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사장을 전면에 내세운 세대교체형 인사로 주목을 받은 삼성전자가 부사장 이하 임원인사에선 변화 대신 안정을 택했다.
승진규모는 컸지만 깜짝 인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총수 공백 상태에서 전면적인 물갈이 인사가 단행될 경우 업무공백과 혼선이 생길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과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은 흔들림이 없었다.
◇ 파격은 없었다…'평균 54.1세' 한살 젊을 뿐
삼성전자는 16일 총 221명을 승진하는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인사규모로는 2013년말 이뤄진 227명 이후 4년만에 최대다. 이번 인사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4년 이후 현상유지에 무게를 두며 인사폭을 최소화했던 그간의 공식을 깬 것이다. 승진적체로 조직 내 피로감이 쌓이고 의욕이 떨어진다는 불만을 잠재우는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권오현 부회장을 필두로 윤부근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신종균 IT·모바일(IM)부문 사장 등 60대 경영진이 퇴임한 뒤 각 부문장과 사장들을 50대로 채우며 세대교체에 나섰던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선 파격 대신 고른 인재등용을 앞세웠다.
이돈태 디자인경영센터 부센터장과 안덕호 DS부문 법무지원팀장 등 40대에서 부사장 승진자가 나왔지만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었다. 현재 DS부문장을 맡고 있는 김기남 사장이 40대에 부사장을 달았고, 김현석 CE부문장과 고동진 IM부문장은 딱 50세가 되던 2011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부사장 승진자의 평균연령은 54.1세로 기존 부사장들 나이대(평균 55.6세)보다 한 살 가량 젊은 수준에 그쳤다.
오히려 1958년생인 이명진 IR그룹장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나이보다는 경력과 대외적 네트워크를 인정해 승진자를 결정한 게 눈에 띈다. 신임 이 부사장 외에도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인 김원경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임 김 부사장은 외교통상부 주미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다가 2012년 삼성전자에 합류한 인물이다.
◇ 조직안정에 무게…반도체는 훨훨 날아
실제 삼성전자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세대교체'라는 단어를 쏙 뺐다. 지난 2일 사장단 인사 때만 해도 보도자료 첫줄에 등장한 단어가 세대교체였다.
결국 최고경영진인 사장급은 참신한 시각으로 사업환경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젊은 피' 수혈에 역점을 둔 대신 부사장 이하 임원들은 승진적체 해소와 업무연속성 등에 바탕을 둔 인사를 실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에 부사장으로 승진한 사람은 총 27명으로 10여명 수준에 그쳤던 예년보다 크게 늘었다.
삼성의 인사원칙인 성과주의는 변함이 없었다.
최근 사장 승진자 7명중 4명을 배출한 반도체(DS)부문은 이번에도 99명이 승진해 역대 최대의 승진기록을 세웠다. DS부문은 올해 들어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 사업부문으로, 이번에 전체 임원 승진자의 절반에 가까운 승진자를 배출했다. 특히 DS부문에선 승진 연한을 뛰어넘어 발탁승진한 이들이 12명이나 나왔다.
◇ '부활하는 미래전략실' 그 조짐들
삼성전자는 이번 임원인사를 끝으로 경영진 인사를 마무리하고, 내주쯤 조직개편과 보직인사를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2월 미래전략실 해체로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가운데 최근 신설한 사업지원TF가 어떤 진용으로 짜일지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작은 미전실'로 불리는 사업지원TF의 책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현호 사장이 맡고 있다. 그는 미전실에서 인사지원팀장을 역임했다. 이번 인사에서도 정 사장이 큰 그림을 그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로 복귀한 노희찬 사장이 정 사장의 대학 후배다. 이밖에 강창진·이왕익·최진원 전무 등 옛 미전실 인사들이 이번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