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오감'을 가지려면 외부 정보를 파악하고 전할 정교한 센서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걸 모아 기억하는 '대뇌피질' 역할을 하는 게 빅데이터, 클라우딩 기술입니다. 이렇게 모인 정보를 쓸모있도록 가공하는 '전전두엽' 역할이 바로 인공지능(AI)이죠. 이런 기술을 궁극적으로 일상 현실에서 사람이 원하는 서비스로 구현하는 게 바로 로봇입니다."
▲ 문전일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이달 초 대구 북구 소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서 만난 문전일 원장은 "로봇은 4차산업혁명을 완성시키는 핵심 주체"라고 강조했다. 정보기술(IT),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기반기술을 '융합'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낸 현실세계 결과물이 바로 로봇이라는 얘기다.
문 원장은 30여년을 업계, 학계와 관계까지 섭렵하며 로봇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연구자다. 로봇이 생소하던 1980~90년대 LS산전에서 생산 라인을 자동화하고 생산 설비에 인터넷을 접목하는 등의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대기업을 나와서는 대학에 새로 '로봇학과'를 신설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문 원장은 국내 로봇산업 메카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교수로 있다가 올 초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로봇산업진흥원장으로 취임했다. 로봇 관련 기업들을 육성하고 시장을 새로 만들어 산업을 확대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문 원장은 오는 8월28일 비즈니스워치 주최로 열리는 '로봇시대, 우리의 일자리는' 포럼에서 '로봇산업의 현주소'를 짚어줄 연사로 나선다. <☞ '2018 비즈워치 포럼' 바로가기>
▲ 문전일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우리 사회에 로봇은 미래일까? "아니다, 바로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로봇 시대다"라고 문 원장은 말한다. 로봇 청소기가 지친 맞벌이 부부의 집안 일을 돕고, 딥러닝으로 바둑을 배운 알파고가 세계 최강 기사 이세돌을 이기는 세상, 인간적인 기계와 기계적인 인간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트랜스 휴먼' 시대가 이미 도래했단 얘기다.
로봇이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면서 가장 걱정을 사는 부분은 일자리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난리인데, 그 치열한 일자리 경쟁에 로봇까지 뛰어든다니 말이다. 하지만 로봇 전문가 문 원장은 "걱정이 너무 과한 측면이 있다"며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는 걸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로봇이 특정 분야에선 사람을 대체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 즉 사용자와 같은 공간에서 협력하는 형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진흥원이 기업에 로봇 설치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을 해보니 10억원을 투자했을 때 평균적으로 일자리 18개가 만들졌다는 것이다. 그는 "통상 제조업에 같은 금액을 투자할 때 늘어나는 일자리가 8~9개뿐인 걸 감안하면 고용창출 효과는 배 이상인 셈"이라고 했다.
그래서 로봇에 일자리를 뺏길까 걱정하기보다 로봇과 함께하는 데 필요한 안전 기준이나 윤리 체계를 확립하는 게 우선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다시 말해 로봇보다 이를 다루는 사람에 문제의식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원장은 "한 공간 안에 생활할 로봇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준, 또 어떤 용도로 로봇을 만들고 파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정립하는 게 당장 필요한 숙제"라고 했다.
▲ 문전일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국내에는 2016년 기준 2127개의 로봇산업 사업체가 있다. 하지만 이중 97%인 2067개가 연매출 100억원 미만의 사업체다. 우리나라는 2015년 국제로봇연맹 조사에서 산업용로봇 밀집도 1위(근로자 1명당 로봇 531대)로 조사된 로봇 사용국이지만 로봇산업 자체는 아직 영세하다.
문 원장은 "국내 로봇시장은 기반이 취약한데다 80%가 산업로봇이고 서비스로봇은 20%에 불과할 정도로 제조업 쪽에 치우쳐 있다"며 "제조업 로봇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야겠지만 국방, 의료재활, 농업, 재난안전, 물류 등 다양한 서비스로봇 분야 등 수요가 있는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로봇을 육성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나마 2~3년전부터 로봇을 전면에 내세운 대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두산로보틱스, 현대로보틱스(현 현대중공업지주), 한화정밀기계 등이 적극적이다. 문 원장은 "시스템 통합(SI, System Integration)분야 역량을 가진 대기업들이 로봇을 활용한 산업 공정화에도 투자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산업적 파생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내 로봇산업이 완제품에 필요한 부품과 소프트웨어, SI 등 가치사슬 단계별의 종합적 경쟁력은 다소 취약하지만 수요처 확산과 함께 SI업체를 육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후방산업을 확대한다면 로봇이 중심이 되는 글로벌 미래 산업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