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요?"-전송옥 선생님
"남자친구가 한국인이예요. 한국말을 배우려고 한인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올 겨울에는 한국에도 갈 거예요." -리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진행되는 세이글로벌의 화상 한국어 강의 프로그램에서 미국인 대학생 리지와 튜터(개인지도교사) 전송옥씨가 나눈 대화다.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다루는 전송옥씨는 올해로 만 59세인 세이글로벌 소속 시니어튜터다.
전 씨가 또 다른 문자메시지 한통을 보여준다. 베트남인 학생과 잡은 화상 한국어 교육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자다. 메시지에 나타나는 링크를 터치하면 화상 통화 화면이 뜨고 여기서 수업이 진행된다. 이렇게 진행한 수업시간 수에 따라 매달 수업료가 정산·지급된다.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기만 하고 몰랐는데 써보니까 좋더라고. 주변에서는 스마트폰도 잘 만지고, 외국 대학생들 가르친다고 하니까 대단하게들 보고…(웃음) 자부심도 많이 느껴요. 외국인 학생들이랑 대화하면서 매스컴에서만 보던 한류 같은 것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젊어지는 것 같아요. 수업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작년부터 세이글로벌에서 튜터 일을 시작한 전송옥씨는 젊은시절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지만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뒀다. 자녀들을 키우고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 10년전 한국어교사자격증을 땄다. 그 뒤 서울가톨릭재단에서 다시 교단에 선 것이 올해로 8년째. 전송옥씨의 이런 노력을 잘아는 친구가 서울 용산노인복지관에서 관련 소식을 듣고 전 씨에게 세이글로벌을 추천했다.
세이글로벌은 시니어튜터를 선발·양성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과 연결해주는 화상강의 업체다. 수업은 교실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해온 전송옥씨에게 스마트폰을 통한 강의는 그 자체로 새로운 도전이자 활력이 됐다. 세이글로벌에서 일하는 시니어튜터들은 평균 연령이 60세를 웃돈다. 내년이면 만으로 60세인 전 씨지만 세이글로벌에서는 막내뻘이다. 전 씨는 세이글로벌에 "일대일 화상교육을 넘어 여러명이 함께 하는 다대다 교육이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주문하는 등 교육내용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서울가톨릭재단에서 하는 월·수·금 교실 수업과 세이글로벌 모바일 수업을 병행하는 전송옥씨는 세이글로벌 수업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세이글로벌 선생님들이 원하는 것은 수업이 많아지는 것"이라며 "몸이 힘들어져 교실수업은 풀타임이 어렵지만 세이글로벌은 부담이 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는 것이 삶의 활력소가 돼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연정 세이글로벌 공동대표는 전송옥씨와 같은 시니어튜터들의 열정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 전송옥씨(왼쪽)와 조연정대표. |
"지금은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정착이 되면 서비스를 세계로 확장할 거예요. 플랜이 거창하죠.(웃음)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걱정이 많으셨어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건 카톡이나 전화 정도여서 무언가를 새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 불안하셨던 거죠. 그런데 배우고나서는 화상전화를 많이 활용하세요. 저희가 진행하는 여러 트레이닝중에 반응도 가장 좋고요. 보람을 많이 느끼죠."
세이글로벌이 설립된 건 2년전이다. 지금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공동창업자 조용민씨가 서울 용산노인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복지관에서 만난 시니어들의 교육활동을 눈여겨 본 조용민씨가 이들의 경험과 지식을 살려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해 시작됐다.
그렇게 한명한명 설득하면서 시작한 것이 입소문을 거쳐 지금의 세이글로벌이 됐다. 세이글로벌에는 현재 30여명의 시니어튜터가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정식 교사 출신이 절반을 넘는다. 용산노인복지관에는 교장선생님 등으로 은퇴한 뒤 문화교육프로그램 봉사활동을 하던 시니어들이 많았다.
세이글로벌의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지만, 홈페이지 구축을 완료하고 유료회원이 생겨나는 등 구체적인 성과가 쌓이기 시작했다. 다른 화상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과 비교해 교육경력이 많은 시니어튜터들을 확보한 것이 큰 장점이 됐다. 한국이 좋아서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원하는 한국의 문화, 역사 등 다방면에서 지식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시니어튜터들은 더 강한 체력이 필요한 교실 수업에 비해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화상교육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조연정 대표는 세이글로벌이 초반 서비스를 안착시키기까지 유한킴벌리의 도움이 컸다고 전했다. 세이글로벌은 유한킴벌리가 시니어산업 육성 차원에서 진행하는 '액티브시니어 생활용품 사업 공모전'에서 선발된 32개 소기업 가운데 하나다.
▲ 기업명에서 세이(SAY)는 시니어와 청년(Senior And Youth)을 뜻하기도 한다. 세대와 문화를 넘어 소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세이글로벌의 철학이자 목표다. |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많이 알아봤지만 신청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서포트 해주지 못해서요. 정해놓은 선에 저희가 맞춰야 하고 증빙이라든지 행정적으로 챙겨야할 것도 많았거든요. 그러다 유한킴벌리에서 시니어사업 공모전을 알게 됐고, '이거다!' 싶어서 바로 지원했죠. 선정이 안됐다면 여기까지 못왔을 거예요."
유한킴벌리가 사회적책임 프로그램중 하나로 2012년부터 '함께일하는재단'과 시작한 '시니어산업 소기업 육성 프로젝트'다. 현재까지 32곳이 선발돼 300개 이상의 시니어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세이글로벌은 이들 32개 소기업중에서도 가장 초기단계 수준의 스타트업이었다. 아이디어 수준의 상태에서 유한킴벌리의 컨설팅과 자금지원을 받으면서 서비스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했다.
유한킴벌리는 공모전에서 최종 선발된 소기업에 ▲브랜드·기술개발 등 R&D 지원 ▲특허출원 등 인증취득 비용 지원 ▲기계·장비임대 등에 대한 사업비 기업당 최대 7000만원 지원 ▲ '유한킴벌리 액티브시니어 기금'을 통한 비즈니스컨설팅 지원 등을 진행하고 있다.
조연정 대표는 특히 사업 초기단계 기업들이 어려워하는 홍보·마케팅 분야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한킴벌리에서 지원받는 다른 31개사와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32개 기업들이 모두 시니어 관련 사업을 하고 있어 시너지 효과도 크다. 실제로 세이글로벌은 이 네트워크를 통해 올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스튜디오 블랙'에 사무실을 얻고 교재 제작, 홈페이지 구축 등을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세이글로벌은 올해말까지 홈페이지를 비롯해 화상교육 서비스 기능을 안정화하고 강의에 활용할 커리큘럼을 추가로 개발해낸다는 계획이다. 현재 100명 수준의 등록회원도 미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늘려나간다는 목표다. 조연정 대표는 "선생님들은 더 많은 수업을 원하는데 아직 학생 수가 모자란다. 올해는 학생 모집에 가장 집중할 것"이라며 "교육 수요를 창출해내 시니어튜터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