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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주총 프리뷰]③명분 확보한 국민연금의 선택은

  • 2019.01.23(수) 10:51

반대의결권에 공개서한까지 "할만큼 했다"
주총전 미리 의결권 방향 공시하면 파급력 커
대한항공 주주제안 '부합'…공시특례 부담 안돼

한진그룹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한항공(국민연금 지분율 11.56%) 2대주주이자 한진칼(7.34%) ㈜한진(7.41%) 3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두고 경영권개입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적어도 한진그룹에 대해선 다른 기업과 달리 봐야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할만 큼 했고 참을 만큼 참았다’는 명분을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한진그룹은 이미 공개중점관리대상

국민연금이 최근 공개한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이 어디로 어떻게 걸어갈 지 보여주는 좌표다. 가이드라인을 보면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①비공개대화 ②비공개중점관리 ③공개중점관리 ④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순으로 단계를 높인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두 번에 걸친 비공개로 경고(①②), 그래도 개선이 안 되면 공개적으로 경고(③, 마지막으로 세 번의 옐로카드에도 개선이 없으면 레드카드(④)를 꺼내드는 것이다.

사모펀드나 일반 기관투자가, 소액주주들과 달리 국민연금은 초장기투자자로써 장기적 관점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는 것인데 이 내용만 보면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당장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하긴 어렵지 않겠냐고 전망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그간 행보를 따져보면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는 이미 3단계(공개중점관리)에 도달해 있다. 그동안 비공개서신을 보내고 수년간 주총에서 이사 재선임을 반대했고, 지난해는 공개서한까지 보내 기업가치 훼손 우려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경고음을 울렸지만 기존 방법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명분을 이미 국민연금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18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해 “한진그룹은 현재로서도 중점관리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 국민연금, 5년간 한진 주총서 18개 안건 반대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배당정책 ▲임원보수한도 ▲법령상위반 우려 ▲지속적인 반대에도 개선이 없는 경우 중점관리대상으로 선정한다. 한진그룹은 이 기준에 따라도 이미 중점관리대상이다.

최근 5년(2014년~2018년)간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상장계열사 정기주총에서 반대한 안건은 18개이다.

반대 안건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바꿔 말하면 국민연금이 반대했음에도 한진그룹이 개선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가지고 있는 가장 확실한 명분이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최근 5년간 한진칼 ㈜한진 대한항공 진에어 한국공항 5개 상장계열사에서 8차례에 걸쳐 조양호 회장과 조회장의 장남 조원태 사장의 등기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이사보수한도(한진칼) 배당정책(한국공항)에도 지속적인 반대표를 던졌다.

 

 


# 의결권사전공시.. 다른 투자자에 파급효과

국민연금은 올해 한진그룹 계열사 주총에서도 일부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진그룹을 향해 더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이사선임철회 요구, 의결권 사전공시, 주주제안, 주주대표소송 등을 꼽을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이사선임 철회 요구와 의결권 사전 공시다.

금융위원회의 스튜어드십코드 법령해석집에 따르면 주총에 앞서 경영진을 만나 특정 이사후보자 선임이나 연임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건 경영참여와 무관한 주주권이다. 국민연금은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등기이사 연임 또는 독립적 역할을 수행하기 부절하다고 판단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사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의결권사전공시도 파급력이 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주총이 끝나고 의결권 행사내역을 공개했는데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함께 수탁자책임위에서 의결한 사안은 사전공시가 가능해졌다.

올해 한진그룹 주총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등기이사 재선임, 한진칼 감사위원 선임, 
한진 상근감사 선임 등이 핵심 안건이다.


국민연금이 주총 전 해당 안건에 반대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공개한다면 국내외 기관투자가는 물론 소액주주들도 국민연금의 결정을 참고한다. 특히 조 회장의 대한항공 등기이사 재선임 안건이 상정된다면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의결권행사 방향을 감안할 때 반대가 확실시된다.

대한항공은 정관상 주총참석주주의 3분의2이상 찬성을 얻어야 재선임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는데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연임에 반대한다는 사실이 사전공시로 알려진다면 조 회장의 연임을 장담하기 어렵다.

 

 


# 대한항공,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기준에 부합

의결권 사전공시는 경영참여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기관투자자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지만 현 상황에서 가장 보수적 선택이기도 하다.

의결권 사전공시를 넘어선 더 센 카드는 국민연금이 직접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후보자를 제안하거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변경을 담은 주주제안을 하는 방안이다.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한다면 연금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대한항공에 사상 처음으로 공개서한을 보낸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은 “의결권행사 연계, 공개서한 발송 등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없는 기업은 수탁자책임 전문위 논의를 거쳐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에 따라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을 행사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재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 중 이 기준에 부합하는 유일무이한 기업이 대한항공이다. 지금까지 공개서한을 발송한 곳은 대한항공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 16일 회의에서 대한한공과 한진칼(대한항공의 모회사)에 대해 주주제안, 주주대표소송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국민연금이 직접 주주제안 형태로 감사 후보를 내세우려면 2월 8일(작년 주총일 기준 6주전)까지 주주제안을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이달까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검토하고 2월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최종 결정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일정을 감안한 것이다.

# 공시특례·단기매매차익 반환 '걸림돌' 아냐

자본시장법상 회사임원의 선임·해임이나 정관변경 등을 위해 직접 주주제안을 하거나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해 위임장 대결을 펼치는 행위는 경영참여다.

따라서 주주제안도 명백한 경영참여 행위다. 이 때 국민연금은 해당 종목에 대해선 더 이상 공시특례를 받지 못하고 단기매매차익이 생기면 반환해야한다.

이러한 이유로 국민연금이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공개적으로 주주제안까지 한 마당에 굳이 특례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반론이 우세하다.

주주제안을 했다는 건 국민연금이 더 이상 투자전략 노출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투자전략을 적극 공개해 다른 주주의 동참을 호소하는 상황이어서 굳이 특례를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모든 투자기업에 대한 공시특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주제안을 한 회사에 대한 지분 내역만 지금보다 더 빨리 더 상세하게 공개하면 되는 것이다.

단기매매차익 반환도 마찬가지다. 단기매매차익 반환이란 지분 10% 이상의 주요주주나 회사 임직원들이 회사 주식을 매수한 후 6개월 이내에 매도, 또는 매도 후 6개월이내 매수해 얻은 이익은 회사에 반환하도록 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단기매매로 차익을 노리는 상황과 거리가 아주 멀다. 오히려 더 길게 보고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성격이다. 따라서 6개월 내에 단기매매로 차익을 노리는 상황을 굳이 감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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