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계열사 중 상장회사는 한진칼, 대한항공, ㈜한진, 한국공항, 진에어 다섯 곳이다. 이중 현 상근감사 임기가 끝나는 한진칼과 ㈜한진은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새로운 감사를 뽑아야한다.
상법상 감사 선임·해임은 '3%룰' 적용을 받는다. 예를들어 50%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는 다른 안건에선 절대적인 힘을 과시할 수 있지만 감사 선·해임 안건에선 최대 3%의 의결권 밖에 행사하지 못한다.
일각에선 경영부담을 이유로 이러한 3%룰을 완화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상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대주주로부터 감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조항이다.
다만 한진칼과 ㈜한진의 신임 감사선임 방식은 미묘하게 다르다. 이 미묘한 차이로 인해 오는 3월 ㈜한진 주총장이 보다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감사의 임기가 무더기로 끝나는 한진칼, 조양호 회장의 등기임원 임기가 끝나는 대한항공보다 대중적 관심은 덜하지만 표대결 만큼은 최대 격전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 ㈜한진 감사선임 의결권.. 조양호 3% vs KCGI 3%
한진그룹내 물류를 담당하는 ㈜한진은 지주회사 한진칼(22.19%), 조양호 회장 일가(10.93%) 등 최대주주측 지분율이 33.13%이다. 경영참여를 선언한 사모펀드 KCGI는 8.03%, 적극적 주주권행사를 예고한 국민연금도 7.41%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51.43%는 기관·소액투자자들이다.
㈜한진은 이근희 상근감사의 임기가 만료돼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새로운 감사를 선임하는데 ‘3%룰’에 따라 한진칼과 조양호 회장 측은 지분합계 33.13% 가운데 3%의 의결권만 쓸 수 있다.
KCGI도 8.03%의 의결권을 모두 쓰지 못하고 3%만 행사할 수 있는건 마찬가지이지만 최대주주 측보다 의결권 제한폭이 적다.
따라서 KCGI 입장에선 이사회가 추천한 감사 후보자를 반대하거나 주주제안으로 독자적인 감사 후보자를 내세워 표 대결을 펼치고자 한다면 회사측과 동등한 ‘의결권 3%’를 가진 상황에서 표대결을 진행할 수 있다.
이미 KCGI는 지난 9일 ㈜한진에 경영효율화를 위해 장부가격이 저평가된 자산을 매각하거나 적자사업부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한진그룹 전반의 기업가치 제고방안을 발표하고 홈페이지까지 개설했다. 다른 주주들을 표심을 얻기 위한 적극적인 여론전을 시작한 것이다.
KCGI가 독자적인 감사 후보를 내세우려면 설 연휴 직후인 2월 8일(작년 주총일 기준 6주전)까지 주주제안을 해야한다. 이후부터는 표대결을 위한 위임장 확보 경쟁이 펼쳐진다.
# 최대주주에 유리한 한진칼 감사위원 선임 방식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17.84%)과 조원태 사장 등 특수관계자(11.09%) 지분을 합쳐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28.93%이다. KCGI와 국민연금은 각각 10.81%, 7.34%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52.92%는 기관·소액투자자들이다.
한진칼도 윤종호 상근감사의 임기 만료로 새로운 감사를 선임해야하며 역시 3%룰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한진칼이 감사를 뽑는 방식은 ㈜한진보다 최대주주에 유리하다.
한진칼은 작년 12월초 단기차입금을 1600억원 늘려 자산총액(별도재무제표 기준) 2조원을 넘겼다. 상법상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이면 상근감사가 아닌 최소 3명이상의 감사위원이 속한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한다. 또 감사위원은 주총에서 선임한 이사 중에서 뽑아야하고 이중 3분의2는 사외이사로 채워야한다.
따라서 이번 한진칼 주총은 이사진을 먼저 뽑은 후 이들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순서로 진행한다. 이사진 선임은 3%룰과 무관한 보통결의(출석주주 1/2와 발행주식 1/4의 찬성) 방식이어서 지분 28.93%를 가진 조양호 회장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렇게 뽑은 사외이사진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도 ㈜한진 상근감사 선임 방식과 달리 조양호 회장 측에 유리하다.
상법상 상근감사 선임때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이 ‘합계 3%’로 묶이는 반면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임 때는 ‘주주별’ 3%씩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조양호 회장(17.84%), 장남 조원태 사장(2.34%)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2.31%) 차녀 조현민 전 전무(2.3%)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2.14%) 정석물류학술재단(1.08%) 등은 각각 3%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조 회장을 제외한 다른 특수관계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분만큼 의결권을 다 쓸 수 있는 방식이어서 종합하면 한진칼 감사위원 선임때 조 회장 측은 총 14.09%의 의결권을 사용한다. KCGI는 그대로 3%로 묶인다.
결국 ㈜한진 상근감사 선임(조양호 회장측 3% vs KCGI 3%)과 달리 한진칼 감사위원 선임(조 회장측 14.09% vs KCGI 3%)은 최대주주 측에 훨씬 유리한 형국이다.
# 국민연금 의결권 합세하면 파급력 적지 않아
이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로 주목받는 곳은 단연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서 쓸 수 있는 의결권(3%) 방향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파급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KCGI와 의결권 방향을 같이한다면 ㈜한진 상근감사 선임(조양호 회장측 3% vs 국민연금-KCGI 6%)에서는 조양호 회장 측을 추월한다. 한진칼 감사위원 선임(조양호 회장측 14.09% vs 국민연금-KCGI 6%)에서도 격차를 좁히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방향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기관투자자의 표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관건이다.
한편 일각에선 한진칼이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려면 먼저 특별결의(출석주주 2/3와 발행주식 1/3 찬성)가 필요한 정관변경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주반대로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한진칼이 자산총액 2조원을 넘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려 했다면 정관변경이 필수 조건이지만, 자산총액 2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감사위원회 설치는 상법상 의무다.
따라서 설령 정관변경안이 부결되더라도 감사위원회는 꼭 설치해야한다. 회사 정관보다 상법이 훨씬 상위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