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투(夏鬪)의 계절이 왔다. 이 시기 대한민국 노사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하투의 계절이 돌아오면 한국 산업은 늘 패닉에 빠진다. 파업 때문이다. 이제 노조에게 파업은 연례행사다. 사측에게는 매년 겪는 홍역이다. 문제는 파업이 단순히 노사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청년실업 문제와 맞물리면서 세대 갈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노사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파업이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와 영향,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위한 다양한 사례와 의견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변속기 라인에서 1년 넘게 근무중인 김정길(33세·가명)씨는 촉탁직이다. 흔히 말하는 ‘비정규직’이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현대차 노조가 일하는 것에 비해 연봉을 많이 받는 것을 알았다. 김 씨는 "우리 라인에서 정규직은 30명정도 되는데 한 시간 일하면 한 시간 쉬는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며 "그들이 일하는 것에 비해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또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것은 누가봐도 납득할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무시할수 없는 갈등의 원인
지금 한국사회의 노사문제는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단순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노동시장이 고용주와 피고용자를 기본축으로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자와 실업자, 기존노동자와 예비노동자, 나아가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갈등도 녹아있다.
성장기에는 각자가 나눠갖는 몫도 늘어난다. 다만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경제발전이 정체를 보인다면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성과물을 차지하지 못하는 부류가 생기고 이들이 자기몫을 빼앗겼다고 느낀다면 이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배경도, 미국의 차기대선주자들이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경향도 멀리 원인을 따라가 보면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기업 노조들의 파업에 대해 청년 세대는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연례 행사처럼 진행하는 파업이 결국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다.
지난해 5월 한 청년단체의 설문조사(청년 500명 대상)에 따르면 청년의 63.9%는 ‘양대 노조가 청년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또 고용 세습 등 기득권 챙기기(37.7%), 파업 투쟁 중심으로 노사 간 타협과 양보 실종(31.8%)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갈수록 심각한 청년 실업률
아버지 세대가 임금인상을 요구할 때 청년 세대는 끝없이 치솟는 실업률에 절망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때나 유럽발 금융위기때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다.
‘단군 이래 최대 실업난’이라는 지금 시점에 아버지 세대가 '청년고용을 늘리자', '함께 고통 분담을 하자'는 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년 연장, 임금 인상에만 혈안된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청년들은 또 한번 절망한다.
청년 세대의 취업에 대한 시름은 지난 10년간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지난 2006년 청년 실업률은 7.9%을 기록한 이후 그 언저리를 맴돌다가 2014년에는 전년대비 1%포인트 오른 9%를 기록했다.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상승해오던 청년 실업률은 급기야 지난달에 10.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성 세대가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자신의 배를 불릴 때 취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에 의존하는 청년들은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10년간 시간당 최저임금 변화를 살펴보면 2007년 3480원에서 최소 110원, 최대 450원 오르는데 그쳤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홍가영(30세·가명)씨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현대차 노조 파업에 대해 반감이 덜한 편이지만 취업준비를 하는 주위 친구들의 경우 ‘기득권 노조’라면서 반감이 상당하다”면서 “청년실업 해소에 관한 것은 없고 자기들 더 달라는 얘기인데 우리 세대가 좋게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 세대간 불화..정부역할 중요
매년 임금협상을 통해 현대차 노조는 평균 9만원대 기본급을 인상하고 있다. 현대차 기본급 인상분과 시간당 최저임금 기준 월급 인상액을 비교하면 청년들의 박탈감은 더 커진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현대차 직원의 기본급 인상분이 최저 임금과 월 5만원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들은 기본급외에 수당과 인센티브를 더 받는 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려 한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하긴 힘들다.
이런 기성 세대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며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청년 단체도 있다. 청년대학생연합 관계자는 “매년 임금인상을 습관처럼 요구하는 행위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본다”며 “청년실업률이 날로 높아지고 대외환경도 안좋은 현재상황에서 그들은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간 갈등의 불씨는 제 역할을 못한 정부 탓이 크다"며 "제조업 중심에서 탈 제조업 사회로 일자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양쪽을 다 몰아붙이기 보다 '일거리'를 만들어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