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 40대 나이의 전무(Corporate Management 장)의 희망퇴직(노동조합은 '절망퇴직'이라 표현) 운운하는 담화문은 협박이며 선전포고다." - 7월1일 만도노동조합 중앙집행위원회 대자보
한라그룹 주력계열사인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만도가 뒤숭숭합니다. 구조조정 삭풍이 예고됐기 때문입니다. 만도는 연말 시행하던 희망퇴직을 급하게 앞당겨 이달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퇴사할 직원 5개월치 인건비라도 건지겠다는 태세인 셈입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을 내보내기에 앞서 임원도 20% 줄이기로 했습니다. 지난 1일에는 만도 공동 대표이사인 송범석 부사장과 임원들이 대거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키로 한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서슬퍼런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배경에는 실적 악화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작년 매출 5조6682억원, 영업이익 197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2년 전인 2016년 실적과 비교할 때 수익성 차이가 꽤 큽니다. 매출은 3.4% 줄어든 정도지만 영업이익은 2년새 35.4%나 급감했습니다.
굳이 작년 실적을 2년 전과 비교한 것은 재작년에는 통상임금 판결(충당금 1600억원 반영) 이슈라는 일회성 비용 요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2016년이 국내기업들의 중국사업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슈에 악영향을 입기 전, 영업이 정상적인 때여서이기도 합니다.
만도 역시 중국사업에서 크게 부진을 겪었습니다. 만도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B2B(기업 대 기업)' 영업을 해 중국 소비자들의 반한(反韓) 역풍을 직접 맞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 매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작년 기준 58%로 절반을 넘습니다.
만도 입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안정적인 매출처입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가 팔리지 않아 부품 수요가 줄어들면 바로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현대·기아차의 현지 합자사인 베이징(北京)현대, 둥펑위에다(東風悅達)기아의 판매가 줄었던 만큼 만도도 납품 물량이 확 줄어든 겁니다.
실제로 만도는 중국사업에서 심각한 차질을 겪었습니다. 만도 자회사 중 중국사업을 총괄하는 중간지주사격의 만도차이나홀딩스(MCH)의 실적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MCH는 국내에 설립돼 있지만 중국 쑤저우(蘇州), 베이징(北京), 하얼빈(哈爾濱), 톈진(天津), 닝보(寧波), 선양(深陽), 충칭(重慶) 등지에 8개 생산법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MCH는 2016년 매출 1조7716억원, 순이익 1456억원을 냈습니다. 당시 만도 전체 매출의 30.2%, 순이익의 69.3%를 낸 '캐시카우'였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는 매출 1조4959억원, 순이익은 229억원으로 줄었습니다. 만도 전체 매출과 손이익에의 기여도는 각각 26.4%, 20.3%로 확 쪼그라들었습니다.
MCH는 작년 4분기와 올해 1분기에는 각각 59억원, 40억원의 순손실을 내기까지 했습니다. 분기마다 200억~300억원씩 이익을 만들어주던 2~3년전과는 격세지감입니다. 그래서 만도는 이번에 본체 구조조정을 하기에 앞서, 지난 1분기 중국법인 구조조정을 먼저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정몽원 한라그룹 입장에서는 체면을 구기게 됐습니다. 정 회장은 2017년 11월 만도 대표이사로 복귀한 시점보다 8개월 가량 앞서 MCH의 사내 이사에 먼저 본인 이름을 울렸습니다. MCH의 매출을 2020년까지 연간 3조원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총수가 직접 손을 댄 중국 사업부터 차례로 구멍이 커졌습니다.
정 회장은 희망퇴직 시행을 알리기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생산물량 감소로 인해 회사의 현금창출능력은 크게 저하되고 있다"며 "인력적 효율화 조치까지도 피하지 않기로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설명입니다. 이후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정재영 전무도 희망퇴직 시행 내용을 담은 담화문을 냈습니다.
고용불안이 커진 직원들은 반발이 큽니다. 만도 노조는 "절망퇴직으론 경영위기를 결코 이겨낼 수 없을 뿐더러 임금교섭을 진행 중에 교섭대표를 경질, 교체하고도 계속해서 인원 감축이라는 싸움의 빌미를 살려가고 있는 작태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다른 자동차 관련 업체들도 주의 깊게 만도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판매난을 겪으면서 부품 수요가 줄어든 데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 올해 중국 부품사들의 입찰을 전면 허용하면서 납품 경쟁마저 더 치열해졌다"며 "만도의 구조조정이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