계의 주장이 있었지만 금감원은 "연간 손해율 상승은 0.2%포인트에 그친다"며 선을 그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집중호우에 따른 자동차보험 피해액은 1416억원이지만, 재보험 가입 효과로 손보사 손해액은 400억원이다.
손보사들은 이 같은 당국의 보험료 인하 공식화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영업손익 흑자를 본 해가 2017년(266억원)과 2021년(3981억원)밖에 없고, 누적적자만 6조2824억원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손보사 한 관계자는 "자동차 보험은 그동안 누적된 적자에 여전히 부실이 쌓여 있다"며 "겨울철 빙판·폭설 등 하반기 손해율이 높은 특성을 보이는데, 당국이 보험료 조정을 벌써 시사하는 건 신중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차보험 손해율 좋다"는 삼성화재, 보험료 인하엔 "…"(8월11일)
손보업계는 금융당국 압박에 따른 보험료 일괄 조정 뒤 공정거래위원회가 보험사들에게 담합 혐의를 씌워온 것도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손보사 다른 관계자는 "2015년 보험가격 자율화가 시행된 이후로도 공정위와 금감원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며 "금융당국이 (보험료 인하를) 밀어붙이면 이를 거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