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노트5 중고폰 사신다고 하셨죠? 저는 강원도 OO에 살고 있어서 직거래는 어려울 것 같은데 택배로 거래하시죠. 이 계좌번호로 입금해 주시면 물건 보내 드리겠습니다.'
'첫 거래부터 장난질이냐. 너는 핸드폰도 없으면서 허위로 매물을 올렸고, 직거래를 피하려고 구매자와 먼 곳에 산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리고 입금을 하면 잠적하겠지. 사기 게시글로 30일간 활동을 정지한다.'
▲ 서정원 큐딜리온(중고나라) 사원 |
지난달 31일 부산 다대포의 한 아파트. 영화 '타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이 곳에서 재택 근무하는 국내 최대 중고거래장터 '중고나라'를 운영하는 큐딜리온 서정원 사원의 눈빛은 영화 속 '아귀'의 그것과 같다. 그는 글을 올린 게시자를 찾고 활동정지 버튼을 클릭한다. 사기 거래로 의심되는 회원은 그의 눈을 피할 길이 없다.
하루 평균 100건 이상의 사기 게시글을 찾아낸다는 서정원 사원은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자동 휠체어가 아니면 혼자서는 이동이 어렵다. 선천적으로 체내에 근육이 빠지는 ‘근육병’을 앓고 있어서다. 다행히 팔은 움직일 수 있어 밥을 먹거나 컴퓨터 모니터링 등의 업무는 가능하다.
작년 3월 큐딜리온에 커뮤니티 관리 및 운영 업무 담당자로 채용됐다. 장애인에게는 너무 멀어 보였던 정규직이다. 그 동안 가족과 사회의 보살핌이 없다면 생활이 어려웠던 그다. 하지만 이제 가족에게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고, 사회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도울 일을 찾을 수 있는 진정한 구성원으로서 나아가고 있다.
◇ ‘나 혼자 산다’를 꿈꾸다
큐딜리온 입사 전까지 서정원 사원에게도 정규직 취업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사회복지공무원을 목표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지만 비장애인보다 2~3배 이상 걸리는 출퇴근 시간과 신체 활동이 많은 업무 특성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주어졌던 것은 저작권 센터에 10개월 단기계약직으로 채용, P2P 사이트에 올라오는 영화나 TV프로그램 파일을 찾아 불법 다운로드를 막는 일이었다.
모니터링 업무의 세세한 부분을 알지 못한 입장에서 저작권 센터 업무와 지금의 일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큐딜리온에서도 사기 거래 및 판매 금지 물품 거래를 시도하는 회원들을 찾아내 미연에 거래를 막는 일을 하고 있어서다.
서 사원은 둘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했다. 큐딜리온 입사 전 업무는 ‘지루’했고, 고용상태는 ‘불안’했다면 지금은 ‘다이나믹’하고 고용안정을 넘어 ‘욕심이 생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서정원 큐딜리온(중고나라) 사원은 지체장애 1급이지만 지난해 3월 정규직으로 채용돼 사기 게시글과 회원들의 문의내용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
서정원 사원은 “저작권센터 업무는 불법 다운로드 파일을 찾으면 신고하는 단순 반복 업무였고, 10개월 계약직이다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며 “계약이 끝난 이후엔 돈벌이가 없다는 생각에 월급을 받아도 제대로 쓰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중고나라에선 사기와 판매 불가 제품 거래를 막는 것 뿐 아니라 회원들의 문의사항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소통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며 “월급도 내가 일한 것 이상으로 받는 것 같아 회사에 좀 더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업무능력을 키우고, 새로운 일에도 도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그의 삶은 한 층 여유로워졌다. 주말에는 가족과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며 여가를 즐긴다. 또 일가친척의 경조사가 생겼을 때 크진 않지만 보탬이 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갖추고 있음이 뿌듯하다.
이제는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나 혼자 만의 생활을 꿈꾼다. 신체 활동에 있어 어려움은 여전한 까닭에 장애인에 대한 처우 개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 언젠가는 장애인을 위한 활동에도 동참해볼 요량이다.
서 사원은 “개인적 꿈이 있다면 자립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장애인의 자립은 경제적 능력 뿐 아니라 사회적 여건 변화도 필요한 부분”이라며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 됐는데 장애 등급에 따른 활동 보조 서비스 등이 제한적이라 지금은 자립이 어렵다. 이런 부분이 개선된다면 언젠가는 혼자만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 “장애인 채용? 일단 한 번 뽑아보세요”
큐딜리온에는 서정원 사원을 포함해 4명의 장애인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 1년 동안 적발한 사기 및 판매불가 상품 거래만 10만건에 달한다.
특히 이들은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비장애인보다 높은 집중력과 성실함으로 기대 이상의 업무 성과를 만들었다. 이승우 큐딜리온 대표도 ‘물음표’였던 장애인 채용이 ‘느낌표’로 바뀌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승우 대표는 “장애인 권익 보호 관련 일을 하는 지인에게서 업무 이해도가 높은 장애인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고, 큰 기대보단 단순 업무 영역에서 꾸준하게 일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채용을 결정했다”며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보여준 업무 성과에 우리도 놀랐고, 단순 업무라 여겼던 부분을 다양한 사고를 통해 그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영역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은 이 대표에게 장애인 채용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큐딜리온의 또 다른 사업인 주마(자원 재활용) 서비스에 있어 주요 업무 중 하나인 고물(헌책, 헌옷, 폐가전 등) 수거와 결제, 운송 영역에 장애인 채용을 검토 중이다.
▲ 이승우 큐딜리온 대표(사진)는 지난해 채용한 장애인 직원 4명의 업무성과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내며 향후 추가 채용 계획도 밝혔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장애인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 인재확보는 물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이명근 기자/qwe123@) |
이 대표는 장애인 채용을 기업 성장의 핵심인 인재 확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후 장애인들이 업무에 적응하고 사회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한다면 자연스레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이승우 대표는 “업무성과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아니라 개인 역량에 달린 것으로 ‘실력 있는 인재라면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뽑는다’는 게 큐딜리온의 채용 원칙”이라며 “채용 이후에는 장애인들이 지속적으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새로운 직무를 개발하고 인사이동을 통한 기회를 제공하면 장애인 채용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고용 창출은 기업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책임 중 하나인데 채용 범위가 장애인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기업은 지탄받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 중심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